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전공의 할 때 간 파트를 총 사 개월 맡았다. 알코올로 간이 망가진 사람을 많이 봤다. 간 파트 Prof. HS는 늘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나는 HS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HS는 신기하게도 환자들과의 사이는 좋았다. HS는 내게 알코홀릭 환자들의 성격이 나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 말을 거의 이해한다. HS의 오랜 환자 중에 30대 중반 여성이 있었는데 술장사를 하다가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 되어 간경화가 진행된 환자였다. 그는 간성 혼수나 토혈로 입퇴원을 반복했다. 여느 알코올성 간경화 환자처럼 근육이 모두 퇴화하여 팔다리는 가늘었고 복수 찬 배만 불룩했다. 볼이 움푹 팬 긴 얼굴은 늘 노랗게 떠 있었다. 입퇴원이 하도 잦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의 침상 곁엔 가족이 별로 없었다. 친구는 한 번도 본적 없다. 그는 HS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HS는 늘 그에게는 괜찮아질 거라고, 잘 버텨보자고 말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HS는 그의 보호자를 불러 간이식 절차를 자세히 설명했다. 젊으니 이대로 포기하지 말고 이식해보자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식을 알아보고 준비하는 듯했지만 적극적이진 않았다. 늘 그렇듯 환자 삶의 기댓값과 보호자 삶의 기댓값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내 텀이 끝날 때까지 이식 수술을 준비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파트로 옮기고 한 달 정도 지난 뒤 감염이 악화되어 그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의 모든 이야기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나온다. 이야기를 읽어도 그들 삶의 고통이 과연 술로 해소되는 것인지 술로 악화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음주 행위는 그들 삶이 "이해할 수는 없"고 "견딜 수 없었"던 것들을 견뎌가는 과정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심신이 몹시 힘들던 삼년차 연말엔 주말마다 혼자 남은 의국에서 만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술을 더 마시기 위해서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토하고 더 마셨다.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삶의 방식이 그대로 지속됐다면 어느 순간 나도 병상에 누워 어느 교수의 손을 잡고 고개만 주억거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그 시기가 길지 않았다. 내 삶이 그렇게까지 박복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늦은 밤 술 마시기 좋아 종종 찾아가던 병원 근처 조그만 고깃집이 있다. 차돌박이랑 두부찌개를 즐겨 먹었던 게 기억난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고깃집 이모는 언젠가 내게 어떤 종이를 내밀었다. 혈액검사 결과지였는데 간수치가 200 이상이었다. 이모는 장사 마치고 늘 소주 한두 병을 마시고 잔다고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술을 줄여야 한다는 뻔한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던가... 삼 년 정도 된 것 같다. 조류독감 때문에 계란값이 올랐다는데 아직도 즉석 계란 프라이를 해주시는지 궁금하다. 그게 좋아서 자주 갔는데. 책을 읽으니 이모가 문득 생각난다. 이모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이모에겐 아마도 술상 말고 삶의 무게를 나누고 가끔 기댈 남자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그러니까 1이 기준인 거네." 수환이 말했다. "그렇지. 모든 인간은 1보다 크거나 작게 되지." "당신은 너무 똑똑해서 섹시할 때가 있어." 영경이 씩 웃었다. "그래? 너무 간헐적이라 탈이지.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1이 될까?" "모르지." 수환의 말에 영경이 중얼거렸다. "내 병은 내 분모의 크기를 얼마나 측량할 수 없이 크게 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아. 당신은 아직도 분모보다 분자가 훨씬 더 큰 사람이야." 26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