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티에 라탱
사토 겐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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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를 전공한 일본인이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재미삼아 쓴 소설이란다. 재미삼아 쓴 소설이 이정도라니 진짜 마음 먹고 쓰면 대작이 나올 듯 싶다. 어쨌든 작가는 문학사 및 종교사에도 꽤 조예가 깊은 듯 16세기의 인물들을 소설 속에 잘 배치시키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고, 칼뱅이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초석을 마련하며, 로욜라와 프란치스코 사비에르가 카르티에 라탱에서 예수회 소모임을 시작한 시기이다. 소설의 화자 드니 쿠르팡과 천재 신학자이자 홈즈의 전신이자 완벽한 남자인 마지스테르 미셸은 이들과 함께 카르티에 라탱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파헤치면서 배후에 숨어있는 사이비 종교(?)의 전모를 밝혀낸다. 처음에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던 각각의 살인 사건은 결국 하나의 장소, 하나의 인물로 모아지고 그것은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종교적 혼란기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소설의 소제는 종교와 성(性)으로 좁힐 수 있을 것 같다. 종교에 관해서는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가톨릭 교회의 내외적 쇄신의 움직임을 배경에 깔고 있다. 내적으로는 로욜라의 예수회가, 외적으로는 루터 및 칼뱅 등의 프로테스탄트가 1500년의 가톨릭 교회를 공략하니, 재림 예수를 사칭하는 자는 얼마나 많았으며 그에 따르는 우매한 무리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 가운데 세력을 넓히기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는 무리가 있었을 것임은 소설적 상상이 아니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성(性)에 관해서는 동정(童貞)에서 프리섹스주의자(?), 근친상간에서 난교까지 극단적 양상을 다 보여준다. 드니 쿠르팡은 어서 동정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남자가 되고픈 유혹을 받지만, 여자가 순결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자신의 동정을 소중히 여긴다. 한편 소르본이 인정한 천재 신학자이자 수도자의 몸인 마지스테르 미셸은 너무도 적나라한 쾌락을 즐긴다. 프랑스의 '콘돔'이라는 지방에서 유래했다는 돼지 창자를 사용하고, 쾌락의 유혹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것에 굴복당하지 않는 진보적이고 초인적인 인물이다. '존재는 신이다'라는 명제적 인물이라고나 할까, 르네상스의 최전방에서 성의 해방 아니 초월을 극명히 드러내는 이 소설의 중심적이고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사실 이 소설은 미셸이 펼치는 전지적 시점의 추리 때문에 추리 소설적 재미는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16세기 파리의 지리적, 사회적, 풍속적 면모를 사료에 근거하여 묘사하였기 때문에 무언가 '얻는 재미'가 있다.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순 없지만 역사적 실존 인물들에 성격을 부여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예를 들어 칼뱅은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고, 로욜라는 호탕하지만 정이 많고, 사비에르는 침착하고 다감하게 묘사하여 백과사전 속에 들어있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끔 농밀한 묘사에 흥분을 일으키게도 하지만, 그것에 초연할 수 있다면(^^;;) 재밌고도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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