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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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주는 위로, 그리고 공감

  

얼마 전 올 초 미국에 번역된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이 2011 아마존 문학·픽션 부문 올해의 책 베스트 10, 종합 베스트 100에 선정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신경숙, 80·90년대 주목할 여성작가였던 그녀는 <엄마를 부탁해>를 세계 31개국에 판권을 팔며 명실상부 요즘 대한민국 문학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런 신경숙 작가가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세 장편 집필에 집중했던 지난 8년을 뒤로하고 6번째 단편집을 냈다. <모르는 여인들>, 8년간 작가가 가장 침울하거나 내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틈틈이 썼다는 이 일곱 편의 단편들은, 신경숙 특유의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문체에 위로받고 싶은 독자들에게 그리고 오랫동안 그녀의 단편집을 기다렸을 독자들에게 반가운 연말선물이 될 것이다. 

지난 팔 년 동안 써놓은 작품들을 모아 읽으며 내가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 작가의 말 中

 

<모르는 여인들>은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중 하나이다. 제목이나 작가의 문체로 봤을 때 여성들의 이야기만 담겼을 것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웃들)’의 이야기에 가까운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남녀 모두 섬세하고 여성적인 감은 있지만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남’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동시대적인 공감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말처럼 일곱 개의 단편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 쓰인 별개의 소설임에도 무언지 모를 정서적인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 신간 단편집 <모르는 여인들>엔 [세상 끝의 신발], [화분이 있는 마당], [그가 지금 풀숲에서], [어두워진 후에], [성문 앞 보리수], [숨어 있는 눈], [모르는 여인들] 일곱 단편과 문학평론가 권희철의 해설, 작가의 말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 단편들(시간순 정렬/숫자는 책에 실린 순서임)

2. 화분이 있는 마당 -「문학수첩」2003년 가을(원제: 그 여자에 관하여)

3. 그가 지금 풀숲에서 -「창비」2004년 여름

4. 어두워진 후에 -「문학동네」2004년 가을

6. 숨어 있는 눈 -「문학과사회」2004년 가을

5. 성문 앞 가로수 -「세계의문학」2005년 여름

7. 모르는 여인들 -「문학동네」 2008년 여름

1. 세상 끝의 신발 - 「문학과사회」2009년 여름

[세상 끝의 신발]과 [화분이 있는 마당]은 일곱 단편 중 가장 연결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아버지와 낙천이 아저씨가 신발로 얽힌 인연을 소개하며 시작되는 [세상 끝의 신발]은 인터뷰어인 주인공 ‘나’가 낙천이 아저씨의 부고를 듣고 잠시 일을 접어둔 채 고향으로 내려가며 겪는 이야기다. 처음 순옥언니의 딸을 보게 된 ‘나’는 초상을 치르며 아버지와 낙천 아저씨, ‘나’와 처녀(순옥의 딸)에서 ‘나’와 순옥언니로 다시 ‘나’와 인터뷰이 발레리나로 생각의 화제를 돌리며 독자들에게 신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분이 있는 마당]은 실연으로 식이와 언어에 장애가 생긴 인터뷰어 ‘나’가 후배 K의 부탁으로 대신 집을 돌봐주면서 어떤 여자의 도움으로 장애를 고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없는 존재더라 하는 이야기이다. 일종의 괴담인데도 공포보단 훈훈함으로 다가오는 묘한 매력의 단편이다.

 

[지금 그는 풀숲에서]와 [어두워진 후에]의 주인공은 남자다. [지금 그는 풀숲에서]는 자신의 교통사고를 통해 자기의 삶과 어머니를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와 외계인손증후군에 걸린 아내의 왼손에 시달리다 생각에 빠지는 이야기가 서로 얽힌 듯 평행선을 그리는 듯 이중적으로 움직인다. [어두워진 후에] 유영철과 김길태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극악무도한 ‘살인이 직업인 인간’과 그 때문에 가족을 잃은 ‘남자’의 방황과 치유를 그렸다. 특히 [어두워진 후에]는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중 가장 이성 간의 관계를 통한 삶의 환기성이 강한 작품으로, 주인공 ‘남자’가 만나는 ‘여자’는 짧은 만남이지만 낯선 이에게 거리낌 없는 환대를 베풀며 자신을 여는 독특한 인물이다.

[숨어 있는 눈]은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가장 이질적이다. 동물(고양이)이 출연하는 유일한 단편이기도 하거니와, 실종된 A를 찾는 ‘당신’에게 독백하고 있는 화자 ‘나’의 이야기로 인물 간의 직접적인 대면이 없는 유일한 단편이다. [성문 앞 보리수]와 [모르는 여인들]은 아득한 시간이 지나 만난 이들이 서로의 삶을 각성하는 이야기다. [성문 앞 보리수]가 한때는 삼총사로 붙어 다녔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사는 세 여자의 이야기,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밝혀지는 근황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아는 아주머니의 얘기로 시작하는 [모르는 여인들]은 남편을 간병하는 ‘나’가 옛 연인이었던 채의 편지를 받고 만나게 되고 그가 들려주는 그의 아내와 가정부 아주머니의 특별한 유대, ‘나’와 채 각자 혹은 서로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지면 그 사람 신발에 발을 몰래 넣어보고 싶다. - [세상 끝의 신발] 中(p.26)

그는 간신히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구나, 생각했다. - [그가 지금 풀숲에서] 中(p.85)

이십대보다는 삼십대가 좋았고 삼십대보다는 사십대가 된 지금이 나쁘지 않다. - [모르는 여인들] 中(p.231)

지독한 세속적 일상 속에서 신화적인 체험을 길어 올리는 미학적 시선 - 정여울(문학평론가) 

앞서 언급한 정서적 유사성 외에 <모르는 여인들>에 수록된 일곱 단편들의 공통점은 현재 시점 혹은 중심 사건 외의 인물의 사연을 삽입한다는 것과 중후반부를 꿈결 같은 모호성으로 처리한다는 점이다. [세상 끝의 인물]의 소년병과 발레리나, [모르는 여인들]의 마라톤 아주머니, [숨어 있는 눈]의 몇몇 고양이들 등 어떤 면에 있어서는 거리를 던지며 이야기 속 세계가 확대되는 것이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이러한 편린처럼 지나갔던 존재들도 소설 속에 어우러져 의미를 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간접적으로 꿈이나 의식, 환상 등을 통해 분위기를 전환시키거나 결말을 맺는 방식은 신비감마저 느낄 정도로 담담했던 일상들을 승화시키고 여운을 상승시키거나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행간의 구멍을 마련한다.

각각의 단편들을 서로 연결하며 마치 연작소설처럼 이 단편집을 즐기고 해석할지, 독립적으로 한 편 한 편에 집중하는 감상을 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 때론 상처받고 때론 위로와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다져나간다. 역으로 우연이든 의도였든 자신이 타인에게 준 영향들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상’이란 이름으로 묶어 명명한다. 매우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는 다양한 타인들의 이야기, 전혀 자신과 관계없는 모르는 사람들이고 픽션인 걸 알면서도 이들의 일상을 훔쳐보고 생각에 잠기며 가슴 속에 따스한 물이 차오름을 느낀다. 3년 전 우리가 전혀 관계없는 남의 엄마 ‘너의 엄마’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위안을 받았다면 이번엔 여러 단편을 통해 확장된 다양한 타인들의 군상이 선물처럼 마음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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