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해피엔딩
황경신 지음, 허정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에 나갔다 이 책이 사고 싶어 직원에게 물었다.
이 책을 얼마나 빨리 갖고 싶었는지, 책을 찾는 데 들이는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사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제목도 잘 기억 못하다니.
'모두가 해피엔딩'이요.

검색창에 뜨지 않는다.
'그럼, 황경신으로 검색해봐주세요.'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네요 ^^;;'

'손님, 이 책 지금 매장에 없거든요.'

제기랄. 뭐 이래. 왜 찾는 책마다 없어. 여기 대형서점 아냐?
유명해서 다 팔린거야, 아님 안 유명해서 안 갖다 논거야.

결국은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휴일이 낀 덕분에 좀 더 오래 기다려야 받아볼 수 있었다.

p.92
"일어날까?"
비의 입에서 일어나자, 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내가 먼저 이야기한다.
"그럴까?"
비의 대답에, 나는 금세 내가 뱉은 말에 대해 후회한다. 가방을 챙기는데, "조금 더 있자." 비가 다시 말한다.
내 기분은 순식간에 바뀐다. 비의 말 한마디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나 자신이 참 가엾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92페이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내가 왜 이런 연애소설을 돈주고 사지 않는지, 그래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다 똑같거든, 이런 얘기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연애소설 읽기가 싫었던 건 어쩜 유치하단 생각 때문일지도, 어쩜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상처를 도려내는 그 느낌이 끔찍하게 싫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이의 서평을 읽고 덥썩 사버린 이 책은 나에겐 그녀만큼의 감동을 주진 못했다. 어떤 책이든 읽는 이로부터 반쯤은 보편적 공감을 얻어내고, 그 이후에는 경험과 더불어 마이너스 플러스의 공감을 획득한다. 그런데 난 사랑에 대해 아직도 부정하고 있는 중이어서, 이 소설을 다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길 그토록 기다렸지만, 어쩐지 아직 읽어선 안됐었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좀 더 성숙해졌을 때 좀 더 담담해졌을 때 읽었어야 하는건데...

코엘료의 사랑 이야기가 무겁고 빽빽한 느낌의 유화 같다면, 황경신의 사랑 이야기는 여백이 많은 수묵 담채화 같다. 여백이 너무 많아 텅 비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조차 드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이 소설의 여백이 아니라 내 마음의 여백이다. '여백'은 보통 좋은 의미, 그러니까 비어있어도 외로워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 이 느낌은 분명 외로운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 '다시'라는 말을 기대하는 것도, 비어있음을 채워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지라 더 허한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다 사랑에 있어 '아픈' 부분을 한 조각 씩 지니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뻔한 결말이네 하면서도 해피엔드인 드라마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그렇게라도 벌어져 있는 상처를 대체치료하기 위해서.

그런데 정말 그랬다,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지루하게만 느껴질 것 같던 그 감정이, 욱신욱신 쑤시게만 만들것 같던 그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지고, 더 먼 과거 속으로 후퇴해버린 것 같아 편했다.
애틋한 미련도 아닌, 그렇다고 사랑은 더욱더 아닌 오히려 미움에 가까운 이 마음이 조금은 둥글게 변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모두에게 해피엔딩일 수 있는 묘안이 있을까.
그건 철저하게 과거를 부정하고 내 기억 속에 그런 일은 없었던 듯 사는 거다. 하지만 그건 그런 '듯' 사는 것 뿐이지, 정말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나니 전혀 해결책이 보이지 않던 미래에 묘안이 어딘가 숨어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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