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지?
백은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 고막수술을 받으셨다. 나중에서 인공고막을 해 넣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게되었는데, 그때 친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시어머니가 참 미웠다. 억척스러우셨던 할머니의 시집살이를 견디며 밤마다 모로 돌아누워 흘린 눈물이 귓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 눈물이 고막을 녹여 없앤 것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울면 고막이 다 녹을까. 할머니도 밉고 아빠도 미웠다. 그래도 엄마는 할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을 때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병수발을 드셨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의식을 잃으신 할머니를 목욕시키고 대소변을 받아내셨을까 생각하면 나 역시 만감이 교차한다. 그것은 미움의 찌꺼기를 걷어낸 용서였을까, 이제는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초탈이었을까. 아니면 맏며느리로서의 의무감이었을까.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7년, 엄마는 그 후유증으로 거의 치료법이 없다는 '이명'을 얻으셨다.  최근 한 1년 전부터 엄마와의 의사소통이 부드럽지 못하다는 걸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그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탓이려니 했다. 한 번에 정확히 말을 잘 못알아듣는다거나 자꾸만 물어본다거나 하는 일들이 어떨 땐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잔소리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더 나쁜 경우는 핀잔을 주거나 무시를 하는 일도 생겨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엄마에 대한 '걱정'을 핑계로 엄마를 혼내고 있었던 거다.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나이들어가는 딸들은 나이들어가는 부모님께 다들 자기도 모르게 부모노릇을 하게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부모의 모습은 내 어릴적 자상하고 따뜻한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내 부모가 나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괴팍한 모습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을 가장 아프게 내리쳤던 부분은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아이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주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이상한 걸 물어도 '그것도 모르냐'며 무시한 적 한 번 없는 엄마. 그렇게 따뜻한 관심 속에 자란 아이가 이제 좀 머리가 컸다고 엄마는 그런 것도 모르냐며 대드는 아이러니란. 내 딸이 그랬다면 머리를 한 데 쥐어박았을텐데. 정말로 정말로 엄마의 질문에 이제 성심껏 답변하리라, 인터넷에 들어가면 뭐든지 다 알아낼 수 있다고 믿으시는 엄마의 환상을 나의 게으름 때문에 깨버리지는 않으리라, 절로 다짐이 되었다.

그리고 또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멋부릴 줄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서 엄마는 젊었을 때부터 옷욕심이 있었다는 얘길 듣고, 마치 나는 우리 엄마가 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인간에겐 누구나 그런 허영심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우리 엄마도 그 광범위한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 틀림없는데 나는 엄마가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줄 알았는가 보다. 그럼 그 긴긴 세월동안 멋부릴 줄 몰랐던 게 아니라 안부리고 참아왔다는 거 아닌가, 엄마가 좀 독한 면이 있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 한켠이 저려온 게 사실이다.

눈치없고 무던한 딸이 이제라도 알았으니 예쁘고 우아하게 늙어가시도록 해야지...  그리고 공부하는 거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에게 편안한 책상과 의자가 딸린 공부방, 온전히 엄마만을 위한 방을 마련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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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2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6-12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저에겐 눈물처럼 뜨겁게 느껴져요.. 정말 마음 고생 많이 하신 분 같아요. 백은하의 글이면 온기가 있을 거란 기대가 되네요..

부엉이 2006-06-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 엄마 세대는 참으로 인내심이 강하신 것 같아요.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 마음 편히 사시길 바랄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