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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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었다.
소설을 공부한 적이 없는 작가라는데, 배워서 갈고 닦은 글발이 아니라 천부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필력이 느껴진다. 개연성이 부족하고 산만하다고 평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그렇게 딱딱한 잣대로 잴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신나고 통쾌하고 술술 잘 넘어가는 이야기를 만나 마냥 즐거울 따름이다. 어느 책쟁이의 말씀처럼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는 것 아닌가.  

야구 팬들에게 선수들의 스프링캠프는 무료하기 짝이 없고, 뭘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지난한 시간이지만, 또한 비밀과 기대로 가득찬 시간이기도 하다. 선수들에겐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면서, 다음 시즌의 성적을 좌우하는 개런티이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어디쯤에 있었을까. 솔직히 지금의 내가 디디고 설 발판이 별로 없어 보였다. 가장 근접한 게 고등학교 시절인데 거기엔 비밀도 기대도 없었고, 더군다나 이 소설에서처럼 기똥찬 모험 같은 것도 없었다. 지독하게 어리버리해서 사랑도 공부도 이도저도 멋지게 못했던 중간계의 시간들. 당시엔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라고 느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 어리광이고 투정이었던 것 같다. 

근데 며칠 전 운좋게, 절대로 다시는 만날 일도 얘기할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고등학교 친구와 전화를 하게 됐다. 나와 그 애의 '기억의 차이'를 통해 내가 잊고 있었던 수많은 소중한 것들이 되살아났다. 나를 괴롭히고 절대 이해받지 못할 것 같던 시간 속에, 지금의 나를 지탱해 줄 나무의 작은 씨앗들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인가 보다. 내게 세 가지 소원 같은 기회가 생긴다면, 꼭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 말이다. 너무 좋아서도, 너무 후회가 많아서도 아니다. 거기엔 회한과 동경, 열정과 꿈, 엉망진창인 삶뿐이었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그 무엇이 가득 있다. 살벌하고 숨막히는 압박이 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발버둥치던 가엾고 못난 내가 있다. 

가끔 스프링캠프를 꽉차고 확실하게 보냈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아주 쪼금 후회한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항상 속으론 인텐시브한 스프링캠프를 꿈꾸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그래도 내가 나이를 헛먹고 있지는 않구나 느끼는 지점이다. 

또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지금을 그때의 스프링캠프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지금 나를 채우고 있는 것보다 부족한 게 무엇인지 더 많이 생각하고 있으니까.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찾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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