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전반 시대정신의 하나를 대표하며 근대사회주의의 성립과 프랑스 산업혁명의 전개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겼다. 1825년 앙팡탱, 바자르, 로도리그(은행가) 등의 협력으로 시작되어 《생산자》 《조직자》 《지구()》 등의 신문을 발행, 생시몽 교단()의 설립과 포교, 공개 강연회 등에 의해서 활발하게 선전되었다.


1831년, 앙팡탱이 주창한 자유결혼을 둘러싸고 내부분열이 일어나 사상운동으로서는 침체상태에 빠졌다. 그후 은행을 중추로 하는 근로자의 보편적 협동사회 건설을 꿈꾸는 실천시대가 시작되어 철도의 확장과 통합, 예금을 산업투자에 연결시키는 새로운 은행제도의 설립, 도시계획, 각종 공공사업, 알제리 식민, 수에즈운하의 개통 등이 추진되었다.


이렇게 해서 대륙형 자본주의 형성의 사상적 토대가 된 생시몽주의는 상속재산 폐지·국유화에 의한 사적 소유의 사회화, 생산수단의 소유자와 비소유자와의 계급대립의 인식, 계급투쟁사관, 노동의 조직화, 생산과 분배의 사회적 관리자로서의 국가, 능력에 따른 노동과 노동에 알맞은 취득, 자유방임원리 비판 등의 사상을 정식화()하였다. 또한 이 사상은 부르주아 사회의 비판에서는 푸리에와 중복되지만 협동사회의 이해에서는 날카롭게 대립된다. 생시몽주의는 유럽 전역에 거의 파급되었고 하이네, 베를리오즈, 리스트, 발자크, 조르주 상드, 위고, 생트뵈브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