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도 괜찮아 -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이은의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페이스북에 팔로우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좋은 글을 받아보자는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이젠 그냥 슥슥 내리면서 마음이 동하는 주제의 글만 편취해서 읽는다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문유석 판사가 이은의 예민해도 괜찮아를 읽었다는 글을 보고 스크롤을 마저 내리면서 나도 읽어봐야겠다고 주문했다. 문유석 판사가 읽었다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주문한 책이다. 심지어 '이은'의 예민해도 괜찮아,로 읽어버려서 저자 이름이 '이은'인 줄 알았다 (...).


이은의가 누군가 하고 봤더니 <삼성을 살다>의 저자였다. 저자는 삼성에서 겪은 성추행 사건에 대항하여 싸우고 로스쿨로 진학했다. 책은 성희롱/추행/폭행 피해 여성들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로서 그것들에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전하는 실용적인 메시지와, 성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전언을 담았다.


책의 초반은 항상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을 위한 실용서로 읽힌다. 남성인 내가 과연 이걸 읽어야 하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성폭력 피해자의 아주 가까운 주변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계속 읽었다. 가령 가해자의 체액이 묻어있는 휴지 등의 증거물은 비닐봉지 말고 종이봉투에 넣어 보관하는 게 낫다던가 (비닐봉지는 DNA 오염률이 더 높다), 사건 후 가해자와의 모호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 금물(사과받는 내용이 아니면 역이용되기 쉽다)이라는 조언은 성폭력 전문 변호사가 전하는 생생한 노하우다.


중반부터는 저자가 변호사가 되어서도 겪는 각종 성추행의 경험을 늘어놓는다. 성추행 가해자들도 남자 변호사들이다. 내용은 이렇다. 모임에서 헤어질 때 악수를 하는데 검지를 쭉 뻗어 손목을 꾹 누르면서 묘한 표정을 짓는다던지(세상에), 남자 변호사들 모임에 초대해놓고 여자가 없으니 도우미를 부른다던지 (...). 읽는 사람이 역겨울 정도인데 당사자는 어땠을까. 성폭력은 남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해있다.


저자는 직장 내 성희롱이 성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임을 지적한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여성이 많은 이유는 직장 내에서 통상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교수 학생 관계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한다. 책과 상관없는 잡담이지만 남고를 나온 나도 성추행을 당했다. 복싱 선출 체육 선생은 나만 보면 귓불을 만지면서 말을 걸었다. 표정은 어찌나 비릿하던지, 진짜 싫었다. 그때 나도 학생으로서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그 선생을 피하고 다니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기엔 또 기숙사 사감이라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아, 구린 기억이다.


일반적인 직장은 아니지만 병원에서도 계급 차이에 의한 성희롱을 종종 목격한다. 보통 남의사들이 선배 여의사에겐 꼼짝 못하지만, 후배 여의사나 여학생, 간호사들에겐 종종 성추행을 저지르곤 하니 저자의 지적은 정확한 것 같다. 그래도 병원은 그나마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덜 저평가 받는 곳이다. 일반 직장에선 여전히 유리천장이 공고해 거의 항상 여성이 약자가 된다. 그러므로 성추행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회의 성차별 구조와 맞닿게 된다. 출산, 육아가 여성의 채용과 승진을 막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게 안타깝다. 성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려는 국가적 노력은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종장에서는 주변인의 윤리를 말한다. 현실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확률보다는 목격자나 주변인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과연 이럴 때 피해자 편에 서는 일이 쉬울까? 쉽지 않다. 자신의 이익을 따지기 시작하면 내가 괜한 증언을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피해자의 용기나 가해자의 반성이 아닌 수많은 제삼자의 선택이라고. 유리함보다 유익함을 선택하고 피해자를 지지할 때 세상은 좀 더 나아진다고 말한다. 더불어 자신의 인생 또한 단단해질 것이라고. 


사람을 그저 남성과 여성으로 거칠게 이분하여 한쪽은 가해자 다른 쪽은 피해자로 규정하는 논리는 싫어한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그런. 그러나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구조적 약자)임은 점점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을 경험할수록 더욱.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도 부지불식간에 성희롱과 성추행을 아슬아슬하게 저질렀을지 모른다. 나를 계속 돌아보게 되는 불편한 독서였다. 예민해도 괜찮은 여성의 반대쪽엔 둔감해선 안 되는 남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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