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조성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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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강의 19세기]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로쟈가 안내하는 러시아 문학의 찬란한 태동기

 

 

 

1000년이 다 되도록 문학이 제대로 없던 나라가 있었다. 심지어 모국어조차 제대로 발달되지 못했다. 19세기 근대를 열 당시 이 나라의 문맹률은 95%에 달했고, 지배계급의 제1언어는 프랑스어였고 독일어나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였다. 그런 나라에서 1820년대 기라성 같은 세 작가가 나타나 문학의 토양을 닦았고, 그 다음 세대의 작가 두 명은 세계 최고의 소설가들이었다. 그리고 문학이 사회를 견인하고 당대 철학과 사상을 담당한다. 이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 문학은 방대한 양과 본명·애칭·부칭·약칭 정신 차릴 수 없이 복잡한 인물 이름의 세계 때문에 처음 놀라고, 이 독특한 문학사 때문에 또 한 번 놀란다. 짧은 역사와 더 짧은 문학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처음 서구 문학이 유입될 때 압도적으로 많이 읽힌 것이 러시아 문학이었다고 한다. 대표적 사례로 1920년대에 가장 많이 읽힌 3대 작가가 이광수,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였던 것을 들 수 있다. 다만 소련 공산화로 인해 단절기가 길어서 낯설어졌던 것일 뿐이다. 로쟈는 이를 역사적·정서적 유사성 때문으로 분석한다.

 

 

로쟈(이현우)는 북로거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독서광이자 유명한 인터넷 서평꾼이다. 막상 그의 전공은 러시아 문학으로 대학 출강도 하고 일반교양 특강도 많이 했는데 전공 책을 낸 게 거의 없어 항상 궁금하고 기다려왔었다. 드디어 올해 19세기와 20세기 두 권으로 나눈 러시아 문학 강의서가 나왔다(후자는 근간). 다룬 작품들과 설명 내용은 다른 많은 강의에서 이미 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책 구성은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진행했던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왔다. 19세기와 20세기로 나눈 후 각 8강씩 강의하는데, 각 세기별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대표작가 일곱 명을 소개하고 그들의 대표작을 해설하였다. 사진과 그림을 포함하여 권당 300쪽 내외로 편집하였으나 책을 읽으면 1000분 넘어가는 8강 강의를 굳이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대화체에 강의와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서술하였다.

 

같은 포맷의 강의가 2009년과 2010년 아트앤스터디에서 <로쟈의 러시아 문학기행>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적도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시리즈가 다루는 두 세기 16명의 작가와 대표작과 관련해선 강의록이 완성형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보면 수업 연구가 거의 없는 강사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출간 후 있었던 관련 현장 강의를 들어보면 강의록과 강의가 책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같다. 해당 작가와 작품을 전혀 모르는 독자도 이해할 수준의 일반인 대상 교양 강의가 다룰 수 있는 범위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가 다루는 작가는 19세기 초 러시아 근대 문학을 태동시킨 세 작가 푸슈킨, 레르몬토프, 고골과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사실주의를 이끈 대표적 세 작가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에서 19세기 문학을 마감하는 체호프를 언급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시리즈는 소설 중심의 러시아 문학사책이다.

 

 

푸슈킨 전에 러시아 문학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영향 받은 카람진 같은 선배 작가가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근대 문학 시대가 열리는 동시에 러시아에 문학다운 문학이 비로소 시작하는 것은 푸슈킨부터다. 러시아 최초의 전업 작가라는 점부터가 근대적이다. 푸슈킨은 ‘푸슈킨 공동체’로 표현할 수 있는 근현대 러시아 문화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전 국민이 그의 작품을 읽고, 작가들은 자신을 정의할 때 어떻게든 푸슈킨과 엮으려 한다. 레르몬토프는 러시아 문학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주인공을 만들었고, 우크라이나 촌놈 고골은 러시아인이라서 가능한 기상천외한 발상과 장기를 보인다. 시로 쓴 소설 <예브게닌 오네긴>, 오늘날에 봐도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페초린이 있는 <우리 시대의 영웅>,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를 통해 본 고골의 9급공무원·음식·속물에 대한 집착적 애정, 책 초반부터 매력적인 작가들과 작품들의 향연이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 <아버지와 아들>은 그의 대표작인 동시에 자전적인 소설이란 점에서 인상 깊고 평생 반사회참여적 태도로 일관했음에도 후자 같은 작품을 썼다는 게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러시아 문학 최고 인텔리임과 동시에 가장 희한한 사생활을 가진 ‘이상한 투르게네프’였다는 점이다.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이자 세계 최고의 두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와 관련된 장은 단연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다. 두 장을 넘나들면서 성격, 삶의 모습, 사상 모두 정반대의 작가와 작품을 비교하고 있노라면 재밌으면서 어떻게 이런 인물 둘이 혜성처럼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등장했는지 기가 막힌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미완성 작이자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최대 작이란 점도, 수많은 소설을 썼음에도 사실상 문학적 미학성을 인정할만한 톨스토이 작품은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밖에 없다는(굳이 더 따지면 초기작 포함) 사실도 흥미롭다. 동시대인임에도 체호프와 고리키의 문학은 세기적 간극이 있고 황혼의 달관을 담은 유머를 추구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상식과 교양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도 어떤 독자에겐 어떤 영감과 흥미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가벼운 책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러시아 문학을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도 모르겠거나, 관심은 있어 매번 읽어봐야지 하면서 포기했던 초보 러시아문학 독자에겐 이만한 든든하고 훌륭한 이정표 역할을 하는 안내서도 없다. 그만큼 로쟈의 문장은 쉽다. 어려운 주제를 어렵게 쓰는 것은 결코 잘 쓰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읽어도 러시아 문학의 큰 얼개를 파악하고 어떤 작품들을 읽을지 갈피를 잡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중에 지금까지 일반인을 대상으로(특히 우리 한국 독자에게 맞춘) 러시아 문학 입문서가 없었다는 점에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는 잘 쓴 책이다. 벼락 맞듯 어느 날 갑자기 찬란하게 태동했던 19세기의 러시아 문학은 20세기, 문학의 무덤인 사회주의를 만나 급격히 침몰한다. 더러는 숨고, 더러는 있어도 없는 자식 취급 받고, 더러는 타협하고, 더러는 가출하면서 반짝이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작품들이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에서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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