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사고 근 10년 만에 다시 읽게된 것 같다. 메모를 해가며 꼼꼼히 읽다보니 첫번째 독서가 얼마나 어설픈 것이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영화를 먼저 접하고 이 소설의 추리소설적 면모에만 집중했던 첫번째 독서의 오류를 수정하고 나니, 그토록 지루하고 어렵기만 했던 신학적 논쟁 및 종교/역사적 측면도 재미를 더했다.
지식이 짧아서일지는 모르나 역사추리물이라는 장르에서는 『장미의 이름』만한 무게를 지닌 것이 없는 듯 하다.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동일 장르의 책들도 물론 흥미롭고 놀라운 개연성을 선사해주지만 이렇게 깊이, 이렇게 상세하고 정확하게 시대와 접목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내게 진중권의『춤추는 죽음』에 이어 '중세'라는 시대와 '중세인'에 대한 신비주의적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우연히 이 책을 읽기 얼마전 진중권의 책을 다시 한 번 읽었는데, 에코가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에서 밝힌 것 처럼 '책은 끊임없이 이미 세상에 유포된 다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체험할 수 있었다. 특히 아드소가 수도원 교회 입구에서 공포에 가까운 경외심을 느끼게 되는 팀파늄 묘사와 근간을 이루는 중세인들의 사상이 『춤추는 죽음』에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골조를 이루는 것은 '지식을 감추려는 자와 알려는 자 사이의 죽음을 불러오는 싸움'과 '그리스도의 청빈'을 둘러싼 교황측과 황제측의 정치적 싸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긴 하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는 금서를 규정하는 행위와 자신들의 '소유'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청빈을 물고 늘어지는 성직자들의 행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똑같은 종교적 넌센스다.
종교란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 주는가, 반대로 억압하는가?
적어도 중세의 종교는 후자에 가까웠다. '죄의식'을 통해 대중을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지배원리로서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증거로는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저 '이단심판'을 들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종교의 시대라 할 수 있는 중세가 종교의 아집에 갇힌 성직자들로 인해 참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변질된 서글픈 시대임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저 로저 베이컨의 신봉자 바스커빌의 윌리엄은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식하고 과감하게 르네상스의 도래를 예고한다.

살인 사건과 종교적 논쟁들이 넘쳐나는 이 책에 에코는 왜 낭만적으로 들리는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에코는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에서 이것을 독자의 숙제로 남겨놓겠다고 밝힌바 있다. 대학교때 미술관련 교양수업에서 선생님도 이 책을 읽고나면 제목과 관련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수수께끼같은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용된 시구가 약간의 실마리를 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베르나르,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이 그 이름만 남아있는 것처럼, 매우 회의적으로 수기를 끝맺고 있는 아드소 역시 자신의 이 수기가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운명을 배태하고 있음을 직시 그에 대한 집착을 버렸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지적 허영심의 포기라고 할까.
반대로, 제 4일째 아드소가 여자와의 관계 후 여자의 환영을 쫓아버리지 못하고 번민하는 대목에서는 '한 송이 초라한 장미가 온갖 지상적 순행의 표징이 된다.'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장미꽃 중에 하나이지만 그 한 송이에는 우주의 진리가 담겨 있듯, 온 우주 만물이 다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다. 어떻든 너무나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여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함 반 자유로움 반으로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이지만 이윤기씨의 자연스런 번역 또한 이 책의 읽기에 크나큰 도움을 준다. 읽기 만만치 않은 소설 축에 속하는 이 책이, 중간중간에 나오는 라틴어와 외국이름들만 아니라면 번역 소설이라는 것을 깜빡깜빡 잊게 해줄만큼 매끄럽다.

역시 첫번째 성의없는 독서 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던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도 이해에 있어 보탬이 되니 더불어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