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그녀의 통찰력의 몇 가닥 남은 처참한 찌꺼기를 가슴에 부둥켜 안고 싶은 느낌을 받았다. -29쪽
만약에 집안의 문이란 문은 항상 열려 있고, 스코틀랜드의 자물쇠 제조업자가 열쇠 하나 수선할 수 없다면 물건들은 망가지게 마련이다.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려 있었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거실의 문도 열려 있었고, 현관 문도 역시 열려 있었다. 침실 문들도 열려 있는 듯했다. 그리고 층계참의 창문은 열려 있는 것이 확실했다. 왜 그녀가 확신할 수 있었느냐 하면 그것은 바로 그녀가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창문은 열어야 하고 문은 닫아야 한다는 사실은 간단한데도 아무도 기억할 수 없단 말인가? 그녀가 밤에 하녀의 침실에 들어가보면 창문들을 꼭꼭 닫아서 가마솥 속처럼 해놓고 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40쪽
즉 그녀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신경 쓰인 부분이었던 것이다. 또한 베풀려는, 그리고 남을 도우려는 그녀의 욕망이 결국 따지고 보면 허영이라는 것도 신경 쓰였다. 진실로 그녀 자신의 만족감만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그녀가 그렇게나 거의 본능적으로 돕고 베풀기를 원해서, 사람들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오오 램지 부인! 사랑하는 램지 부인..... 물론 두말 할 나위 없이 램지 부인이지!"라고 말하고, 그녀를 필요로 하고, 그녀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고, 그녀를 찬미하는 것이? 은밀히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던가,-58쪽
남녀간의 사랑보다 더 심각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내면에 죽음의 씨앗을 지니고 있는 이 사랑보다 더 인상적이고 힘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134쪽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여자들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닌데, 이것보다 더 따분하고, 유치하고, 비인간적인 것은 없는데, 라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필요한 것이다. -137쪽
그들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들의 인생에 그녀가 짜여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그녀를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했다.-151쪽
그림의 구성에서 잠깐 막히는 곳이 있어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그녀는, 그러나 죽은 사람들이라니, 한 발자국 가량 물러서면서 죽은 자들이라니! 하고 생각하고는, 우리는 죽은 자들을 동정하고, 한쪽으로 밀어젖히고, 심지어는 약간 경멸하기까지 한다고 릴리는 중얼거렸다. 그들은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부인은 빛이 바래 사라졌다고 릴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부인들의 욕망을 무시하고, 그녀의 한계가 있는 구식 생각들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부인은 우리에게서 점점 더 멀어진다.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릴리는 부인이 저기 세월의 복도 끝에서 말도 안 되는 많은 것 가운데서도 "결혼해라, 결혼해라!" 하고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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