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와 브루노
루이스 캐럴 지음, 이화정 옮김, 해리 퍼니스 그림 / 페이퍼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실비와 브루노] 앨리스에 가려진 루이스 캐럴의 역작, 드디어 한글 완역되다! 

 장장 20년을 공들여 썼지만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던 저주 받은 걸작 


<앨리스>만큼 분석당하는 동화가 있을까, 19세기 영국이 낳은 이 문제작은 수많은 수학자와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영문학자에 의해 열광되고 분석되어 왔다. 또 수많은 버전의 동화책과, 만화영화, 영화 등으로 각색되고 패러디되었다. 가장 원문 완전판에 가깝게 복원된 것은 엄청난 주석이 달려 판을 거듭하고 있다. 수학과 교수였지만 수학 자체보다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로 그의 인생과 인간적 면모와 작품들이 연구 대상인 루이스 캐럴, 그러나 그가 생전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역작은 <앨리스>가 아니라 다른 작품이었다?

<실비와 부르노>는 <앨리스> 시리즈 후 20년에 걸쳐 쓴 대작 환상문학이다. 그 어떤 문학보다 새롭고 자신이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글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쓴 이 책은 <앨리스> 이상의 기괴함과 난해함을 보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앨리스>를 변증적으로 극복했고, 환상과 현실의 비중이 동등해지고 플롯이 더욱 정교해졌다. 그러나 <앨리스>의 엄청난 성공과 관심과 달리 <실비와 브루노>는 대중들에게 처참하게 외면당했으며, 평론가들이나 학자들에게 조명도 훨씬 덜 받았다.   

이번에 최초로 한글 번역, 그것도 완역판으로 출간되는 <실비와 브루노>는 장르문학잡지 <판타스틱>(출판사: 페이퍼하우스)에서 번역 연재해오던 것을 단행본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리고 1889년 출간한 <실비와 브루노>, 1893년에 출간한 <실비와 브루노 완결>을 모두 엮어 한 권으로 출간하였다. 번역은 다트머스대 비교문학 전공(석사)한 이화정이 맡았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주석을 달았고 마지막엔 간단하게나마 몇장의 작품해설을 썼다. 삽화는 앨리스 헤이버가 그린 한 장 외에 모두 해리 퍼니스가 그린 원문 삽화를 그대로 실었다. 삽입된 시(노래)는 11장 폴과 피터를 제외하고는 영어원문과 병기하였다. 다른 언어 번역본에 비해 늦은 출간이지만, 최대한 꼼꼼한 구성으로 한글 번역을 오래 기다렸을 독자들을 최대한 만족시키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내용은 주인공 '나'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겪는 이야기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친구인 아서를 방문하는 도중 기차에서 아서가 연모하는 뮤리엘 백작 영애를 만나고, 계속 그녀와 교류하며 보고 겪는 일련의 이야기가 현실에서의 '나'의 이야기라면, 환상 속에서는 아웃랜드 총독이 부재한 사이 야욕을 부리는 부총독과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총독의 자녀들인 요정 실비와 브루노를 위해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담이다. 기본적으로 현실의 뮤리엘 백작 영애와 환상 속의 요정 실비가 똑닮아 있고,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말을 할 때 '나'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시점이 된다. 

<실비와 브루노>를 읽는 내내 어렵다란 느낌이 지배했다. 일단 루이스 캐럴 문학 속의 언어유희나 풍자는 당시 유행이나 사회분위기에 기반하고 있기에 현대로 올수록 그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난해하게 받아들여진다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현실과 환상의 전환, 부조리극의 스토리텔링, 엄청난 수의 영어 언어유희와 세태풍자에 쉽게 글이 파악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도전의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매력 넘치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읽고 있으면 정말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발상을 집대성했고 개인의 취향을 완성했다는 것이 다분히 느껴져, <앨리스>를 읽을 때완 또다른 감흥이 느껴지고 또다른 루이스 캐럴의 모습이 보인달까.

 
특히 언어적인 면이 인상 깊었는데 어려서 단어구사를 제대로 못하는 브루노나 계속 비슷한 단어로 말장난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영문학적 지식이 풍부해서 원어 그대로의 늬앙스와 의미들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역자는 볼드체, 각주, 애기말투 등을 써가며 최대한 살리려고 하고 있다) 시나 노래, 삽화 등등 다른 것들도 물론 흥미롭다. 작품에 대한 아쉬움보다 책을 읽는 사람의 능력 부족으로 한번 읽어서 의미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 한스러웠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한번 독서 도전하고 싶은 작품.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2972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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