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입니다 - 도올의 예수전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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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중요한 말이 "회개하라"라는 말입니다. 그 원의는 "메타노에오"인데, "메타"는 "바꾸다"라는 뜻이고 "노이아"는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라"는 뜻은 "메타노에오"에는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라", "인식을 전환하라", "달리 생각하라"는 뜻이지 "회개하라"는 뜻은 없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잘못을 뉘우친다는 의미이지만, 이 말은 인간의 현존을 잘못을 저지를 존재로 규정할 때 쓸 수 있는 말이며, 이 말은 인간보편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이것은 구약의 구습에서 유래된, 인간을 무조건 죄인으로 규정할 때만이 가능한 말입니다.


나는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죄"라는 것은 "하마르티아"라는 것인데, 그것은 궁술에서 쓰이는 말로서 그냥 "과녁을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빗나간다는 뜻은 실력이 좀 모자란다는 뜻이고, 실수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과녁을 빗나간 것이 곧 악은 아니지요. 우리의 삶이 우리 삶의 도덕적 이상(과녁)에 좀 못 미친다고 해서 그것을 악이라고, 죄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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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유혹 - 상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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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본질에서 심오하게 인간적인 그 부분이 우리로 하여금 마치 우리 자신처럼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의 수난을 추구하게끔 도와준다. 만일 마음속에 이런 따스하고 인간적인 요소를 지니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는 그런 부드러움과 안도감으로 우리의 마음에 이르지 못했을 터이고, 절대로 우리의 삶을 위한 귀감이 되지 못했으리라.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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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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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상해? 자네, 그런 말일랑 아예 하지도 말게. 이 세상에는 죄 짓는 것 외에는 속상할 일은 하나도 없어. 영혼보다 더 소중한 건 없으니까."(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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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가 보여주는 새 이야기, 인간 이야기
서정기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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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할 때 인연을 맺은 선생님이 쓰신 책이다.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새들이 선생님의 정감 어린 글과 함께 실려 있다. 

학과 조교와 TA를 합치면 꽤 오랜 세월 선생님을 뵈었는데, 그 오랜 시간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선생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혜화동에서 파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한 번도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근황을 알지 못했는데(얼마전에 은퇴하셨다는 것만 알았다), 이렇게 멋진 제2의 삶의 살고 계실 줄이야. 새로운 시작에 망설임이 없고 열정을 쏟아붓는 모습은 저 이국의 신비로운 극락조보다 더 감동적이고 존경스러웠다.

이제껏 도감에 실린 사진들을 볼 때 아무 감정이 없었는데, 이 책의 사진들이 어떤 지난한 기다림과 인내를 거쳐 선생님의 카메라에 담겼는지 그 과정을 알고 나니 사진 한 장 한 장이 소중하고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이제 도감을 대할 때는 항상 그 사진을 찍은 이의 노고를 기억하고 넘어가게 될 것 같다. 

평소 까만 글자들만 잔뜩인 책을 읽을 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우리 막내도 나와 함께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 "엄마는 무슨 새가 제일 좋아?" "이건 암컷이야 수컷이야?" "(동물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아름답다고 설명해주자)난 암컷이 수컷보다 예뻤으면 좋겠어." "이 새는 어디에 살아?" 귀여운 뱁새처럼 어찌나 조잘대는지, 막내 손이 안 닿는 높은 칸에 책을 숨겨놓기도 했다. 

언젠가 탐조하는 사람들에 관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며 저자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데, 무슨 탐조 대회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누가 어떤 새를 얼마나 많이 보는지 내기를 하는 것이어서, 그들간의 경쟁이 무척 치열하고 모인 사람들 간에 본 새의 수와 종류를 놓고 온갖 실랑이가 벌어지는 게 탐조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좀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었다. 거기서 누군가 희귀한 새를 봤다는 얘기가 돌면 모두들 우르르 카메라를 들고 뛰는데, 선생님도 그러셨을 것을 생각하니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반면 낯선 땅에서 벌레에 물려 고생하셨다는 대목에서는 안쓰럽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탁란 이야기도 나오는데, 여기서 언급하신 다큐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EBS에서 뻐꾸기가 탁란하는 방송을 본 기억이 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놓는 것도 어이없는 참이었는데, 글쎄 그 알에서 깬 놈이 원래 주인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바깥으로 밀어버리까지 했다. 뭘 알고 하는 짓이 아니라 한들 그 잔인함이 잘 용서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뭘 알고도 이보다 더한 이기적인 생존 본능을 다른 종에게, 같은 인간에게 망설임 없이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뻐꾸기 욕할 일이 아니었다. 새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난개발로 여기저기 파헤쳐지고 있는 제주도, 예외는 아니다. 정말 슬픈 일이다. 자연을 조심스럽게 대할 줄 아는 탐조처럼,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애틋한 마음과 예의바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세상에 참새, 까치, 비둘기만 있는 줄 알았던 무지렁이가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지 눈호강을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새를 기다리고 있을 선생님이 늘 건강하시기를 진심을 담아 기도하며,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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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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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특허청에서 보낸 편지였다.
"내가 발명한 십자가상 시계에 관한 거야. 특허를 내줄 수는 없지만 시계 문자판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알아보라고 조언을 해왔더군. 보여줄게."
그리고 냅킨만 한 크기의 종이에 그린 그림을 음식 반입구 트레이에 담았다. 스탈링이 트레이를 당겼다. 
"보통 십자가상에서 두 손은 2시 45분이나 1시 50분을 가리키거든. 발은 6시 방향에 있고. 인기 좋은 디즈니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이 시계의 문자판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두 팔이 시침과 분침이 되는 거야. 발은 6시 방향에 고정돼 있어. 그리고 위쪽에는 작은 초침이 후광처럼 돌아가지. 어떻게 생각해?"
해부학적 스케치의 품질은 꽤 좋은 편이었다. 예수의 얼굴은 바로 스탈링의 얼굴이었다.(284쪽)


영화에는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좀 상상을 해봤는데, 이내 얼굴이 찡그려졌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디즈니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혐오감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세상에 정말 이런 시계가 있을까? 있다면 사는 사람도 있을까? 이런 소리 하면 제정신이 아니구나 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영화와 책 속의 인물이니까 그래도 한니발 렉터에게 일말의 동정이란 게 있었는데 저 부분을 읽고 나선 묘하게 몸서리가 났다. 신성한 것을 모독하고 고통을 즐기며 잔혹하고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캐릭터라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었음에도, 저 묘사는 이상하게 내 안의 금기를 건드린 듯 혐오감이 일고 싫었다. 


워낙 영화가 유명하고, 또 책을 읽기 전에 최근 영화를 다시 본 터라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원전의 플롯을 짜깁기하고 빼서 스토리를 만들었는데, 정말 멋진 편집이다. 원전에서 이 사람과 관계된 것을 저 사람에게 부여하고, 이 사건을 저 사건과 연결시킨 부분들이 굉장히 매끄럽고 또 영화적이다. 영화에서 생략한 부분들은 미드 <한니발>에서 요소요소 잘 살리고 있는데, 원전 <양들의 침묵>이 잉태하고 거기서 파생된 버전들은 원전이 탄탄하기에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는 클라리스 스탈링의 감정선을 더 세밀하고 천천히 따라갈 수 있어서 좋았다. 아무래도 영화는 한니발이 몇 번 등장하지 않아도 워낙 강렬하고 스펙터클한 신이 많아서 클라리스보다는 한니발이 부각되는 느낌이 있었는데(나만 그럴지도...), 책에서는 영화가 생략하거나 암시한 스탈링의 생각들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된 삶의 균열을 악착같이 딛고 일어서 강인하게 버티고 있지만, 한편 어머니와 동생들과 떨어져 가게 된 친척집 목장에서 구하지 못한 양들의 울음소리는 생명에 대한 부채감으로 스탈링을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형편이 어려워진 엄마는 맏이인 클라리스를 친척집에 보내는데, 그녀가 가게 된 목장은 나이든 말과 양을 도살하는 도살장이었다. 어느 날 양의 비명과 같은 울음소리에 잠이 깬 클라리스는 현장을 목격했고, 어린 그녀가 안고 도망치기에는 너무 버거웠던 양 대신 눈이 거의 멀다시피 한 '한나'라는 말을 끌고 도망친다. 


연약한 생명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클라리스. 한편 무례함에 대한 혐오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예술적 완벽성에만 반응하는 한니발. 클라리스와 한니발은 선과 악의 대척점에 있지만 두 사람은 묘하게 공감하고 이해하며 서로의 생각을 읽는다. 클라리스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잃었으나 한니발은 그녀의 정서적 공백과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한다. 기묘하고 아름답지 않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또 한 명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인물 잭 크로포드는 말하자면 다정하지 않은 아버지다. 아직 연수원 학생 신분인 클라리스와는 계급 차이가 한참 나는 상관이긴 하지만 소통이 일방적이고, 뭔가 챙겨주는 듯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부재한다. 어쨌거나 클라리스의 재능을 알아본 건 그였고, 클라리스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런 방임형 아버지가 필요하긴 했지만. 그런 크로포드 옆에 죽어가는 아내를 둔 건, 이 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한니발과 잭 크로포드(그리고 스미스소니언의 필처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외에 클라리스 주변에 있는 남성들은 모두 클라리스에게 적대적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피해자로, 주변인으로,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낯설과 이질적인 것으로 본다. 그 대표적 인물이 칠턴인데, 솔직히 한니발보다 더 밥맛없고 역겨운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클라리스의 모습은, 오를 수 없는 우물에 갇힌 캐서린과 다를 바 없다. 클라리스가 제임 검의 집 지하실에서 흑단 같은 어둠 속을 헤맬 때, 속수무책으로 어둠 속의 허공을 헛되이 휘저을 때 그 무력감은 극에 달했다. 도움의 손길 하나 없는 극단적 고립 속에서 그녀가 범인을 검거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들을 뒤로 한 채 승리할 때도 사실 마음속으로는 환호보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스탈링의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다." (629쪽)


한니발이 책 마지막에 쓴 편지에서처럼, 클라리스가 "보게 될 지하감옥은 이게 마지막이 아니"고, 클라리스가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양들은 한동안 침묵"할 것이다. 


"양들의 울음소리는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고, 그 울음소리는 아마 영원히 멈추지 않을 거야."(637쪽)


이건 클라리스의 숙명이고, 굴레다. 어쨌든 '한동안'이나마 양들은 침묵할 것이고 그동안 그녀는 곤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을 다 알고 본 책이었는데도 긴장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드 <한니발>에서는 판권 문제로 클라리스 스탈링을 등장시키지 못했고, 나무의 철학 출판사에서는 <레드 드래곤>이 빠진 시리즈를 내놨다. 아마 이것도 판권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판권 때문이라면 문제가 잘 해결돼서 꼭 이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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