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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ㅣ 지식인마을 31
조숙환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평점 :
스키너는 스키너의 심리상자로 아주 간략히 알고 있었고, 촘스키 역시 저명한 언어 학자 정도로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책 제목에 둘의 이름이 붙어 있어서 공저인 줄 알았다.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ㅎㅎ). 조숙환이라는 언어 학자가 저명한 학자인 스키너와 촘스키를 중심으로 인간의 언어 습득에 관한 여러 이론을 설명한 책이었다.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인간의 마음을 특징짓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서 '언어'가 대두되고, 인간의 언어 행위와 습득에 관한 연구가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1930~1940년대를 지배한 이론은 행동주의의 조건 형성 이론이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학습된 것으로 파악한 행동주의 학파의 대표 주자가 버러스 스키너였다.
스키너는 '스키너 상자'라는 걸 고안했는데, 상자 안의 쥐가 지렛대를 누르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음식물이 제공되는 장치였다. 굶주린 쥐가 우연히 지렛대를 누르고 음식물과 같은 강화인reinforcer을 얻으면 쥐는 지렛대 누르는 행동을 반복해 음식을 얻는다. 이것이 되풀이되면 지렛대 누르기의 빈도는 증가하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이 조작적 조건화다.
행동주의를 주창한 스키너는 인간의 언어 습득도 같은 원리로 설명했다. 스키너의 언어행동론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 행위도 타인(청자)이 매개가 되어 강화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강화인의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관심attention, 인정 approval, 애정affection, 복종submission이다. 따라서 스키너에게 언어 행위란 이러한 강화인들에 의해 조성되는 화자와 청자의 행동이다. 쉽게 말하면 아동은 환경에서 우발적으로 접하게 되는 부모나 이웃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언어 형태를 거듭 모방함으로써 언어 지식이 형성되며, 이렇게 모방을 통해 획득된 언어 지식은 청자로부터 들은 칭찬 같은 강화 조건에 의해 발달된다는 것이다.
반면 촘스키는 이런 스키너의 언어행동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스키너가 말한 조작적 조건 형성이나 언어행동론으로는 언어에 대한 원어민들의 지식이나 직관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촘스키는 인간의 언어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외부적 조건을 고려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도그마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촘스키는 인간의 창의적 언어 능력과 인간 언어의 무한한 생산성productivity, 복잡성complexity을 역설했다. 가령 인간은 과거에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사용해본 적도 없는 "색깔 없는 녹색 사상이 분노에 떨며 잔다"와 같은 표현을 들어도 그 구조적, 의미적 적합성을 가늠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경험으로 언어가 획득된다는 스키너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촘스키는 환경이 지식의 형성에 그리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태어나면서 아동의 마음에는 새로운 언어 구조를 창출하는 기본적 과정이 선험적으로 담겨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인간의 경험과 무관한 인간 언어의 보편성으로 '회귀성'을 들었다.
'영이는 [순이가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와 같이 세 개의 절로 구성된 문장을 보면, 명사구(예 : '영이', '영화'), 동사구(예 : '좋아한다', '안다'), 문장('내가 영화를 좋아한다') 등이 반복적으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는데, 회귀성이란 이와 같이 동일한 구나 절이 회귀적/순환적으로 산출됨으로써 창의적으로 무한히 생성되는 언어의 특징을 의미한다.
명사구, 동사구, 문장 등의 통사 범주의 '회귀성'은 인간 언어에서만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통사 구조 체계로, 이런 순환적 구조는 선험적으로 습득되는 지식이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스키너는 다소 극단적으로 마음은 텅 빈 상태로서 오직 경험 자극과 강인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학자들은 환경과 본성의 이분법적 사고보단 두 요인의 상호 작용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의 언어 능력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니면 선험적인 것일까. 책만 읽었을 땐 아무래도 선험론에 무게가 실린다.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책의 마지막엔 언어 능력을 '타인의 심성 과정에 대해 의식하는 능력'으로 규정한 '마음 이론'을 주창한 학자들이 소개된다. 사이먼 배런코언과 토마셀로가 그들인데 마음 이론 능력은 '지각 능력', '바라기/요청하기', '정서 읽기' 등 다양한 인지 능력이 발달되면서 확립된다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 하우저는 의사소통을 기본적으로 '심성 상태의 교환'이라고 말한다. 수학 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2, 4는?'이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미완성 문장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은 주저 없이 '8요'라고 대답한다. 교사와 학생 모두 담화 상황이 학교이고 수학 시간이라는 점을 '지각'하고, 곱셈 관련 정보를 '바라고 요청하는' 화자(교사)의 의도에 청자(학생들)가 민감하게 반응해 대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오빤 내가 왜 화났는지 정말 모르겠어?'라는 질문에 이 세상 모든 남자친구들이 쩔쩔 매는 이유는 간단하다. 심성 상태의 교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ㅎㅎ).
인간의 인지, 정서 능력은 일반적인 생리학, 해부학으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유력한 이론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200페이지가 살짝 안 되는 얇은 책에 언어학의 이론들이 쉽게 소개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단, 재밌다고는 말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