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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 이야기 ㅣ 산하작은아이들 15
로랑 고데 외 지음, 백선희 옮김, 마르탱 자리 그림 / 산하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공기놀이를 할 때면 꺾기 부분에서 나는 될 수 있는 한 재빨리 손등에 있는 공깃돌을 잡았다. 공깃돌을 잡기 좋게 모을 여유 같은 건 부릴 새가 없었다.
오른손이 너무 미워서였다. 공깃돌이 빠지지 않게 손가락을 바짝 붙인 손은 더욱더 미워보여서, 꺾기를 하는 그 긴장된 순간에 못생긴 오른손에 이목이 집중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 중에서도 가운뎃손가락은 가장 보기 싫었다. 손톱 옆부분에 못이 박여 툭 튀어나온데다가, 마디도 굵어서 울퉁불퉁 투박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예쁜 글씨체를 얻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도 글씨 쓰는 걸 좋아해서 종이에, 공책에, 심지어는 신문지에도 글씨 연습을 했다. 아마도 손가락들이 주인인 나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가운뎃손가락이 가장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일은 제일 많이 하면서 또 구박도 제일 많이 받으니 말이다.
반면 왼손 손가락들은, 오른손에 비하면 일부러 쫙 펴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마디도 얇고 손톱들도 고르고 예쁘다. 없어서야 안될 일이겠지만, 오른손에 비하면 보조적인 역할만 하면서도 주인한테 이쁨을 받으니, 일 안하고 뺀질거리면서도 운좋게 칭찬받는 얄미운 사람들 같다.
왼손이건 오른손이건 약지는 그야말로 한량이다. 그나마 키보드 두드리는 때나 조금 필요할 뿐, 힘도 가장 약하고 자기 혼자 일어서지도 못한다. 다른 손가락들은 자기 혼자 잘 움직이지만 유독 약지만큼은 꼭 새끼손가락과 함께 움직여진다. 그런데, 그런 약지에게 숭고한 존재의 이유가 있다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공주 같은 고고함 뒤에는, 바로 사랑의 언약을 증거하는 반지가 끼워질 중요한 임무가 있었던 거다. 하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면, 애초에 손가락은 다섯 개가 아니라 네 개였을 거다.
내 몸에 늘 붙어 있던 것이라 사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고마움은 더더욱 느낄 줄 몰랐는데, 재미있게 묘사된 다섯 손가락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지체들이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나의 소중한 일부분들임을 새삼 깨달았다. 오래간만에 손가락들도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고,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네가 그런 일들을 하고 있었구나'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연극으로 공연된 작품이라길래 소리내어 읽어봤는데, 아이들과 함께 소리내어 공연하듯 읽어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문득 저 아래서 발가락들이 나를 쏘아본다. 다섯 발가락 이야기는 왜 없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