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시몽 [Saint-Simon, Comte de, 1760.10.17~1825.5.19]

파리 출생. 백작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 달랑베르를 비롯한 계몽주의사상가들의 영향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 미국독립전쟁에 참가하여 프랑스의 육군 대령이 되었다. 종군중에 미국의 산업발전을 몸소 보고 충격을 받아, 귀국 후에는 군적에서 떠났고, 프랑스혁명 때에는 자발적으로 작위를 포기하였다. 로베스피에르 치하에서 반혁명파로 몰려 투옥되었다가, 총재정치 시대에 석방되었다. 그 후, 국유지 매매로 거부가 되자 이 재산으로 과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재산을 탕진, 만년의 20년간은 빈곤 속에서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부단히 진보하는 것으로 보고, 새로운 사회체제는 선행하는 사회체제보다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역사의 발전적 전개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비산업 계급인 봉건영주와 산업적 계급의 투쟁으로 점철된 과거 수세기의 프랑스사()를 개선하여, 그 양자가 협력 ·지배하는 계획생산의 새 사회제도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자기의 학설을 ‘신그리스도교’라고 부르고 새로운 사회는 설득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실증적인 사회연구 태도는 제자인 콩트에 의해 계승되어 실증주의 사회학으로서 결실을 맺었고,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 이념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로 《산업론 L’Industrie ou Discussions politiques, Morales et philosophiques…》(1817)《정치론》(1819) 《산업체제론 Du systme industriel》(1821∼1822) 《신()그리스도교 Nouveau Christianisme》(1825)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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