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 왕의 공부
김태완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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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왕의 공부]

철학의 눈과 입으로 왕의 공부를 읽고 논하다
 



매우 반가웠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개념 정도만 배우고 스쳐 지나갔던 경연, 그 후 여러 교양서나 강의를 통해 경연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쌓을 수 있었으나 다른 주제를 논하면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내내 아쉬웠다. 경연을 논하는 학문은 사학, 교육학, 정치학 등 다양한데 그렇다면 그 경연이란 무엇인지 시스템이나 교재 등 총체적이고 원론적인 내용들을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 경연만을 단독적으로 조명했던 책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두어 권 정도밖에 없는데다가 출간된 지 10~18년 된 책이고 학술서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지난 달 출간한 김태완의 <경연, 왕의 공부>는 해묵은 니즈를 일소해주지 않을까 싶어 무척 기대하고 반겼다.

 

동양의 제왕교육, 경연의 연원은 중국 하·상·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 깊고 우리는 고려 때부터 도입하였으나 체계가 완전히 잡히고 활발했던 것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성리학이 가장 발달했던 조선에서였다. <경연, 왕의 공부> 역시 조선의 경연을 소재로 한 책이다. 본문에 앞서 프롤로그와 총천연색 경연자료(사진과 그림으로 읽는 경연)로 간단히 몸풀기를 한 다음 1장 경연과 왕의 하루를 통해 경연의 종류를 파악하고 실록 인용을 통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한다. 2장 경연의 모든 것에는 경연의 역사와 교재, 교수 등을 총정리한다. 여기까지 실록을 중심으로 경연을 살펴보았다면 3장 경연의 기록 그 숭고한 작업에서 기대승의 논사록과 이이의 경연일기 같은 개인 기록을 통해 경연을 바라보고 에필로그와 부록(참고문헌, 세부목차)로 마무리한다.

 

<경연, 왕의 공부>의 내용은 조선 왕의 학습방법인 경연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동양철학 전공자(이이 연구로 박사학위)인만큼 철학 관점에서 경연을 바라본다. 그래서 경연에 대한 다른 학문의 다른 학자들의 견해와 철학과 저자의 견해를 비교해보며 읽길 권한다. 학자별 개인적 차이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철학에선 경연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 책의 전반적인 논조도 그렇다. 또한 신권, 왕을 가르친 학자(관료)의 관점으로 경연을 해석한다. 그래서 이 책은 경연광이었던 성종을 이상적으로 평가하고 경연을 싫어한 세조나 연산군을 비판하는데, 경연은 단순 교육이 아니라 정치 방법이고 신권을 강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왕권에 경연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또 철저한 성리학 교육이기 때문에 세도정치 이후 근대시기에도 효과적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철학 관점에서 경연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 책이 갖는 또 다른 차별적 특징은 경연에 대해 실록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개인 기록물을 인용하며 중국의 고전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성리학자들에 대한 평가 뿐 아니라 그들 당사자들의 생각과 당시 학계 흐름을 직접 엿보고, 사서의 행간 혹은 그 이상을 깨달을 수 있다. 특히 개인의 경연 기록물은 학파 계보나 정통론 논쟁, 학자들 간의 묘한 관계 구도, 지금과 상반된 인물 평가를 볼 수 있고 사학과 철학의 의견이 갈리는 이유를 극명히 알 수 있는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경연을 설명한다고 해서 저자의 입장 혹은 학계의 입장만 고집하는 책은 아니며, 읽어보면 저자가 자신과 다른 견해도 존중하고 굉장히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경연, 왕의 공부>가 단순 왕의 공부를 설명하기 위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선 왕의 공부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주목할 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배우고 토론했던 것은 철학(유교경전)과 역사(중국사, 한국사)였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대통령들이 인문학 소양이 부족해 발생한 일화를 소개하며 책을 시작하는데, 이는 왕과 대통령을 동일시하거나 경연의 공부법이 소수에 국한된 특수교육임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에 소홀한 작금의 세태를 꼬집으며 과거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순수 인문학의 위기는 계속 심화되는 반면 다른 학문들의 인문화 경향은 높아지고 있으며 출판 트렌드 역시 최근 인문학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또 교육열은 어떠한가. 그런 점에서 <경연, 왕의 공부>을 통해 인문학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올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지원과 추천을 받은 책인 만큼 <경연, 왕의 공부>는 꼼꼼하고 알찬 저술이 돋보인다. 인용 자료(글, 사진, 그림)도 많고 빽빽한 글씨라 430쪽 정도지만 체감 분량은 500쪽 이상이다. 목차만 보고 정조 사례만 있고 실록 외 기록물도 논사록과 경연일기로 끝이라고 오판하기 쉬운데 경연 사례도 몇몇 왕에 국한하지 않고 골고루 담았으며 기록물도 정말 다양하다. 본문 자체도 유익하지만 또 하나 이 책의 장점으로 꼽고 싶은 것은 인용한 각종 기록들의 충실한 번역과 해설·주석이다. 이런 고서들은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전문을 읽기는커녕 접할 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이 부분만 읽어도 상당한 분량이고 본문을 읽는 것과 별도로 또 다른 독서의 재미를 준다. 이렇듯 <경연, 왕의 공부>는 독자의 역량에 따라 하나를 얻어갈 수도 있고 백을 얻어갈 수 있을 만큼 다면적이고 깊이 있는 책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경연이 흔하고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닌데 한 달 간격도 채 되지 않아 <경연, 왕의 공부>와 굉장히 유사한 책이 또 출간되었다. 도현신 저의 <왕가의 전인적 학습법>이란 책인데, 전자는 제목이 왕의 공부고 후자는 제목이 왕'가'의 공부지만 두 책 모두 서연 등 조선의 왕실 교육 시스템 전반을 다루는 책이고 이러한 공부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논하는 책이기 때문에, 후자가 종학에 대해 더 다뤘다는 점 외에는 비슷하다. 왜일까, 그냥 최근 인문학 열풍 트렌드 맥락이나 늘 인기 많은 공부법 책의 일환에서 경연 책이 잇단 출간된 것인지 특별히 올해 경연이 주목받는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이유야 어쨌든 경연을 분석하고 논하는 책이 계속 나오는 것은 독자로서 언제나 환영이다.   

 

 * 201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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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cktns10 2011-10-1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태완작가와 정독도서관에서 만나게 되었다. 경연이란?부터 시작하여 왕의 공부의 서론부분을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이해함이 더 쉬워지게 되었다. 계속되는 강의가 있는데 함께 들으면서 왕의 공부에 대해 세밀하게 검토하며 유익힌 생활의 적용도 살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