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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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그리스인 조르바>를 구입하면 미니북을 증정하고 있다. 무려 만부나 제작했단다.

반양장이고 쪽수가 600쪽으로 늘어나는 것을 제외하면

표지와 구성(목차,서지사항 등)이 본책과 동일하다.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가 무어냐고 묻는 이의 벗

 

 

 

*) 이 글은 서평보다 독서록에 가깝게 쓴 저열한 글이다. 그래서 서평자 자신을 이르는 '나'가 마구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 역시 '나'로 표기되기 때문에 혼란을 방지하고자 후자의 '나'는 '화자'라는 단어로 임의로 대체해서 쓰겠다.

 http://der_insel.blog.me/120159477423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쨍쨍한 날씨, 슬슬 피부가 달아 짜증이 나려할 때 바다가 보내주었을지 모르는 바람에 반갑고 새파란 하늘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수다쟁이 아낙들이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그 왁자지껄한 골목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나도 과부를 희롱하는 것 같고 서로 부둥킨 살내음이 느껴져 면구스럽다. 갈탄광에서 땀 흘리는 사내들과 어울려 호기롭게 웃기도 한다. 그렇게 크레타 섬의 건강한 일상에 한껏 동화되다가 정신을 차리면 더러는 얼굴 앞과 뒤로 누군가의 정수리내와 입김이 스멀대는 출퇴근길 지하철 안, 더러는 혼자 밥을 먹던 식당 안 혹은 방 안 책상이나 침대이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다시 이번 달 대출상환금은 문제 없을까라든가 주말에 짝꿍이라 뭐할까라든가 하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고민들에 구속된다.

 

 

가장 최근에 자유에 대해 내린 결론은 단어로 치면 ‘죽음’이었고 이미지로 치면 최인훈의 <광장> 속 중립국으로 가는 배 안이었다(20대 초반이었다면 그에 피의 이미지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더해졌을 것이다. 자유를 위해, 자유의 이름으로 죽어나간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살아있는 한 인간은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언제나 제약 하 제한된 자유의지다. 가족, 생업, 학벌, 욕망, 건강수준 등 수많은 구속이 살아있는 우리를 옭아맨다. 이런 논리대로 절대자유가 죽음으로써만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동경심은 생기지 않는다. 구속이 황홀하다. 이들이 삶의 당위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개인의 모든 인위적 행위는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지극히 개똥철학이지만 이러한 결론으로 삶의 자세도 바뀌었고, 자살에 대한 입장도 확실하게 정리하게 되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자유의 문제는 파고들수록 형이상학적이기도 하거니와 당장의 일상에 치이고 배가 고플 땐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그런 핑계로 나는 꽤 오랫동안 자유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때에 이 책을 만났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내내 자유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했다. 조르바의 존재는 ‘살아 있는 자유’ 그 자체, 그는 인간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최대의 자유를 보여준다. 카잔차키스의 분신이기도 한 작중 화자가 그와의 만남을 통해 크게 각성하듯 나 역시 조르바를 접하고 그의 행보 면면을 보면 볼수록 흥분하였다. 앞서 말한, 몇 년 전에서 갱신되지 않은 나의 자유관을 일거에 깨뜨리거나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며 본문에서 해설까지 480쪽의 페이지를 넘기는 이 시간을 즐겼다. 참 오랜만에 서아일체되어 치열하고 끊임없이 책과 문답하였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음식, 술, 여자와 춤)는 그의 건강하고 왕성한

몸에서 사라지거나 둔화되는 날이 없었다. -p.182

우리에게는 그토록 편리한, 자질구레한 덕성이 그에겐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만족을 모르는 극히 불쾌하고 위험한 덕성뿐이어서 이런 상태가 그를

극한과 지옥의 나락으로 끊임없이 충동질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pp.222-223

 

 

화자의 표현대로 조르바는 어떤 구속도 인지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특별한 거처 없이 오만 동네를 떠돌며 숙식을 해결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사람들을 사귄다. 65세지만 청년의 정력과 정신으로 노인의 육체를 초월한다. 그는 늙은 우리들에게 숨겨진 소년소녀를 깨울 줄 아는 사람이고, 죽은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조르바의 시대와 그리스는 정치적 혼란기였고 전쟁이 관통한다. 그러나 <그리스인 조르바>에선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초의 어느 날이란 생각은 들지만 묘사되는 풍경들이나 조르바의 삶은 탈 시대적이다. 조르바의 현자성을 더욱 강조하고 이야기의 본질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한 카잔차키스의 의도적 전략이었을까. 아무튼 그 자자한 명성이 이해되고, 참으로 유쾌하면서도 철학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이를 위험하게 받아들인 측도 있다. 금서에 오르기까진 않았지만 <그리스인 조르바> 역시 신성모독을 이유로 교황청과 정교회의 미움을 산다.

 

 

책상물림 글쟁이던 화자가 갈탄채취사업을 하러 크레타 섬에 가던 중 조르바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훗날 그에 관한 책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내용처럼 조르바는 실존인물이고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삶과 그를 직접 만나 겪었던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박제했다. 카잔차키스가 34살에 갈탄채취 인부를 고용하려다 만나게 된 조르바, 그렇다고 그들이 소설 속의 화자와 조르바가 아니듯 실제의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의 만남은 시대적 격동과 정치성에 노출된다. 카잔차키스는 호로메스, 니체, 베르그송과 함께 자신의 인생에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조르바를 든다. 하지만 소설 속 조르바가 비범하지만 일반인인 것처럼 실제 조르바 역시 카잔차키스가 우연히 만난 기인일 뿐 널리 알려진 위인은 아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란 작품의 존재가, 그리고 현재 그의 딸이 생존해있고 카잔차키스 기념관에 조르바가 보낸 편지가 있다는 사실 정도가 그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의 등장인물 나가사와의 입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읽는 사람이면 자신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게 그런 작품이 있다면 이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게 된 결정적 계기도 한 조르바 삼독론자의 얘기 때문이었다. 모 라디오 방송에 시인이자 달(문학동네 임프린트 중 하나)의 대표인 이병률이 출연한 적이 있는데 평생 한 권의 책만 볼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냐는 질문에 언젠가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배 위에서 이 책을 독서법을 달리하며 3번 읽었다면서 단 한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선택하겠다는 그의 말이 참 솔깃했다. 그리고 일독 후 받은 느낌과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의미로 다가오거나 다시 찾게 하는 문장들 때문에 다시 읽기가 기대된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내 스스로가 더욱 이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독삼독할 것이다. 그리고 믿는다. 조르바는 자유가 무어냐고 묻는 이에게 늘 기꺼이 찾아와 벗이 되어 줄 것이라고.

 

 

뒤늦게나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고 행운이다. 그리스 현대문학을 접할 수 없는 우리에게, 카잔차키스가 있어서 그리고 열린책들 덕분에 영역본 중역인 건 아쉽지만 적어도 그의 작품은 전부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해외에선 그를 철학자(사상가)로 보는 시각도 많다. 카잔차키스는 평생 소위 ‘3단계 투쟁’으로 명명되는, 영혼의 편력과 투쟁에 매진했다. 그 최종의 본질은 자유와 자기해방이었다. 종교를 넘나들고 온갖 곳을 여행하고 물질과 비물질 등 모순개념을 탐구한 흔적들을 문학으로 남겼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런 카잔차키스의 자유관과 문학성향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일독하는 내내 생각했던 자유,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의 결말에서 상념들이 엉클어져 나의 마지막 자유관을 고치지 못했다. 하지만 미미한 성과일지언정 큰 울렁임과 수없는 고민들은 결코 무의미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번엔 미처 찾고 깨닫지 못한 '조르바의 자유'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생각해본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ν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Den elpízo típota, den fovúmai típota, eímai eléftheros.)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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