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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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 진리는 수다스럽지 않다. 삶을 닮은 자서전

철학의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의 유일한 유작이자 자서전

길에서 사유를 세운 그의 삶처럼 담백한 27개의 파편들

 

 

 

짧은 역사를 지닌 신생국가의 숙명임을 알면서도 인문학적 전통에 있어 유럽에 대한 콤플렉스와 미국적인 것에 대한 갈망은 그치지 않았다. 역자는 오늘날 미국의 주류철학이 이미 인간을 주제로 하지 않고, 테크닉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프롤레타리아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그런 미국의 역사사회문화적 특수성이 낳은 독특한 존재이다. 독일계 이민가정 출생, 정규 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하였다. 레스토랑 보조웨이터, 사금채취공 등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던 떠돌이 일용노동자를 전전하다가 임시수용소 신세를 진 적도 있었고 25년 동안 부두노동자로 일하였다. 11권의 저서 중 유일한 유작이자 자서전인 <길 위의 철학자>, 80여 년의 길고 남다른 삶이었음에도 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는 결코 길지 않다. 27꼭지의 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그가 사유를 정리할 때 선호했던 서식인 ‘아포리즘’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압축적이다.

 

에릭 호퍼의 삶을 이루는 몇 가지 결정점이 있다. 먼저,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는 집안 내력은 그가 평생을 ‘삶을 여행객처럼 살아’오게 한 심리적 근간이 되었다(p.21). 절망에 휩싸였던 20대 말의 자살 기도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지만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가 태어나는 날이 되었다(p.60). 엘센트로의 임시수용소 생활은 모든 사고를 물들이고 50년 동안 쓴 모든 글의 씨앗을 키우는 계기가 되어 그를 떠돌이 노동자에서 사상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p.75). 마지막으로 글쓰기를 읽히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부두노동자 생활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결실이 많은 시기였다고 회고한다(p.177). 그의 한 아포리즘 “신천지를 개척하고, 새로운 것을 기도하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패배자인 경우가 많다.(p.8)”는 그의 삶 전체를 대변하는 한 문장이다.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 - p.29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 없는 사회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 p.65

 

친숙성은 생의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한다. 아마 예술가의 본모습은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이방인이거나 다른 별에서 온 방문객일 것이다. - p.174

 

그의 철학은 언제나 ‘인간’이 있지만 무조건적인 낙관과 애정으로 충만한 휴머니스트는 아니다. 육체노동의 최전선에서 거칠게 산 영향일 수 있는데, 단호하게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 일이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며(인터뷰/p.189), 행복이란 거의 없어 전 생애 동안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 합치면 채 하루가 되지 않는다(p.180)고 말한다. 누구보다 전문가의 솜씨로 스스로 아메리카를 건설한 부랑자들처럼(p.71), 노력만 하면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믿는 부두노동자처럼(p.178) 길에서 단련한 세월이 강한 몸과 정신을 만들었다. 무척 할말이 많을 듯 싶은데 삶의 마지막에 선 노 철학자는 더욱 말수를 아낀다. 진리는 수다스럽지 않음을 반증하는 듯한,  그의 삶을 닮은 자서전이다. 

 

 

에릭 호퍼는 ‘머리를 아래로, 엉덩이를 위로 하는, 동시에 두 방향으로 사유를 끌어당기는 영혼의 스트레칭법’으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비록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시력을 잃었던 기간을 제외하곤 어릴 적부터 책을 놓지 않은 것도 비범한 노동자(철학자)로 산 비결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촌철살인, 일상과 긴밀한 쉽고 단순한 철학이기에 대중들이 다른 현대철학자에 비해 더 친숙함을 느낀다. 이번에 이다미디어에서 출간된 <길 위의 철학자>는 국내 미번역작인 아포리즘집 <영혼의 연금술>과 <인간의 조건> 출간에 맞춰 낸 개정판이다. 부록 등 구성은 비슷하나 옮긴이의 말을 새로 썼다. 자서전 본문 외 에릭 호퍼의 생존 사진과 대표 아포리즘들, 인터뷰 기사 등을 실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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