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자본주의란 네덜란드 시민들(Dutch burgher)의 자본주의이며, 영국 공장주들, 제국 공장주들, 양키 거물 기업가들의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상업 자본주의 : 중세 말 유럽에서 번성한 원거리 교역에 뿌리를 둔 것, 18-19세기의 산업혁명이 도래할 때까지 지속됨. 아시아의 향료와 브라질의 면화와 담배, 아프리카 노예와 서인도 제도의 원주민들을 팔아 부를 축적.
*산업 자본주의 : 철강 회사와 자동차 공장을 소유.

모든 부르주아는 자본가이지만, 모든 자본가가 부르주아인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라는 용어가 종종 자본가나 중산층과 동의로 사용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중산층에는 고학력 종사자, 공무원처럼 자본가가 아닌 부류도 포함된다. 독일 학자들에 따르면,

*자산 부르주아(propertied bourgeoise : 기업가나 공장주)
*교양 부르주아(educated/credentialed bourgeoise : 교수, 변호사, 의사, 장관, 공무원, 장교)

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적 유형으로서의 부르주아 자본가란 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정치적, 윤리적 차원에서 정의된다. 부르주아란 중세와 근대 초기에 유럽의 자유 도시민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중세말부터 르네상스에 이르는 시기에 이탈리아 북부와 '저지대 국가들(벨기에, 네덜란드)'의 도시 공화국들은 교황과 황제, 토착 귀족들로부터 독립을 획득했다. 이 도시 공화국의 '공민들(burghers)' 혹은 엘리트 시민들은 근대적인 입헌 공화정과 상업 자본주의의 토대를 동시에 구축했다. 자본과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부를 자의적으로 징벌하는 전제 권력을 피해 재산과 개인을 보호하는 입헌 국가들로 모여들었다.

16세기 스페인의 이탈리아 말살 정책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입헌 정치의 중심은 17세기 네덜란드로, 18세기에는 영국과 북미대륙의 식민지로, 그리고 20세기에는 뉴욕으로 이동했다. 뉴욕을 최초로 건설한 사람들은 네덜란드 상인이며, 뉴욕의 원래 이름은 뉴 암스테르담이었다.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초창기 미합중국은 모두 프로테스탄트 사회였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티즘 그 자체가 부르주아 윤리의 원천은 아니다. 부르주아 윤리는 출발부터 귀족 윤리, 즉 유럽의 기사도에 대한 저항에 의해 정의되었다. 기사들은 노동을 경멸하고 부를 무절제하게 탕진하며, 이방인을 복종시키려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들은 노동을 존중하고 부를 축적하며 이방인들과 거래를 원했다. 기사들은 이윤을 경멸하고 명예를 소중히 여겼지만, 부르주아들은 명예보다는 이윤을 중시했다.

유럽의 기사도에 뿌리를 둔 텍사스는 대토지 소유와 정치, 군사적 지배에 권력 기반을 둔 전근대적 정서를 갖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교육수준이 높고 예의바르지만, 사회적으로는 무자비한 사람들이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흔드는 모든 세력에 대해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들의 문화는 부르주아와 청교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영국계 미국 귀족들의 문화다. 인종적으로 앵글로 켈틱인 이들은 처음에는 아일랜드인들로부터 땅을 빼앗았고, 북미 대륙에 도착한 뒤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멕시코인들로부터 토지를 강탈했다. 1836년부터 1960대까지 텍사스 역사는 "가장 큰 민족 집단인 앵글로-켈틱 남부 백인들이 테하노(Tejanos, 멕시코계 텍사스인)들의 땅을 빼앗고 인디언들을 내쫓은 다음, 독일계 정착민을 짓밟고 흑인들을 착취했다."고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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