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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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이다. 이 소설이 문학상 공모전에 입상하며 하루키의 소설가 인생이 시작됐다. 전통에서 벗어난 소설 양식을 두고 '이걸 소설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농후했다고' 한다. 그때 심사위원들은 하루키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가 될 줄 몰랐겠지 흐흐.

짧은 소설 속에서 주인공 에피소드 외에 간간이 다른 이야기들이 지나간다. 하루키의 글쓰기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 주인공의 친구 '쥐', 지역 라디오 DJ, 가상의 작가 하트필드의 이야기도 하나하나 뭉클하다. 지역 라디오 디제이가 불치병 투병 중인 청취자의 사연을 읽고 그 환자가 내려다봤다는 항구에 가서 울음을 터트렸다는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디제이는 청취자를 동정해서 눈물을 흘린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말한다 "나는, 여러분을, 좋아한다." 위로에서 동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간단하고 분명하다.

어쨌든 청춘엔 필연적인 상실이 있고 누구라도 그것을 섣불리 위로할 수 없는 법이다. 소설 속 가상의 작가 하트필드의 소설에서 화성의 말하는 바람은 주인공에게 말한다. "말하고 있는 건 자네지. 나는 자네의 마음에 힌트를 주고 있을 뿐이야." 바람이 마음속에서 휘이, 소리 내며 지나갔을까? 이 장면은 영화 <봄날은 간다>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유지태는 아픈 이별을 겪고 난 후 바람 소리를 녹음한다. 그리고 웃음 짓는다. 유지태는 바람의 노래 속에서 무엇을 들었을까. 소설 주인공은 이야기 말미에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바람의 노래를 통해 들은 것이 자신의 목소리든, 무엇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있음을 알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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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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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신비로운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달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게 된다. 인간은 달에도 발을 내디뎠으므로. 소설은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여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세 남자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를 말한다. 더 이상 달은 신비롭지 않지만, 때론 밤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은 여전히 달빛 아래 있다.

 

소설의 제목 '달의 궁전'은 중식당 이름이다 (꿈의 궁전이었다면 러브호텔이었을 텐데 ㅋ). 소설 속 달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주인공 포그의 외삼촌은 Moonlight moods라는 밴드에서 연주하다가 서쪽으로 향한다. 외삼촌은 서쪽에 닿지 못하고 심장 마비로 죽는다. 혼자가 된 포그는 자학적으로 살아가다 삶을 포기하려는 듯 중식당 달의 궁전에서 마지막 식사를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진다. 그는 괴짜 노인 에핑을 만나고 그의 말벗으로 고용된다. 에핑의 명령으로 박물관에서 랠프 블레이크록의 그림 <Moon light>를 본다. 그는 달을 '다른 세상을 내다보는 하얀 구멍'으로 느낀다.

 

포그의 외삼촌도, 에핑도, 이야기 말미의 포그와 바버도 모두 서쪽으로 향한다. 그들의 삶은 보름달처럼 풍성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믐달처럼 쪼그라들기도 했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 막연하지만 그들에겐 꼭 도달해야 했던 삶의 목표와 같다. 모두 서쪽에 닿지 못 했지만 포그만은 걸어서 미국의 서쪽 끝 해변에 도달한다. 모든 걸 잃은 그에겐 달랑 몸뚱어리 하나 남았지만 그는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라고 생각한다. 해변엔 보름달이 떠오른다.

 

달은 그믐에 소멸했다가도 다시 보름이 되면 충만하고, 또다시 소멸한다. 모두 잠든 밤에만 빛나는 달은 그 자체로 피고 지는 인간사를 은유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엔 부질없는 인간사를 무심히 내려다보는 '하느님의 눈 (103)'이 되었다가, 그저 '마지막 장면을 비춰줄 보름달(336)'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은 사람에겐 이제 달의 의미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놀라운 이야기들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을 긍정할 수 있다면 말이다. 중식당 달의 궁전 포천 쿠키에서 나온 쪽지에 적힌 문장은 이렇다.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는 현재이고 달은 미래다'. 서쪽 끝에서 해는 지지만 달은 떠오른다. 끝내주게 재밌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 정도면 다 된 것 같구나. 책, 체스 세트, 사인, 잡동사니들, 양복. 이제 나는 내 왕국을 처분했고 만족스럽다. 나를 그런 눈으로 볼 필요는 없다. 나는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렇게 한 것이 기쁘니까. 너는 좋은 녀석이다, 필리어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건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을 거야. 당분간 우리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떠나겠지. 하지만 조만간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다. 난 그러리라고 믿는다. 너도 알 테지만 결국에는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고, 모든 일이 다 연결될 거야. 아홉 행성의 궤도, 아홉 행성들, 아홉 번의 이닝, 아홉 번의 삶. 그걸 생각만 해봐라. 조화는 끝이 없다. 하지만 이 실없는 소리는 하룻밤으로 충분해. 이제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잠이 우리 모두를 부르고 있다. 자, 손을 내밀어 봐라. 그래, 바로 그거다. 아주 단단히 쥐고, 그렇게. 자, 이제 흔들자. 그래, 됐다. 작별의 악수. 우리를 끝까지 지탱해 줄 악수. 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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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맛
하성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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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의 기억은 감각과 함께한다. 냄새, 맛, 음악은 기억의 한 장면에 찍힌 인장과도 같다. 원리를 따지면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hippocampus)가 감정과 감각을 통합하여 저장하기 때문이지만, 왠지 이과충의 설명인 것 같아 재미는 없다. 그냥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놓는 게 낭만적이다. 불현듯 어떤 샴푸 냄새를 맡고 그제야 속 깊었던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 같은 거. 물론 나는 그런 거 없다. 전공의 시절 오프 나가면 혼자 먹었던 부추 가득 넣은 수육 국밥 특자나, 금요일 밤이면 의국에 다 같이 모여 시켜 먹었던 달콤 짭짤 찜닭 같은 기억뿐이다 ㅎㅎ. 


한 시절을 견디게 해주는 감각이 있을까? 고작 음식의 맛이나 향으로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절을 위로하는 감각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표제작 <여름의 맛>의 화자는 지쳐있던 시절 교토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복숭아를 나눠먹는다. 연락처도 나누지 않고 헤어진 남자의 얼굴은 희미해져 기억도 안 나지만 달콤했던 복숭아 맛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화자는 잡지 여름 특집을 위해 김 선생을 인터뷰한다. 암에 걸린 김 선생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젊어서 죽었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김 선생은 어머니를 묻고 내려오던 길에 먹었던 콩국이 몹시 간절하다. 이런 삶에서 우리의 기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우리는 '복숭아 한 알처럼 사소한 것'에 휘둘리는가. 화자는 남자가 말했던 복숭아를 찾아 떠난다.


<카레 온 더 보더>의 화자는 십수 년을 함께 한 애인과 카레 집에 들어갔다가 카레 향을 맡는 순간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에어로빅 강사로 지내던 시절 영은이란 친구의 기억이다. 하루는 밤새 술 마시고 영은의 집에 묵었는데 자신의 상상과 다르게 영은은 아주 가난했다. 영은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노인들을 부양하고 지냈다. 영은이 노인들 요강 비우던 손으로 카레를 만들고 밥을 뜨는 걸 보고 비위는 상하지만 왠지 끝까지 카레를 먹고 토할 수도 없었다. 도대체 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식당에서의 회상이 끝난 후 화자는 속물적이고 비겁한 애인과 헤어진다. 


이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기억들은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소설을 <현재 - 과거의 기억 - 현재>라는 플롯으로 간단히 도식화하면, 기억을 거친 뒤의 현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고작 기억 하나를 관통했을 뿐이지만 지금 현재는 이전과는 다른 현재다. 이처럼 과거의 기억은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로 기능하기도 한다. 모두가 속물인 세상에서 속물로 살지 않았던 영은이에 대한 기억이 애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처럼. 영은이의 카레를 토할 수 없었던 화자는, 이제 시원한 쌍욕을 토해내고 애인과 헤어질 수 있다. 


미치도록 싫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히 돌아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감정의 덧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원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데엔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알파의 시간>의 화자가 '나만의 알파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아버지의 간판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기억이란 결국 우리가 지나온 시간인데, 지금 이 순간을 미래에서 바라보면 그것 역시 통과하고 있는 알파의 시간일 것이다. 우린 어떤 시간을 통과해왔는가? 복숭아든 카레든 수육국밥이든 어떤 과거를 통과해왔든지 상관없이 분명한 건, 그 시절을 견뎠던 건 우리 자신이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앞으로도 우리는 지난 시간을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풍경을 응시했다. 이제 간판의 계집아이가 나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이 세잔을 보듯 나의 간판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한 시인은 자신의 산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잔이 그 풍경을 받아들일 눈을 가지는 데에는 그때까지의 유럽 미술사의 모든 시간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다고. 그 알파란 세잔이 시대보다도 앞질러 달렸던 바로 그만큼의 시간이 아니겠느냐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간판을 볼 수 있기까지 나에게도 나만의 알파의 시간이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돌고 돌아 그 간판 앞에 서기까지 그 알파의 시간이 좀 길었을 뿐이다. 나는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응시했다.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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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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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고 왠지 이터널 선샤인이 생각나서 다시 봤다. 사실 십여 년 전 감상할 땐 거의 잤기 때문에 처음 봤다고 해야겠다. 이제라도 제대로 봤으니 남들과 이터널 선샤인에 대해 말 섞을 계제가 된 것 같다. 감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기억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사라져도 사랑하던 우리는 다시 사랑하게 되어 있다고. 될놈될, 안될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좀 잔인한 영화인 것 같다 ㅎㅎ.


김연수도 소설의 테마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선택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소설가 진우는 친구 광수의 아내가 될 선영을 십삼 년 전 사랑했었다. 광수가 결혼한다며 선영을 소개할 때 진우는 화를 낸다. 그리고 결혼 전의 선영에게 찝쩍댄다. 그러나 십삼 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다 이제야 "선영아 사랑해"를 외치는 것인가. 이런 진우의 사랑은 믿을 수 있는가.

 

선영은 유혹 당하다가도 진우가 말하는 사랑의 거짓을 눈치채고 현명하게 내친다. 진우는 <얄미운 사람>이라는 노래를 희진 선배를 위해서도 부르고 선영을 위해서도 불렀다. 촌스럽지만 진우식 사랑의 세레나데인 것인데 세상에서 유일한 선영의 것이 아니니 선영이 정색하는 건 당연할 수밖에. 선영은 "사랑이란 한 번 사랑했다는 기억만으로 영원할 수 있(116)"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우는 선영을 사랑한다 말만 하지 정작 제대로 된 사랑의 기억이 없다. 고작 선영에게 다른 여자를 위한 눈물만 보였을 뿐. 찌질한 진우 안녕. 그거 사랑 아니야.


이 진우란 인간은 소설에서 가장 찌질한 인간인데 전략적 자기 비하가 담긴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로 보인다. 진우는 사랑에 대한 그럴듯한 이론을 선보인다. 진우는 술자리에 후일담 소설들은 형상 기억 브래지어나 마찬가지라고 일갈한다. 자기 젖은 AA로 쪼그라든지 오래인데 아직도 D컵 브래지어를 잡고 있다고. 새로 AA 컵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에 제 자신의 사랑 방식이 속하는 줄은 모르는 아둔함은 어찌할 것인가. 그러므로 진우가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47)'은 당연하다. "또라이 새끼(29)"다.


그러니까, 발화되는 감정은 믿을만하지 못하고 오로지 감정을 증거하는 기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사랑했던 기억이 없었으니 사랑도 없었던 것(107)"이란 말은 너무 단순하지만 곱씹을만하다. 세상 모든 땅이 법정도 아닌데 사랑에도 증거주의라니. 왠지 무시무시한 논리 같지만, 현명하게 사용하면 찌질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전 남(여)친의 기억을 지우자. 특히 전화번호를 지우자. 당신이 술을 좋아한다면 필사적으로 지우자. 이 단순한 행위는 "오밤중에 사랑이라니, xx야. 이제 와서. 너 내가 우습게 보이냐"라는 허탈/짜증/노기가 골고루 믹스된 말을 듣지 않게 해줄 것이다.


이상 흑역사 전문가 쥬드의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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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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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할 때 간 파트를 총 사 개월 맡았다. 알코올로 간이 망가진 사람을 많이 봤다. 간 파트 Prof. HS는 늘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나는 HS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HS는 신기하게도 환자들과의 사이는 좋았다. HS는 내게 알코홀릭 환자들의 성격이 나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 말을 거의 이해한다. HS의 오랜 환자 중에 30대 중반 여성이 있었는데 술장사를 하다가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 되어 간경화가 진행된 환자였다. 그는 간성 혼수나 토혈로 입퇴원을 반복했다. 여느 알코올성 간경화 환자처럼 근육이 모두 퇴화하여 팔다리는 가늘었고 복수 찬 배만 불룩했다. 볼이 움푹 팬 긴 얼굴은 늘 노랗게 떠 있었다. 입퇴원이 하도 잦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의 침상 곁엔 가족이 별로 없었다. 친구는 한 번도 본적 없다. 그는 HS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HS는 늘 그에게는 괜찮아질 거라고, 잘 버텨보자고 말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HS는 그의 보호자를 불러 간이식 절차를 자세히 설명했다. 젊으니 이대로 포기하지 말고 이식해보자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식을 알아보고 준비하는 듯했지만 적극적이진 않았다. 늘 그렇듯 환자 삶의 기댓값과 보호자 삶의 기댓값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내 텀이 끝날 때까지 이식 수술을 준비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파트로 옮기고 한 달 정도 지난 뒤 감염이 악화되어 그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의 모든 이야기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나온다. 이야기를 읽어도 그들 삶의 고통이 과연 술로 해소되는 것인지 술로 악화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음주 행위는 그들 삶이 "이해할 수는 없"고 "견딜 수 없었"던 것들을 견뎌가는 과정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심신이 몹시 힘들던 삼년차 연말엔 주말마다 혼자 남은 의국에서 만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술을 더 마시기 위해서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토하고 더 마셨다.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삶의 방식이 그대로 지속됐다면 어느 순간 나도 병상에 누워 어느 교수의 손을 잡고 고개만 주억거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그 시기가 길지 않았다. 내 삶이 그렇게까지 박복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늦은 밤 술 마시기 좋아 종종 찾아가던 병원 근처 조그만 고깃집이 있다. 차돌박이랑 두부찌개를 즐겨 먹었던 게 기억난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고깃집 이모는 언젠가 내게 어떤 종이를 내밀었다. 혈액검사 결과지였는데 간수치가 200 이상이었다. 이모는 장사 마치고 늘 소주 한두 병을 마시고 잔다고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술을 줄여야 한다는 뻔한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던가... 삼 년 정도 된 것 같다. 조류독감 때문에 계란값이 올랐다는데 아직도 즉석 계란 프라이를 해주시는지 궁금하다. 그게 좋아서 자주 갔는데. 책을 읽으니 이모가 문득 생각난다. 이모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이모에겐 아마도 술상 말고 삶의 무게를 나누고 가끔 기댈 남자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그러니까 1이 기준인 거네."
수환이 말했다.
"그렇지. 모든 인간은 1보다 크거나 작게 되지."
"당신은 너무 똑똑해서 섹시할 때가 있어."
영경이 씩 웃었다.
"그래? 너무 간헐적이라 탈이지.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1이 될까?"
"모르지."
수환의 말에 영경이 중얼거렸다.
"내 병은 내 분모의 크기를 얼마나 측량할 수 없이 크게 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아. 당신은 아직도 분모보다 분자가 훨씬 더 큰 사람이야." 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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