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김수영을 위하여]

너와 나를 위한 김수영 ; 자유정신과 자기다움

 

http://der_insel.blog.me/120160369424

 

 

 

 

이 책의 프롤로그가 마뜩지 않았다. 작년, 저자는 한 대학에서의 강연에서 김수영의 시 <김일성 만세>를 읽었다. 그리고 청중들 대부분의 표정에서 불쾌감을 읽었고 이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가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증이라 해석하였다. 너무나 간명하게 인과 관계를 단정하는 이 ‘철학자’의 명쾌함이 조금은 놀라웠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논의의 편의를 위해 단순화시킨 문장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저 대목은 (책 전체를 지배하는) 이 책의 얼굴이자 미래였다. 이 에피소드는 책을 시작하는 ‘문제의식’이고, 전개 내내 놓지 않는 ‘기제’이며, 앞으로 반복할 ‘행동’이다. 결국 어떤 책보다 자유를 강조하고 김수영을 바로 보겠다는 책이지만, 이 책 속에서 편협하다고 비판하는 (김수영에 대한) 평론들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프레임’에 입각한 또 다른 김수영 론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프롤로그는 또한 독자로서의 한계를 인지하게 했다. 독자 역시 자신의 프레임으로 대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자유를 쓰고 읽지만 자유로우면서 자유롭지 않다. 김수영을 만나기 위한 첫번째 각성은 서러운 모순이었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할까. 늘 시를 가슴으로 읽어오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시인의 삶과 철학을 알면 좀 더 그의 시를 잘 읽을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자신 있게 경애를 말하기 위해 시인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기도 했다. 이런 마음을 한번쯤 품었던 독자라면, 김수영의 전 생애와 그의 작품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서술되어 있고 부록으로 작품집이 달려 있는 <김수영을 위하여>가 무척 당길 것이다. 또한 인문학 강연 수강이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사치인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저자가 홍대 상상마당에서 김수영을 주제로 2시간 반씩 10회 강의했던 것을 강의 원고와 녹취록을 정리하여 책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부록까지 500여 페이지 남짓의 책으로 유명 철학자가 한 1500분의 강의내용을 단숨에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짜릿하다. 한편 이 책은 편집자를 부각시킨 것이 특이하다. 저자와 나란히 지은이와 만든이로 표기된 것만큼 책 속에서 저자와 완전히 대등한 비중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본 책의 노랑 섹션과 부록 전체만큼은 저자 강신주의 책이 아니라 편집자 김서연의 책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김수영을 위하여>를 통해 김수영이 죽은 지 반세기가 넘도록 그의 인문정신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정신적 결핍과 병폐를 꼬집는다. 그리고 김수영스러움의 본질을 ‘자유’로 정의하며, 있는 그대로의 김수영을 읽으려고 한다. 우리가 김수영하면 0.1초 만에 떠올리는 <풀>은 그의 마지막 시였다.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했다. 처녀시를 부정했고 진정한 처녀시를 고민했다. 3개 국어를 능숙하게 했고, 연극을 하다가 시로 전향했지만 시·산문·평론·번역을 종횡무진하였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분단과 독재 등 질곡의 근현대사를 체험한 산증인 세대 중에서도 포로수용소 생활 등 극단적인 경험을 하였다. 개성은 그대로나 작품 세계가 상당히 다채롭다. (…) 저자는 독자가 그의 해설과 편집으로 나열되고 조합되는 김수영과 김수영스러움을 담뿍 빠져 즐기고 있을 때, 이 책이 철학자가 철학적 관점으로 썼다는 점을 주지시켜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벤야민과 들뢰즈, 바르트와 칸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을 인용하고, 저자 스스로의 해석도 제시하면서 독자의 사유와 감상이 더욱 풍부해지도록 돕는다. 김수영은 자유에 ‘이만하면’이란 수사는 붙을 수 없다고 했다. 자유정신은 결핍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온 몸으로 하는 자신다움에의 투쟁,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던 부분이다.

 

 

첫발부터 채인 당황스러움에 내내 긴장과 의문으로 독서해야 했다. 김수영은 허울일 뿐 강신주를 위함이 더 도드라지진 않을지, 이 논의의 귀결(우리가 부족한 김수영의 인문정신-자유정신-의 본질)이 어떻게 될지 말이다. 저자가 모더니티나 민족주의, 참여시인 등 어느 한 면에 초점을 맞추어 김수영을 평가하는 평론가들을 비판했듯이 김수영을 관통하는 것은 자유와 자기다움 그 자체다. 1960년대의 김수영이 남과 북 모두를 비판했고 당시 사회의 크고 작은 불위들에 쓴소리를 했다. 또한 우리가 김수영의 정신에 도달하지 못한 것엔 개인의 자세적 측면 뿐만 아니라 김수영이 50여 년 전 고민하고 비판했던 패악과 악습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도 포함된다. 김수영이 그랬듯 이념과 이해, 제도 등을 떠나 언제나 자유를 위협하는 부당함을 예민하게 알아채고 그에 맞서 싸울 수 있으며 자기다움을 위한 투쟁을 쉬지 않는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예상과 달리 일반론적이고 온건한 전개였고, 저자와 만든이와 대상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제목처럼 김수영을 위함에 충실했다. (은근히 기대했던) 태풍 같은 충격과 각성이 더 없었던 것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내내 있던 (뭔지 모를) 불편함과 체증을 일소하는 에필로그 덕분에 마음이 참 다습고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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