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
어떤 픽션이나 이론서에도 없는,
유괴 피해자의 용기 있는 고백
서평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41956826
그녀를 처음 안 것은 뉴스를 통해서였다. 아마 이 책의 원서 출간 즈음일 것이다. 금발의 젊고 건강해 보이는 한 아가씨가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8년이 넘게 유괴·감금된 사연의 주인공이란 걸 알고 놀랐고 당당한 모습과 자기의 아픈 경험을 책으로 정리해 낸 용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책을 구매했다가 저자의 나이를 보고 한 번 더 놀란다. 수많은 유괴·감금 사건이 일어나지만 대부분 피해자가 살해되는 결말이었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학술용어도 있고 그를 소재로 한 영상이나 소설, 혹은 변태애로물들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 또 스톡홀름 신드롬은 아니어도 유괴를 소재로 한 범죄학 책이나 소설들도 꽤 많다. 그러나 이들은 실화를 소재로 하든 안 하든 제 3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재구성하고 분석·평가하는 것이 지배적이었고, 피해자의 시선으로 하거나 피해자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타샤 캄푸쉬의 <3096일>은 매우 신선하고 소중한 기록이다.
왜 하필 내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을까? 그는 왜 나를 선택했고 가두었을까? 이 질문들이 그때쯤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질문에 매달리고 있다. 그 범죄의 이유는 답을 찾는 게 절망적일 만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 유괴에 어떤 의미라도 있기를, 나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분명한 논리가 있기를 원했다. 우연히 나를 습격한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있기를 바랐다. 단지 한 남자의 정신병과 충동 때문에 나의 청소년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p.84
<3096일>은 먼저 자신이 유괴되기 전까지의 삶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8년 반의 감금생활 동안 그녀는 자신이 유괴된 날짜와 유괴 당시의 하루와 심리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자신이 유괴된 이유를 알기 위해 고분 분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괴 전 그녀의 자아정체성을 형성하고 유괴 후 그녀가 자신을 놓지 않은 힘이 된 가족과 성장배경은 중요하다.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늦은 임신으로 인한 탄생, 사람은 좋지만 유흥에 빠져 있던 친부와 놀던 혼란스러움, 복잡한 가족사에 따른 애정결핍감, 할머니에 대한 애착, 유치원과 학교생활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들 등 그녀는 자신이 태어나서 유괴되기까지의 삶을 하나둘 정리해본다. 그리고 그것과 유괴를 연결해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나타샤가 유괴된 1990년대 중후반에는 유럽에 각종 끔찍한 유아유괴사건이 판을 쳤고 일부는 아동포르노산업과 관련되기도 하였다. 나타샤도 뉴스를 봐서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10살 꼬마 나타샤는 자신이 145cm에 45kg의 통통한 몸매에 얼굴도 예쁘지 않고, 금발 머리도 아니기 때문에(나타샤는 어릴 때 연한 갈색 머리로 자라면서 머리색이 바뀌었고, 지금도 전형적인 금발은 아니다) 유괴의 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등교길에 나타샤는 유괴되어 집과 멀리 떨어진 스트라스호프의 좁은 지하방에 갇힌다. 기분 나쁜 냉기와 습기, 어둠과 벌레와 싸우며 그녀는 그 곳에서(윗집이라 부르는 범인의 공간까지 세계가 확대되기는 하지만) 어린이에서 사춘기 소녀로 그리고 성인여자로 성장되게 된다. 몇 년은 거울조차 보지 못하면서.
지금 내 앞에 인간성이 결여된 한 사람이 서있었다. 겉모습은 부서질 듯 보이고, 그의 눈빛은 한 연약한 인간을 향하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낙오자이며, 작은 아이를 억압하는 것으로 힘을 과시하려는 인간. 연민을 느끼게 하는 광경이었다. -p.127
넌 이제 가족이 없어 내가 너의 가족이야. 내가 너의 아빠고 엄마고 할머니고 언니인 거야. 너에겐 내가 전부야. 너에겐 이제 과거란 없어. 내 옆에서 더 좋은 것을 가지게 될 거야. 넌 정말 운이 좋아. 내가 널 받아들이고 너를 잘 보살피고 있으니까. 내 말만 들어. 내가 너를 만들었어. - p.131
유괴범은 성인남자이고 피해자는 여자아이, 장기간의 감금을 통한 일종의 양육(사육?)을 행한다는 점에서, 실제로도 그런 사건들이 있었기도 하기에 사람들은 흔히 성노예 관계로 접근하려 한다. 실제로 나타샤가 탈출하고 나서 언론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며 그런 쪽의 내용을 취재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녀는 범인과의 성적 관계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피했으며 이 책의 서술을 봤을 때도 그런 것과는 거의 거리가 멀다. 어린이였을 때는 비교적 호의적이었지만 월경이 시작되고 감금이 장기화되면서는 그녀의 조그만 흔적도 못 참아 삭발시킬 정도로 결벽이 심해지며, 혹독한 다이어트와 노동을 시키고 옷도 제대로 입히지 않고 툭하면 폭행을 일삼는다.
자신의 인생의 8년 반 동안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범인과 지내며 범인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녀는 살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이해하고 알기 위해 애써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의 강도는 높아졌지만 범인이 그녀에게 속내를 털어놓거나 경계를 푸는 일이 조금 많아진다(나중엔 같이 외출까지 한다). 범인은 끝까지 자신의 유괴 동기를 밝히진 않지만, 그녀가 자신으로부터 절대 도망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면 자유를 주는 대신 끝까지 계속 같이 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범인은 그녀의 이름을 뺏고 삶을 뺏으며, 자신의 이상적인 시나리오에 맞춰 나타샤가 반응하고 살기를 원한다. 이러한 범인의 심리는 유괴범과 장기감금의 일반적 분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흔히 이럴 경우 피해자는 정신 전반이 붕괴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타샤는 이겨낸다.
나타샤는 절망이 극에 달해 감금생활 동안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결국 나타샤는 삶을 선택하고 탈출에 성공해 자유를 찾는다. 8년 반, 동안이었던 30대 중반의 남자(범인)가 40대 중년이 되고, 10살의 아이가 19세의 성인이 될 만큼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도망쳐 주민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까지 가기까지의 과정도 힘겨웠던 것처럼, 그녀는 탈출해서 지금까지 자신을 향한 또 다른 폭력과 전쟁 중이다. 그녀의 존재는 이 유괴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못한 원인이었던 수많은 경찰스캔들을 끄집어냈으며, 세간의 무섭도록 열렬한 관심은 동정을 가장한 기만이었다. 또 그녀의 경험과 감정을 단순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일축하려는 학계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해야 하였다.
차라리 죽기를 갈망했던 나타샤가 결국 삶을 택하자, 그런 나타샤에게 끊임없이 삶을 강요하며 나타샤와의 이상적인 동거를 꿈꿨던 범인은 자살을 택한다. 이는 목차와 출판사가 제공한 책 소개에도 나와 있는 정보이고 나타샤 캄푸쉬 사건을 검색해도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독서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천인공노할 스포일러 행위는 아니다. <3096일>의 핵심은 신문과 방송이 보여주는 사건의 표면적인 사실관계가 아니라 피해자 스스로 달력을 얻어내 날짜를 새고 일기를 기록하며 버틴 8년 반의 생생한 경험담이다. 한편 역자 후기에도 언급이 없어 왜 책날개에 나타샤 캄푸쉬 외에 2명의 사람이 더 소개되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책의 저작권 정보 면을 확인하고 알았다. 엄밀히 말하면 <3096일>이 나타샤만의 수기는 아니고 나타샤의 인터뷰 녹취록과 일기를 토대로 전문작가가 정리한 것이다.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중에서도 나타샤가 겪은 일은 언론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큼 특별하고 심각한 사건이었다. 살아있다는 이유로 범인보다 그녀가 주목받고 신상이 공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명하고 멀리 떠나 살라고 권하는 것처럼 24살의 나타샤가 탈출 이후 지금까지 시달렸고 앞으로도 견뎌야 할 세상의 편견은 엄청나고 잔인하다. 대중들은 알 권리를 가장해 그녀에 대해 집요하게 캐고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을 믿고 놓지 않으며, 탈출 4년 후 자신의 감금 경험을 모두 정리해 책으로 발표한 그녀의 침착함에 감탄하고 응원한다. 나타샤의 용기 있고 귀중한 고백이 유괴 피해자들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고 편견을 지우는 데 한 역할을 했음 한다. 그리고 그녀의 남은 삶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평범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