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1세 Francois I [1494.9.12~1547.3.31]

코냐크 출생.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앙드렘백작 샤를 드 바루아의 아들로서, 1514년 국왕 루이 12세의 공주 클로드와 결혼, 루이 12세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천성이 명랑하고 활달하였으며, 낙천적이고 무인()의 호방함을 지닌 한편, 기지와 우아한 감각도 지녔다. 즉위하자마자 이탈리아에 원정, 마리냥에서 승리를 거두어 밀라노를 손에 넣었다. 1519년, 독일 황제의 선거에 출마하여 합스부르크가()의 카를 5세에게 패배하였다. 이어서 카를 5세에게 도전, 1525년 이탈리아의 파비아에서 싸움에 져, 포로가 되어 유폐되었다.

이듬해 1526년 석방되자 다시 카를과 전쟁을 벌여, 싸움은 1544년의 화의() 때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왕은 이탈리아를 통하여 고대의 학문과 예술에 심취, 루아르 강변에 르네상스 양식의 성관()을 세우고, 고전학자들을 초빙하여 ‘휴머니즘(인문주의)’의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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