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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평점 :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건 뭘까. 잘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이렇다. 입이 조금 짧아지고, 시끄러운 음악보단 조용한 음악을 듣고,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진 순간 돌아보니 나이를 꽤 먹고 난 후였다. 사고의 성숙, 타인의 이해 같은 게 성장의 본질일 수도 있지만 나이 서른 넘어도 그것들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성장은 단지 습관의 변화 정도다. 그러니까, 식당에서 혼자 국밥에 소주 먹는 사람은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건 어른 아니라 아재라고? 팩트 폭력 그만...
작가는 이 소설에서 화자가 완전히 성장한 이후를 보여주진 않는다. 이야기는 어른이 된 화자가 유년을 회고하는 게 전부다. 한국도 그랬겠지만 근현대 중국은 일상에서 폭력이 만연한 세계였다. 그런 세계에서 유년이 항상 행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은 6살에서 18살까지 자라면서 관계의 많은 상실을 경험한다. 주인공의 관계는 어느 것 하나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어려서 위태로운 관계다. 그러나 어려서 가능한 관계이기도 하다. 쉽게 잃어버릴지언정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관계 맺는 것은 유년에서만 가능하다. 어른은 새로운 관계를 두려워한다.
성장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가장 성장했던 18살 때에 주인공은 외톨이 꼬마 루루를 만난다. 형제와 친구가 없는 루루는 누구와도 곧잘 싸우지만 늘 혼자다. 가족에게서 버려졌던 주인공은 동병상련을 느끼고 루루와 친해진다. 루루는 또래와 싸울 때 늘 형이 와서 너희를 혼내줄 거라 말하지만 루루에겐 형이 없다. 주인공은 그걸 눈치챈다. 루루가 여느 때처럼 또래 아이들에게 맞고 있을 때 그것을 보던 주인공은 참지 못하고 아이들을 쫓아낸다. 그리고 루루에게 말한다. "애들한테 말해라, 내가 네 형이라고 말이야.". 그러나 루루가 주인공에게 고마워하거나 둘이 더 친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루루는 주인공을 어려워한다. 주인공은 그때야 상상 속의 형이 루루의 마음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알게 된다. 주인공의 주변 어른들이 굴욕을 감내했던 것만큼이나 루루도 자신의 방식으로 그것을 감내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연민이나 동정이 나쁜 감정은 아니지만 그것이 진정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인지는 언제나 고민해야 한다. 때론 고통을 모른 척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배려는 섣부른 이해를 확신하지 않고 타인의 세계를 지켜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가는 이런 유년의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말하지 않는다. 작가는 순서 없이 섞여 있는 이야기를 통해 기억과 회상이 늘 완전하지 않고 파편화되어 있다는 걸 말하는 듯하다. 파편화된 기억은 인생의 순간마다 예고 없이 살아나 우리를 찌른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리를 과거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의 나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주인공은 상처뿐인 삶을 회복해나갈까? 고통스러운 삶에서 회복됐을까? 모른다. 다만 주인공은 그것들을 덤덤히 회고할 뿐이다. 그러나 덤덤한 회고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 지난 고통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고통받는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란 지나간 고통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회고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