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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시 1 -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ㅣ 걸크러시 1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걸크러시1]
자기 삶을 개척하다 역사를 개척한 여자들
‘그’는
제게 영감을 줍니다.
‘그’는
아름답습니다,
인간을
낳는 ‘그’는
위대합니다….
여성과
모성에 대한 예찬을 우리는 역사 내내 숱하게 봐왔다.
하지만
위인의 어머니,
아내,
연인,
뮤즈,
조력자가
아닌 그 스스로가 위인으로 인류 역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여자는 흔치 않다.
‘잊혀진
역사’,
‘알려지지
않은 역사’
등의
표현으로 포장되며 발굴되고 조명 받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자의
권리는 유색인종과 짐승의 권리보다 더 늦게 논의되었다.
여학교,
여성단체,
여성정책
등 아직도 여성들을 분리하는 집단과 정책을 만드는 방법이 여권 신장에 유용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걸크러시1>을
애써 심드렁해하며 기대 안 하고 반,
그럼에도
혹시나 일말의 기대를 걸며 호기심 반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번역‧출간한
문학동네는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이란
부제를 붙였다.
어떤
여자들과 그들의 삶이 담겨 있을까가 먼저 궁금하였다.
19세기
프랑스의 수염 난 술집 사장님으로 시작한다(클레망틴
들레).
왕,
배우,
운동선수,
작가
등 시대와 국적을 넘나들며 30명의
여자를 각 15명씩
책 두 권으로 소개하였다.
인물마다
분량도 3~8쪽까지
제각각이다.
책을
읽으며 내면의 이상한 마음과 마주쳤다.
‘고작
이 정도로?
이런
면이 있어도?’하며
작가의 엄선에 놀라고 염려하며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걸크러시girl
crush’, 외래한
인터넷 신조어로 여성을 (성적이지
않은 면으로)
끄는
여성 정도의 의미이다.
원제를
보니,
번역
제목이나 부제를 두고 편집자와 역자가 고심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는
‘Les
Culottées’ 여성용
속바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페넬로프
바지외는 이 제목에 ‘Des
Femmes Qui ne Font Que ce Qu'elles Veulent그들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는 여자들’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인간으로서의
오롯한 해방의 의미에서 ‘팬티
벗고 소리 질러’
정도의
표현이었을까.
‘Sans-culotte상
퀼로트’가
잠시 떠오르기도 하였다.
‘퀼로트(귀족들의
하의)를
입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프랑스
혁명의 추진력이 된 사회 계층이다.
<걸크러시1>을
읽으면서,
이
책에 독서 욕구를 느낀 이유를 상기해보았다.
역시
여성으로 30여년을
산 인간으로서,
자기
의지로 자기다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개척한 것이 곧 역사를 개척해,
오늘이
있게 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하니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동양의
분단국가 국적의 여성으로 살면서,
여권
신장과 양성 평등을 논하는 것은 언제나 제한적이고 조심스럽다.
그저
훌륭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며,
단속하며
살고 있다.
성
차이를 인정하되,
비슷한
조건의 남성보다 좀 더 능력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낫자고,
그리고
그보다 더 침묵하며 징징대지 말자고.
그래서
수도 없는 사람을 죽이고 부도덕한 면이 있어도,
다른
수록 위인들과 비교해 시시한 면이 있어도 똑같이 대단한 여자들이라고 소개하고 추어올리는 작가를 보며,
꽤나
해방감을 느꼈다.
‘이
정도의 남자 위인들을 생각해봐,
충분히
훌륭한 여성들인데 뭘 숨겨,
넌
뭘 기대한 거야.’하고
작가가 말을 건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웹툰은 어떤 건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동
시대 또래의 작품이라 더 열심히 읽었다.
마리포사
자매나 토베 얀손처럼 존재는 잘 알지만 인생은 전혀 몰랐던 경우 읽으며 놀라고 흥미로웠다.
아그노디스
편을 읽으며 왜 한번도 고대 그리스의 여자 의사라는 존재를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반성하였다.
서양
백인 중심적인 글로벌 스탠다드(?)
세계관에서
접하기 힘든 소수민족 왕과 전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걸크러시1>에서
가장 멋지다고 눈길이 많이 갔던 인물은 무측천이었다.
왕족도
아니었고,
오로지
운과 실력으로만 왕조시대 황제 자리까지 올라갔고 오늘날까지 평가가 갈리는 과오 분명한 여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남자 왕도 많지 않았던가,
흔한
왕의 면모지 않나 싶다.
고른
지역과 직업 선택도 그렇고 남장여자,
장애인여자,
레즈비언,
트렌스젠더까지
고려하는 작가의 넓고 섬세한 대상 선정이 참 멋지다. 남은
절반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서둘러
2권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