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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 필요합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집을 떠났다가 언젠가는 영영 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날이 올 것입니다. 도중에 마주치는 어떤 사건 사고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따라서 여행을 통해 비본질적이고 일상적인 삶을 주기적으로 털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몸을 바꿀 때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홀가분하게 이쪽 정류장에서 저쪽 정류장으로 가듯이 그렇게 갈 수 있습니다.˝(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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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글이야 굳이 수식어가 필요치 않지만, '스스로 행복하라'는 저 따스한 명령은 지금의 내게 아주 소중한 화두가 된다. 책 제목도 좋고, 책 속에 담긴 투박하지만 결기 있는 꾸짖음도 참 좋다. 신종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에 동네 이곳저곳을 걸어서 탐방하고 다녔는데, 걸을 때마다 '와 이런 데 이런 게 있었다니' 연방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늘 다니는 익숙한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생각이 틔고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바지런히 몸을 놀리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은 주변에 널려 있다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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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망상과 번뇌가 많다 수행자는 가진 것이 적듯이 생각도 질박ㅁ하고 단순해야 한다. 따라서 밤에 꿈이 없어야 한다. 또 수행자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생각이 밖으로 흩어져 안으로 여물 기회가 없다. 침묵의 미덕이 몸에 배야 한다.(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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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에 꿈이 많은 사람이다. 지나칠 정도로 많다. 심지어 연속극처럼 이어서 꾸거나, 늘 같은 배경이 나오거나, 같은 주제가 반복되거나 해서 혹시 내가 두 개의 현실을 살고 있거나 혹은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인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심할 때는 하룻밤 잠 속에서 몇 개의 다중적 꿈을 꾸는 일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꿈은 유쾌하기보다 괴이쩍고 야릇하고 말로 옮기는 순간 말도 안 되는 게 되어버리는 비논리투성이다. 유난히 그런 꿈을 많이 꾸는 때는, 돌아보면 너무 생각이 많거나 걱정이 많거나 정신이 산란한 때다. 머리가 '망상과 번뇌'로 가득 차면 꿈의 빈도도 늘고 내용 또한 해괴망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다 문제가 해결되거나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거나 하면 꿈도 잦아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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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데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 한 일들을 하고 싶다.˝(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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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땅에 태어나고 싶은 이유가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니, 참 스님다운 생각이다. 요즘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게 새삼 자랑스럽지만, 수년 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자괴감을 느끼던 당시에는 자못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스님의 이 이유를 듣고 보니, 그것 참 아름답고 합당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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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청세음시자비부세만물무비관세음보살
觀世音世音施慈悲浮世萬物非觀世音菩薩
세상의 소리를 살피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 자비를 베푸니 이 풍진 세상의 만물이 곧 관세음보살 아닌 것이 없더라.˝(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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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 관세음 많이 그리고 쉽게 들어본 말이지만 이 참에 그 뜻을 오롯이 새겨본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굳이 교리로 따지자면 부처의 가르침에 마음이 더 간다. 부처는 신이 아니란 것과, 부처를 따르지 않아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떤 경계와 구속이 없어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서양의 유일신은 뭔가 '답정너'의 느낌이고 지복이라는 조건이 붙는다는 게 요즘 내가 종교에 회의적인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어떻든 '구도'란 누가 해주는 게 아니고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게 중요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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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이제 열반에 들었고 그 좋은 말씀조차 남기고 싶어 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이 단아하고 아름다운 말씀들을 읽는 동안 미천한 어느 인간이 몹시 행복했으니 너무 못마땅해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 필요합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집을 떠났다가 언젠가는 영영 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날이 올 것입니다. 도중에 마주치는 어떤 사건 사고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따라서 여행을 통해 비본질적이고 일상적인 삶을 주기적으로 털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몸을 바꿀 때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홀가분하게 이쪽 정류장에서 저쪽 정류장으로 가듯이 그렇게 갈 수 있습니다." - P27
밤에 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망상과 번뇌가 많다 수행자는 가진 것이 적듯이 생각도 질박하고 단순해야 한다. 따라서 밤에 꿈이 없어야 한다. 또 수행자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생각이 밖으로 흩어져 안으로 여물 기회가 없다. 침묵의 미덕이 몸에 배야 한다. - P47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데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 한 일들을 하고 싶다." - P61
"뒷등성이로 올라 오리나무 숲을 찾아갔다. 오리나무 숲도 잎들을 어지간히 떨쳐 버리고 옹기종기 모여 겨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훨훨 벗어 버린 나목(裸木)의 숲속을 거닐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게 나무들의 체온이 다가선다.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을 때는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는데,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에서 도리어 따뜻함을 감촉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한테서는 느끼기 어려운 그 인간미를, 조촐하고 맑은 가난을 지니고 사는 사람한테서 훈훈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경우의 가난은 주어진 빈궁이 아니라, 자신의 분수와 그릇에 맞도록 자기 몫의 삶을 이루려는 선택된 청빈일 것이다. 주어진 가난은 악덕이고 부끄러움일 수 있지만, 선택된 그 청빈은 결코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다." - P92
관세음청세음시자비부세만물무비관세음보살 觀世音世音施慈悲浮世萬物非觀世音菩薩 "세상의 소리를 살피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 자비를 베푸니 이 풍진 세상의 만물이 곧 관세음보살 아닌 것이 없더라."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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