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이라는 말이 있다. 동상이몽이란, 하나의 동일한 현상을 두고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이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것을 말한다.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를 읽고나서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을 읽고 어떤 단어가 생각나냐고 물으면 그건 바로 '동상이몽' 이라는 단어이다. 이 책은 '성경' 이라는 단일한 텍스트를 두고 이해를 달리 하는 두 집단이 어떻게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노예찬성론자와 노예반대론자사이에 성경을 해석하는 약간의 방법론상의 차이는 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광의적 해석(broad interpretation)'과 '협의적 해석(strict interpretation)' 에 따른 차이이다.
하지만 '인종주의'에 있어 이러한 학문적 이론에 따른 방법론상의 차이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성서의 해석에 입각해, 노예제도하에서 노예들의 처지를 주인들이 가부장적인 보살핌으로 돌봐줌으로써 흑인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그들의 복지를 마련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들이 성경에 대한 '협의적 해석(strict interpretation)' 이라는 방법론으로 정당화되어지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목도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문화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좋은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미국의 역사와 인종주의에 대한 '지식' 과 '교양' 을 얻는다는 측면에서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미국에 대한 이야기만 있고 한국적 상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측면에서는 다소 나마 아쉬움을 주었다.
이 책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머리' 가 아닌 '가슴' 으로 읽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노예해방 전쟁이 끝난 지 200여년이 흐른 시점에 있어 오늘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주의를 정당화하는 경향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은 우리가 아닌 타자에 대한 배타적 관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사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역차별, 실질적인 실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10대 후반에 치른 한번의 시험에 따른 대학의 간판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는 학력차별, 그리고 이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부당한 제도와 관습에 따른 여성차별 등등.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는 결코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오늘날의 한국의 상황을 다시한번 뒤돌아보게 하는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차별은 나쁜 것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머리' 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하지, 진정 '가슴' 으로 느껴서 그렇게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보듯이 성경이라고 하는 단일한 텍스트를 두고도 각각의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여러 사례를 통해,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이중성과 함께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목격할 수 있다.
흑인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 미국은 오늘날에도 그 모습만 달리 했을 뿐이지 타자에 대한 배타적 관념에 근거한 인권침해 행위는 여전히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과학과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서 벌이지고 있다는 것이 다른점이다. 가공할 위력을 가진 첨단 군사적 무기를 동반해 아군이 아니면 그 외 나머지는 모두 다 적이라는 식의 패권적 이데올로기가 계속되고 있는 21세기의 국제적 상황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라는 책에서 논의되는 흑인노예제는 끝났을지 모르겠으나, 여러 종류의 다양한 형태로 자신과 이해간계가 다른 집단에 대한 배타적 행위가 국내외적으로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흑인노예제가 주는 교훈은 '완결적 상황' 이 아닌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