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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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나면서 주요 대형 출판사들이 일제히 헤밍웨이 작품 번역에 들어간 것에 낭비라고 못마땅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자본력과 기획력으로 번역해줬으면 하는 국내 미소개 외국 문학 작품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과 바다>는 아무리 지금껏 정식 판권본이 없다고 해도 수십년 간 무수한 번역본이 쏟아져 나왔던 작품이기에 소식만 들어도 또 헤밍웨이야, 또 <노인과 바다>야라고 질리는 감도 없지 않다.

 

누구나 원전을 판권 확보 없이 마음껏 쓰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도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만, 자기 출판사만의 번역본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도 작업을 선택하곤 한다. 그 번역본의 결과물이 타 출판사보다 양질이라면 금상첨화. 그리고 이미 번역본이 많은 유명 작품을 또 번역한다는 것은 대박은 커녕 레드오션 중 레드오션이지만 작품 자체의 명성 때문에 어떤 번역본이든 어느 정도 판매는 보장되기 때문에 은근히 안정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첫 문단에서 언급한 이유로 올해부터 나오는 <노인과 바다> 번역본들은 기존의 번역본이 많음에도 원점에서 출발하는 것과 비슷한 경쟁을 한다. 단기적으론 얼마나 빨리 출판했고 마케팅을 잘했는지 등이 관건이다. 그리고 독자(소비자)들에게 더 어필하기 위해 외형적인 스펙에 신경 쓴다(특히 후발주자일수록 불리하므로 더).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땐 얼마나 본문의 번역이 오역 없이 잘 되어 있는지가 승자의 관건이 될 것이다.

 

2012년 <노인과 바다> 전쟁에서 두번째로 출전한 문학동네 선수. 출간일에서도 해설 양이나 번역자 인지도 및 전문성에서도 타 출판사본의 스펙을 이기지 못해 불리했다. 물론 섹시한 표지 때문에 고정 충성층을 확보하고 있긴 하지만, 고정 충성층은 가진 타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도 몇 있다. 외모 무기에 예약판매로 승부를 건 문학동네의 단기 마케팅 전략의 꽃은 영문 원서 증정이다. 예약판매자 전원과 초기 구매자 선착순에게 증정되는 이 원서(아쉽지만 2월7일 현재 전량소진)는 국역판과 같은 디자인과 문장(물론 영문)으로 컬렉션 가치를 더욱 높인다.

 

<노인과 바다> 작품 자체에 대한 서평은 따로 글을 썼기에 문학동네본의 주요 특징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글을 쓴다.

노인과 바다 작품 리뷰>> [노인과 바다] 투쟁하는 모든 존재에게 보내는 불멸의 우화 

 

 

<노인과 바다>의 영어 원서는 그 동안 스크리브너사가 독점 출판하였다. 그러나 이 출판사는 지난 반세기 간 여러 번 판형을 바꿔 쇄를 거듭했을 뿐 오탈자(누가 봐도 명백한)를 방치하였다. 문학동네는 번역의 원전을 스크리브너사 2003년판으로 삼았는데, 지금 증정하는 한정 원서는 스크리너사 2003년판 원문 그대로가 아니라 편집부에서 검토해 그 오탈자를 모두 고친 버전이다. 혹시 읽으면서 오타 또 찾아내면 문학동네에 신고하시길.

해설에서 차별점은 연표에 청새치로 찍은 사진 정도. 그 외엔 분량이나 내용이나 무난하다. 본문을 압도하는 장문의 해설, 논문 수준의 개인적 연구가 많이 반영된 해설 수록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은 선호할 듯.

 

슬슬 번역에 대한 말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헤밍웨이는 최대한 단문에 형용사·관형사 등 수식어구를 배제한 하드보일드 문체를 지향한다. 그래서 굉장히 깔끔하고 짧다. 문제는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언어와 문법 차이를 극복하면서 헤밍웨이의 문체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는 우리말로 표현하기 위해서 원문에 없는 단어를 첨가하거나 임의로 문장을 나눠서 번역해야 헤밍웨이스러운 간결한 문장에 말이 되게 번역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어떤 번역본을 선택할지는 절대적인 번역의 질보다 독자의 취향과 번역관에 더 달려 있다.

 

아무래도 보름 차이로 출간되었고 가장 최근 출간본이기 때문에 민음사와 문학동네의 번역본을 서로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민음사의 번역본과 비교해 문장의 길이가 좀 더 길고 부드러운 문체이며 번역투가 심하다는 평을 한다. 다르게 해석하면 전자가 헤밍웨이의 문체와 우리말스러움에 초점을 둔 번역이라면 후자는 원전주의를 택했다고 볼 수 있어 두 출판사 각 번역의 특성 차이일 뿐 무조건 단점으로 몰아 붙이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음본도 번역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문학동네본도 원전 문장을 임의로 쪼개거나 첨언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가독성과 건조함은 포기하는 대신 원문대로 번역하려 한 느낌,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영어 문장이 절로 겹쳐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다 이번 주 서평책을 <노인과 바다>로 정하면서 번역본을 몇 개를 읽었는지 모르겠다. 소장한 <노인과 바다>만 여섯 권이니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살핀 것과 어릴 적 읽었던 것까지 합치면 휴. 그런데 문학동네본을 읽던 중에 한 단어에서 멈췄다. dolphin을 만새기로 번역했고 역자의 말에서도 이 부분을 이 번역본의 핵심으로 꼽은 것이다. 읽다가 멈칫한 이유는 dolphin을 돌고래가 아닌 만새기로 표현한 번역본을 처음 봤기 때문. 

 

만새기: 조기강 농어목 만새기과 / 감성돔: 조기강 농어목 도미과 / 돌고래: 포유강 고래목 돌고래과
국어사전과 학명으로 보면 명백히 다르게 구별되는 어종이 영어사전과 스페인어사전으로 들어가면 골치아파진다.

dolphin: 돌고래, 만새기
dorado 영어사전으론 만새기 스페인어사전으론 흑도미의 남성형
delfin 스페인어사전으로 돌고래,만새기
흑도미=감성돔의 북한어
감성돔 영어사전으론 black porgy 스페인어사전으론 dorado

너무 궁금해서 돌고래와 만새기 중 뭐가 맛없나로 검색해보기까지 한다.

원문 전체에 구체적인 설명 없이 노인이 다랑어 다음에 잡은 고기가 dolphin으로 표기하고 유일한 단서는 dorado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역자도 충분히 헷갈릴만한 부분이라 생각하였다. dorado의 주석도 이인규 역은 만새기의 스페인어 표현이라 달았으나 타 번역본은 돌고래의 스페인어 표현이라 달았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내가 편집적 기억한 감이 없지 않았다. <노인과 바다>는 리얼리티 면에서 스페인어 단어와 묘사가 잘못된 부분이 꽤 있는 작품이라기에 디테일에 그렇게 집착해 읽지도 기억하지도 않고 넘겼던 것이다. dolphin에 대해 책 속에 묘사들이 몇 있고 porpoise란 단어가 나오기도 해서 그걸 감안하면 만새기쪽에 더 마음이 기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미 학계에서 결론난 부분이었고 이에 대해 문학동네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글을 올렸다.

 

만새기에 대한 얘기 뿐 아니라, 이번 '책장' 포스트에 언급한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의 <노인과 바다> 번역본 검토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이번 번역의 뒷얘기도 알 수 있다.

dolphin, 돌고래야 만새기야? 『노인과 바다』번역에 대하여 (::문학동네::)

dolphin, 돌고래야 만새기야? 『노인과 바다』번역에 대하여 2탄! (::문학동네::)

<노인과 바다> 역자 관련, 개인소장용 자료 풉니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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