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의 역사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 하정희 옮김 / 예지(Wisdom)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인종차별의 역사] 실체 없는 타자 증오의 근원을 찾아서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모순의 민낯을 마주보기 위한 역사적 탐구이자

그 반인도적 범죄의 상속자이자 행위자인 서양의 통렬한 자기반성적 기록

인종차별주의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 마음 안의 그 괴물을 반드시 지워야 한다

 

 

 

 

인종차별주의자, 그들은 타인을 미워한다. 그 타인들의 행위(또는 한 개인으로서 그들이 과거에 했던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그 자체 (또는 인종차별주의자 자신이 인위적으로 규정한 한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점) 때문에 그런다. (...) 인종차별이란 타자로서의 타자에 대한 증오다. 흑인으로서의 흑인, 경찰관으로서의 경찰관, 동성애자에 대한 증오 말이다. - p.15

 

이 책을 쓴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출판사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생전 그는 시대의 쟁점이라는 관점으로 철학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고 지배와 탄압의 메커니즘을 밝히는데 철학의 역할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인종차별주의와 관련된 연구와 저술도 많이 하였는데, 2000년 작 <인종차별의 역사>는 그의 그 오랜 사유를 정리하며 자국의 동시대인과 후손들에게 호소하는 책이다. 그렇다, 프랑스 철학자가 쓴 이 역사책은 철저히 프랑스(굳이 확대하면 프랑스어권) 독자를 대상으로 한정한다. 특히 13장과 14장은 현재 프랑스 사회의 과제로서 성격이 강하다. 첫 번째 이유는 인종차별의 역사와 인종차별이 행해진 사회가 너무 광범위해 취사선택이 불가피하였고, 두 번째 이유는 자국 프랑스가 이 주제에 대해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강조하며 반성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결정적 계기는 쇼아(‘인류의 마지막 대재앙’이란 뜻의 히브리어 표현으로 기독교적 의미를 담은 ‘홀로코스트’에 저항하는 대체어)이다. 쇼아는 나치독일을 기폭제로 서구에 뿌리박힌 반유대주의의 광증이 폭발했던 유럽 모두의 범죄였다. 1만 5천명이 넘는 외국계 유대인을 한 체육관에 몰아넣고 굶겨 죽인 밸디브 사건 같은 경우도 프랑스인들이 자발적으로 행하고 침묵한 일이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프랑스 방송인 로르 아를러는 쇼아를 ‘시효로 소멸되지 않는 반인도적 범죄’라고 정의하며 미래의 개념을 우울하게, 진보와 조화로운 세상을 해치는 용서할 수 없는 악이라 단언하였다. 인종차별도 마찬가지다. 인종차별이란 이름으로 인류 역사 내내 수많은 범죄와 전쟁과 학살이 일어났다.

 

우리가 인종차별(주의), 인종주의로 번역하고 있는 'Racisme(racism)'은 특정사회집단에 대한 적의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단어이다. 즉, 단순 유색인종 차별 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나누고 특정 인간과 집단을 차별하고 증오하는 모든 행위가 '인종차별'이다. 이러한 타자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류는 역사 내내 차별받는 인간들에게 태생적인 결함을 찾고 믿었다.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는 <인종차별의 역사>를 통해 그 실체 없는 신화와 신앙을 산산조각 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인종'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인종차별'은 무지(대개 악의와 동반하는)의 소산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모든 인간은 유전적·생물학적으로 너무 많이 동일해 객관적으로 분류할 만큼의 차이가 너무나 부족하고, 결국 인종차별은 선택가능한 정치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지기 위해선 인종차별의 역사를 돌아보며 무지와 싸워야 한다고, 그래서 중립적이지 않은 인종차별은 그 역사 역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서술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가장 먼저 부수는 관념은 '인종차별은 항상 존재해왔다(인종차별은 불가피하고 불멸의 개념이라는 믿음)'는 신화이다. 처음으로 인종차별의 조짐이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인(로마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고대 말 그리스-로마 문명부터이며 반유대주의가 형성되는 헬레니즘 문명 때를 본격적인 기원으로 봐야 한다. <인종차별의 역사>는 세 장에 걸쳐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 이방인에 대한 태도(1장)가 히브리인을 차별하는 반유대주의의 태동(2장)과 여자와 노예의 하등인간 취급(3장)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기술하며 인종차별의 원형을 밝히고 있다.

 

불행하게도 당대 소피스트들의 인종차별적 담론들에 반박하였으나 '그리스 남자'의 패러다임 안에서 자신의 완벽한 논리를 완성할 수밖에 없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철학의 근간이 되는 바람에 그 후 서양에서 이루어진 모든 인종차별 역시 그의 사상에서 근거하게 되었다. 중세를 다룬 두 장은 기독교가 서양문명의 헤게모니를 쥐면서 더욱 발전시킨 반유대주의(4장)와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 나병에 대한 그릇된 공포와 무지가 만든 남프랑스의 '카고 차별'의 사례(5장)을 다룬다. 근세의 인종차별의 범인 역시 기독교다. 두 장에 걸쳐 자본주의와 십자가의 이름으로 찬란히 빛났던 대항해 시대의 비극, 아메리칸 인디언의 파멸(6장)과 아프리카 흑인의 노예화(7장)을 다룬다.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로 대표되는 근대는 인류지성의 폭발적 성장만큼 인종차별 역시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여 발전시킨다. 인종차별에 과학이 동원되는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 과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이비이고 신화에 불과했는지 두 장(8장, 9장)에 걸쳐 서술된다. 저자는 18세기에 과학적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차별적 담화들의 편입이 시도되었고 19세기에 그 학설들의 통합이 이루어진 결과가 20세기를 '대학살의 시대'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르메니아 학살(10장)을 시작으로 양 세계대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인종차별 의식과 이론(11장), 유대인과 집시 학살(12장)이 일어난다. 그에 대한 반성은 채 오래지 않아 망각과 조작으로 변질되고(13장) 다문화시대의 외국인 차별(14장)이나 남아공·캄보디아·동티모르·르완다 등 세계전역에서 일어나는 그칠 줄 모르는 인종차별 관련 참극을 고발(15장)하며 마친다.

 

주체만 다를 뿐 인종차별의 양태는 동서양 모두에서 있어왔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가 프랑스의 오늘을 걱정하며 쓴 이 책이, 굳이 확대해서 본다 해도 서구 문명 속에서의 인종차별에 한정된 이 책이 동양의 우리도 읽을 의미가 있다. 인종차별의 무지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순수한 무지가 아니라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타자를 증오하고픈 욕망이 압도해 저지르는 다분히 의도적인 무지라는 것이며, 더욱 끔찍한 것은 전혀 근거 없고 비상식적임에도 상당한 역사문화적 전통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인종차별의 무실체성에 허무함을 깨닫는 동시에 이런 역사와 사실을 안다고 인종차별이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무기력함에 빠진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정치의 책임을 든다. 어떤 시도를 하든 쉽지 않겠지만, 이 불의와 싸우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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