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참으로 어여쁘고 가슴 아린 책이다. 우선 어여쁘단 느낌은 선명한 총천연색의 야생초들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고, 두번째로 가슴 아리단 느낌은 이런 어여쁜 책이 옥중서한이라는 아이러니에서 비롯된다. 그런 느낌이 드는 건 그 삭막한 시멘트 네모 상자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각박하게 만들지 않으려 애쓰며 쓰여졌을 편지의 탄생에 대한 조금은 지나친 마음씀 때문일까.

할머니가 돌아가시 일년 전 초여름에 마지막으로 할머니와 함께 갔던 바닷가. 그 갯벌 위편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고모댁. 고모댁 주변을 돌아 제법 높게 자라있던 명아주. 약간 정신을 놓으셨던 할머니는 성치 않은 걸음걸이로 명아주 뜯기에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이셨다. 옛날엔 이걸로 나물 무쳐 먹으셨다면서...  어린 시절 더러운 개천가에 무성하게 피어있던 명아주를 본 기억과, 명아주는 개천가 같이 더러운 곳에서 잘 자란다는 잘못 심어진 지식 때문에 참 싫었더랬는데 할머닌 왜 저리 먹지도 못할 것을 그것도 이파리만 또옥똑 따시는 걸까. 할머니의 추억을 무시한 무정한 손녀딸 때문에 할머닌 결국 명아주 무침을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이 책을 슬쩍 훑어보다 명아주 삽화를 발견하곤 그 페이지부터 읽어내려갔다. 이 책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넘겨버렸던 것들에 대한 작은 비밀들이 들어있다. 저자와 같은 경험으로 또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나도, 명아주가 노인들에게 튼튼한 발이 되어줄 만큼 크게 자라 지팡이로 쓰인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할머니가 그렇게 맥없이 돌아가시기 전 이 책을 읽었더라면 고모댁에 심겨져 있던 명아주 한뿌리를 캐어 잘 키운 후 할머니께 지팡이를 만들어드릴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아쉬움과 추억의 버물림과 더불어, 봄이면 앞다투어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흔한 야생초가 달라보인다는 것이, 그래서 정원 손질 때 어김없이 퇴출당하는 잡초가 더욱더 생명력 있게 보인다는 것이 이 책의 힘인듯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것이 조금 되어서 인지, 얼마전 참 미안하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한 짓을 저질렀다. 그만 한데 오글오글 모여있는 민들레가 너무 예뻐서 잔인하게도 꽃대만 싹독싹독 잘라 컵에 이파리 몇개와 소북히 꽂아 놓았더랬다. 고추모 심고 화단에 물주고 저녁무렵 집안에 들어오니 땅의 정기를 받을 땐 고렇게 탐스럽고 예쁘던 노오란 꽃들이 모두 오그라들고 갈변해서 차마 볼 수가 없게 된것이다.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며칠을 더 두고 보며 감탄할 수 있었을텐데, 이거야 말로 정말 이기심의 극치랄 수밖에...  민들레란 녀석들이 땅에 고약한 뿌리를 박고 있을 땐 그리 약한 존재인지 몰랐는데, 꽃대를 자를 때 줄기가 약했던 걸 보며 의아했을 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래서 집 앞 진입로에 만발할 마가렛도 피기만 해봐라, 한 단 굵게 모아 꽃병에 꽂아주마고 벼르고 있었는데 절대로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그리고 내일은 책을 들고 나가 비인칭으로 불렸던 야생초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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