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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Phosphorus)이 어떻게 발견됐는지 아는가? 인은 1675년 소변을 증류하면 금을 얻을 수 있다고 믿은 헤니히 브란트가 소변을 고약한 반죽으로 만든 다음에 다시 반투명한 왁스로 변환시키는 실험을 통해 처음 발견되었다. 금에 대한 집착이 뜻밖의 발견을 했다.
지구의 나이는 아는가? 지구의 나이는 45억 5,000만 년(±7,000만 년)인데 클레어 패터슨이 운석의 납/우라늄 비율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으로 1953년 알아냈다. 그는 더 나아가 1923년 이후로 공기 중 납 농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납 산업계를 비판했다. 그래서 1986년부터 납을 포함한 유연 휘발유의 판매가 중지됐다. 지금 주유소에서 파는 무연 휘발유는 납이 없는 휘발유란 뜻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과학적 발견과 행동이 전 세계 환경을 지키기도 한다.
운석이 충돌해서 공룡이 멸종했다고 하는데, 지름 10킬로미터에 불과한 덩어리가 어떻게 1만 3,000킬로미터나 되는 지구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을까? 1994년 목성에 21개의 조각으로 나뉜 혜성이 충돌했다. 충돌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G 핵이라고 알려진 파편은 작은 산 정도 크기였지만, 목성 표면에 지구 정도 크기의 상처를 남겼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핵무기를 합친 것의 75배나 되는 600만 메가톤 정도의 힘이었다. 작은 운석이 괴멸적인 충돌 에너지를 내는 이유는 이렇다. 우주적인 속도로 날아오는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 앞쪽에 있는 공기가 비켜날 틈이 없기 때문에 자전거 펌프 속에서처럼 압축이 된다. 공기가 압축되면 뜨거워진다. 대기에 진입한 소행성 앞쪽 공기의 온도는 태양 표면 온도의 열 배에 가까운 6만 K까지 올라간다. 운석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은 순간적으로 불속에 던져진 셀로판 판처럼 찌그러져버린다. 대기권에 진입한 운석은 1초 이내에 지표면에 충돌한다. 충돌 현장 240킬로미터 이내에서는, 진입 당시의 열로부터 살아남은 모든 생물들이 그런 폭발에 의해 죽게 된다. 1,600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바람에 넘어지고, 날아오는 파편에 사정 없이 얻어맞게 될 것이다. 초기의 충격파가 지나가면 엄청난 규모의 지진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전 세계의 화산들이 터질 것이다. 엄청난 해일이 발생하고, 한 시간 이내에 시커먼 구름이 전 세계를 덮을 것이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돌과 파편들이 날아다니면서 전 세계가 불길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하루 만에 적어도 15억 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아마겟돈"처럼 우주선에 한 무리의 카우보이(ㅋㅋ)들을 태워 보내서 운석 폭파 임무를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놀랍게도 현재 우리는 인간을 달까지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로켓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던 마지막 로켓 새턴 5호는 폐기되었다. 어쨌든 운석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면, 인류는 끝장이다.
타이핑하기 귀찮지만 책에 나온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만 더 말해볼까? 유리는 점성을 가지고 있어 느리게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는 물질이다. 달은 지구를 안정화 시키고 있는데 매년 3.8센티미터씩 멀어져서 20억 년 후에는 지구를 안정화시켜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매일 수백만 리터의 민물이 바다에서 증발하니 바다의 염도는 높아져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심해 분출구를 통해 깨끗한 민물이 다시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타이핑이 귀찮으니 여기까지. 이상 책을 읽으면 알게 되는 내용들이었다.
철학과 나온 정훈 장교를 가끔 문송한 녀석이라고 놀렸는데, 사실 나도 과학 지식이나 상식이 별로 없긴 마찬가지였다. 아마 지금은 과학동아 읽던 고딩 시절보다 훨씬 못할 것이다. 생물학이랑 의학만 쪼오금 아는 정도. 이 책은 위트있는 기자가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를 토대로 쓴 과학 교양서다. 무려 30챕터에 걸쳐서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생물학(수능 과학 4과목! ㅋ)에 걸쳐 이뤄진 발견과 그것에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를 이야기한다.
재밌는 건 어떤 놀라운 발견이 처음 세상에 공개되면 처음엔 보통 무시 당하거나 격한 반발에 부딪쳤다는 사실이다. 과학자가 한을 품고 죽으면 훗날 위대한 업적으로 인정되기도 하고, 엄한 사람이 공을 가로채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을 하고, 그 후에는 그 중요성을 부정하며, 마지막으로는 엉뚱한 사람에게 그 업적을 인정해준다 (441)". 지금 이 순간 무시받은 주장과 가설이 훗날 진실로 입증될지 모르는 일이다.
일본은 올해도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에서 22번째다. 한국과는 애초에 국력이 비교가 되지 않는 나라이니 우리가 아쉬워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ㅎㅎ). 어쨌든 그 중 한 명의 이력이 흥미로웠는데,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였다. 그는 무려 50년 동안 오토 파지(autophagy) 현상에 대해서 연구했고 그 결실을 인정받았다. 그를 보고 외골수라고 한 기사도 봤다. 그는 업적을 남겼기에 위대한 외골수로 인정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채 잊히는 외골수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말이 있었다. 논문 한편을 쓰면 인류 지식 체계에 기왓장 한 장을 얹는 것이라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난다 ㅎㅎ). 그런 면에서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번영은 많은 외골수들의 집념에 빚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초신성을 찾아낸 에번스는 3년 동안 하나도 못 찾았던 때도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것도 가치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리처드 포티와 난해한 과학 분야가 어떻게 대를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처드 포티는 생소한 분야의 전문가가 은퇴하거나 사망하면 그 작업은 중단되어 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한다. "한 종의 식물을 42년 동안 끈질기게 연구한 사람이 소중한 것이군요. 소득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한국의 마이너 분야 외골수와 장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