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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과학 - 생생한 판례들로 본 살아 있는 정의와 진리의 모험
실라 재서너프 지음, 박상준 옮김 / 동아시아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법정에 선 과학]
구성주의적 입장에서 함께 엮어 보는 현대 과학과 법의 쟁점과 이슈들
<법정에 선 과학>은 풍부한 판례들을 통해 오늘날 과학적 진리와 사법적 정의가 구성되는 정치사회적·문화적 맥락들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한 인식론적·지적 전환점들은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과학과 법이 구조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는 통상적인 진단을 넘어서서, 사회에 깃든 채로 운용되는 이들 두 제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일정 정도 서로를 구성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책 제목도 인상 깊고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읽을지 말지에 대해 무척 고민했던 책이다. 첫째는 영미법(미국)에 입각한 책이라 대륙법계의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논의일지가 의문스러웠고 두번째는 법이나 과학이나 1년이 무섭게 계속 바뀌는 분야인데 15년도 전에 나온 책의 내용이 현재에도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차와 설명을 읽어보니 충분히 우리에게도 적용 가능한 이슈들이고, 미국의 선례는 어떠한지 독서를 통해 탐구하는 시간도 흥미로울 것 같았고, 일단 법과 과학의 만남이란 소재도 독특하고 녹녹지 않은 내용일 듯하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것이 많은 유익한 책이란 기대에 읽기로 결심했다. 설사 우려가 맞더라도 법역사나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취할 수 있더라도 충분히 유용한 책이기에, 다행히 읽고나서 후회는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과학기술학이란 학문을 알게 된 것이었다. 과학기술학이란 과학기술에 대해 인문사회학적 접근의 통칭으로 다양한 학문과 얽혀 있다. <법정에 선 과학>은 구성주의의 관점에서 현대 과학을 구성하는 사회구조적 맥락을 살펴보고 법과 과학을 따로 놓지 않고 함께 맞물려 살펴 보는 책이다. 책의 초반엔 과학과 법의 교차점에서 생기는 갈등과 공존지점을 찾으며 시작한다. 과학은 진보하고 법은 규제하고 재판한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일련의 소송들을 보며 법은 과학의 발전을 발목잡는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한편으론 과학의 발전이 종래에는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들을 야기했고, 그런 혼란과 피해 속에 기준을 잡고 판단하는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과학자, 법조인, 정부의 입장에서 이슈와 담론을 한참 정리하고나면, 지금까지도 중간중간 판례를 소개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판례들을 보여주고, 앞으로 해결할 과제는 무엇인지 제언하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법정에 선 과학>을 읽고 법적 관점에서 현대 과학을 종합적으로 보고 미국의 판례들을 보며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역시 과학의 범위가 워낙 넓어서일까, 기대한만큼 다루는 영역이 매우 광범위하고 종합적이진 않았고 주로 생명윤리를 중심으로 유전공학이나, 제조물책임, 가족 등 세부 관련 주제를 다뤄서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현대 과학과 법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전반적인 이해와 기준을 삼는 데는 기대한만큼 만족스러웠다. 출간된지 오래되었다고 문제로 느껴진다거나, 이 책을 바탕으로 한국에 적용과 추가적인 논의를 생각해보는 것은 역시 전공자가 아닌 이상 욕심인 듯 싶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일반인 독자가 보기에 너무 어렵고 딱딱한 책은 아니다. 일반 교양 수준에서 누구나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썼다. 출판사의 자극적인 띠지 카피 같은 느낌의 책은 아닌 것 같고, 현대 과학과 법의 딜레마나 이슈나 담론들을 알 수 있는 기본적이고 종합적인 책을 찾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