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바늘처럼 가늘고 빳빳한 붓으로 터럭 한 올을 무려 수 천 번이나 거듭 그어 호랑이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이런 극사실 묘법을 썼으면서도 전체적으로 호랑이의 육중한 괴량감(塊量感,volume)이 느껴지고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민첩 유연한 생태까지 실감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 정말 경이롭다. 호랑이가 살아 있는 것이다 !
- 송하맹호도 - 단원 그림의 설명중에서-26~28쪽
표구는 원래 일본 말이다. 우리 옛말은 장황裝潢이었고 표구사는 배첩장褙貼匠이라 불렀다. 이제는 '표구'가 표준어가 되었으므로 그냥 쓰긴 쓰지만, 그래도 옛 그림의 '장황'에 담긴 뜻만은 간략히 짚어 보려고 한다. 옛 그림의 표구는 다섯가지로 대별된다. 족자, 두루마리, 화첩, 병풍, 그리고 부채가 그것인데, 이 다섯가지 그림은 다 펴고 접을 수 잇다. 붙박이 서양 그림과는 전혀 다른 특색이 여기에 있다. -55쪽
선비의 코 앞까지 드리워진 실가지 이파리들을 보라 . 마치 하늘에서 꽃비가 오고 있는 양, 가지도 없이 나부끼는 이파리로만 열을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옛 그림에서 이르는 바 '필단의연筆斷意連의 경계이니, 붓 선은 끊겼으되 속뜻이 절로 이어진다. 그린 이의 가슴속에 봄볕이 이미 가득한데 구태여 가지까지 일일이 그려 넣을 필요가 어디 있으랴! 여기선 오히려 가지를 그려 넣으면 큰일이 난다. 일부러 이파리만 툭툭 쳐 넣었기에 온화한 봄 기운이 애써 살아 났는데, 실가지 까지 애면글면 그렸다가는 그 예리한 선에 주인공의 봄 꿈이 베어져 여지없이 깨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 김홍도가 그린 마상청앵도 에서-63쪽
52세의 다산 선생이 시집간 어린 딸을 위해서 시를 짓고 쓰고 또 그림을 그렸다.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온갖 정성을 들여 이제 막 봉오리를 터트리는 매화꽃가지에에 앉은, 작은 새 한쌍을 채색까지 더하여 그렸다. 글과 그림의 바탕을 사용한 낡은 천 조각은 결혼한 지 사 십 년이 되어가는 부인, 그러나 벌써 십삼 년째 홀몸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애처로운 아내의 물 바랜 다홍치마 조각이었다. 이 조그만 화폭에서 우리는 대학자 정약용이 처했던 힘겨운 유배 현실과 그 역경의 와중에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한 조각 따뜻한 부정父情의 온기를 확인한다. -165쪽
조선은 성리학 국가로서 '민위천民爲天' 곧 '백성이 하늘이라'고 하는 왕도정치를 펼쳤으므로 세계사에 드믄 519년의 장수를 누렸다. 그 조선은 우리의 조국이었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고조할아버지는 물론, 거슬러 올라 17대 위로부터 줄곧 우리나라를 대표해온 떳떳한 이름이 조선이다. 동학농민군도 정조때의 정치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지 나라를 뒤 엎자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상을 대할 낯이 없게하는 저 '이조'라는 말을 절대로 쓰면 안 된다. -204쪽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한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 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렵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며,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핵을 가지면 어린애 칼 쥔 격이라 걱정되니 제 스스로 개발않겠다고 맹세하고, 미사일 연구는 발사 거리를 남의 허럭을 맡고 그만큼만 진행한다. 심지어 전력, 통신 등 기간산업까지 외국이 살 수없으면 선진국이 아니라하니, 이 모든 상황을 옛날과 비교해서 누가 조선을 사대주의 국가라 말 하는가? 나는 두렵다!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후손의 나라가 과연 백 년이나 가겠는가?-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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