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이 가지고 있는 매력의 실체가 그러한 것처럼 가면은 자신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 데 있다. 무도회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한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신분을 떠나 꿈처럼 살기를 원했던 '이상'에 걸맞은 문화 코드였던 것이다. [...]
미뤄보건대 축제 기간만큼은 공동체 의식을 우선시한 것으로 보인다. 축제 기간 동안 신분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한 입장이 되어 어울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가면의 힘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너나 할 것 없이 흥겨운 축제에 참가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맘 놓고 뒤탈을 생각하지 않고 어울릴 수 있기가 쉽지 않았던 한 시대를 돌아본다면 가면이 일개 소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관계에 있어 출구 역할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귀족도 되어보고 예술가도 되어보고 교황도 되어보면서 누군들 그 묘한 아찔함을 즐기지 않았겠는가. [...]
당신은 당신이 주인이었던 많은 것들을 모른 척하지는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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