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여름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7월
구판절판


번역가란 결국 언어의 나루를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인 셈이다.-14쪽

어휘가 지극히 풍요로운 고장이군. 번역가에게 이보다 더 든든한 게 뭐가 있겠어? 바벨탑이라는 무모한 야망이 있기까지 하나로 되어 있던 최초의 언어, 그 언어의 파편이 이 섬에는 지상의 그 어느 곳보다 많이 흩어져 있지 않은가.-16쪽

그러한 잡거(雜居)는 사랑의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것으로 벌충합니다.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사랑의 대화가 모자라는 만큼 다른 대화가 더 풍성해지는 겁니다. -20쪽

번역가도 그런 식으로 일합니다. 외국 책을 나포한 다음, 그 언어를 완전히 갈아 치우고 우리나라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책이 배라면 말은 그 배의 선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신가요?-25쪽

따지고 보면 번역이란 외과 수술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번역가는 문장을 가르고 의미를 잘라 내고 언어유희를 이식하며, 큰 것을 잘게 부수고 끊어진 것을 동여맨다. 때로는, 정확성을 기하려다가 오히려 본뜻을 해치고 왜곡하기도 한다. -26쪽

"들어 봐라. 머지 않아 죽게 될 언어니까 귀를 잔뜩 기울이고 들어야 해."
그가 고양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고양이들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곤 했다. -38쪽

중립국에 속해 있는 호수답게, 레만 호는 필요하다면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속내를 감출 줄 안다. 몽트뢰와 자웅을 겨루는 다른 호반 도시 제네바에 세계 문단의 또 다른 거물인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가 자주 드나드는 데다가, 그 역시 블라디미르만큼이나 안달을 내고 있었으므로, 호수의 입장은 더욱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40쪽

추억의 잡동사니 속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하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번역하지? 이 꽃 저 꽃으로 옮겨 다니는 나비의 그 가벼움과 자유로움과 변덕을 어떻게 옮기지?
어려서부터 포충망을 들고 나비를 쫓아다닌 탓에, 노벨 문학상 후보라는 이 성격 장애자의 문체에는 나비의 교태가 배어 있었다. 번역가 입장에선 이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51쪽

출판인들은 우스꽝스러운 과장법이 수반되기 마련인 신간 소개용 팸플릿이나 광고지를 보내어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기벽을 지니고 있었다. -55쪽

"문학 담당 편집 위원이라고? 아예 수위를 시켜서 편지를 쓰게 하지 그래? 나는 이제 사장의 친필 서한을 받을 자격도 없단 얘기렷다?"-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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