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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 지구를 위협하는 맛있고 빠르고 값싼 음식의 치명적 유혹
파울 트룸머 지음, 김세나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냉동피자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현대 식품산업 파헤치기
오늘 먹은 우리의 식단을 돌아보자, 단 하나의 가공식품도 먹지 않았을까. 우리의 식생활은 공업화에 지배당한지 오래이다. 불과 반세기만에 우리는 수많은 조상들의 생활문화를, 음식재료를 잃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의 배후엔 식품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와 변화를 소비자들은 기꺼이 실험대상이 되며 받아들였다. 단적인 예로, 예전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보배 취급을 받았고 그래서 많은 식품에 들어갔던 식품첨가물 중 현재는 사용금지성분으로 규정된 것이 얼마나 많은가. 혹시 가공식품을 구매할 때 전성분표를 확인한 적이 있는지, 자신이 어떤 걸 먹고 있는지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비단 식품에만 국한되기보다 모든 공산품에 해당되지만) 성분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상품도 많으며, 설사 자세히 해놓았다 해도 일반인은 알기 힘든 화학물질의 나열에 골치 아파진다. 많은 소비자들이 별 관심 없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지나치는 가운데, 일부 열심히 보는 소비자들도 아는 성분들을 기초로 음식을 피하는 기준으로 삼거나 그래도 아는 게 힘이라고 자신이 먹을 음식이 어느 정도 몸에 해로울지 대충 가늠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그를 넘어, 퇴근 후 지친 몸으로 귀가해 평소처럼 전자레인지에 데운 냉동피자로 허기를 달래다가 갑자기 식품첨가물 등 자신이 먹고 있는 냉동피자의 모든 것이 궁금해져 기어이 각종 인터뷰와 조사 끝에 340여쪽에 달하는 레포트 형식의 단행본을 완성한 소비자가 있다.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경제전문기자로 활동 중인 파울 트룸머이다.
제목만 보면 피자의 인기와 세계의 피자 등을 소개하는 '피자 A to Z' 같은 느낌이지만 이 책은 (냉동)피자를 대표로 현대 식품산업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책이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는 자신이 먹던 피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과 의심을 품고 반죽·토마토소스·육류·치즈·양념·운송의 피자의 재료와 생산을 살펴본다음 우리의 미래와 현재 이슈들 그리고 바른 식습관에 대해 고민하는 식으로 목차가 짜여 있다. 물 흐르는 듯한 편안한 목차지만 다루는 내용은 가볍지 않다. 식품첨가물과 식품개발·공장생산에 국한되지 않고 식품산업과 연관된 주변산업과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다룸으로써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왜 하필 피자일까, 이 책의 저술 동기가 어느날 저녁식사로 먹던 피자여서? 그보다는 오늘날 피자라는 음식이 가진독특한 정체성 때문인데, 미국화·인스턴트화·정크푸드화된 이 이국의 음식은 오늘날 세계의 입맛을 표준화시키는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다. 또한 어떤 계층이나 상황에도 잘 어울린다. 이러한 피자의 변신과 확산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식품산업의 발전 양상과 묘하게 많이 닮아 있으며 피자의 재료와 생산과 관련된 것들을 건드려보면 현재 식품산업의 거의 모든 관련 산업과 문제들을 건드리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 대중적인 음식을 소재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건강의 양극화(기아와 비만 심화 포함), 저임금노동자 확산, 거대기업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식품산업, 끝없는 변화와 실험을 강요당하는 농축산업, 세계화와 국제문제 등 피자가 세계를 정복해가는 동안, 식품산업이 성장하면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건강 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최대한 어느 한 편에 경도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내용들을 소개하기 앞서 그와 대비되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기업이나 농가 사례를 언급하고 왜 모두가 그렇게 하기 힘든지를 설명한다. 분량이 많진 않지만 각주와 표를 실어 이해를 돕고, 본문의 설명도 충실하다. 이 책 한권만으로도 대략적인 반세기 동안의 식품산업의 역사와 냉동피자 뿐 아니라 미국식 피자의 재료와 생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식품부문별 주요 기업들, 우리가 기억해야할 식생활 관련 주요 이슈들이 대략적으로 정리가 된다. 특히 피자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들로 다른 가공식품 전성분표에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고 기능이 무엇인지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워낙 다루는 범위가 광범위하니 내용을 깊이 들어가진 못한다는 점, 본문이 목차만큼은 깔끔하지 못하고 약간 산만하다는 아쉬움을 조금 받긴 했으나 일반인 독자의 입장에선 꽤 많은 궁금증을 풀어주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흥미롭고 만족스러웠다. 아쉬운 부분을 조금 틀어서 생각하면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강점으로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한데 저자의 끊임없는 경로 추적과 보여줌이다. 즉 이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상의 배경과 이유를 찾고 서로 연결하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가 모든 결론을 짓고 정리해서 독자에게 전달하기보다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맛있고·빠르고·편하고·값싼 음식을 원하는 소비자와 파려는 기업의 완벽한 호흡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먹는 음식들,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를 통해 뒤늦었지만 한번더 생각하고 조금더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