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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늙어도 사랑할 수 있고, 성욕을 느낄 수 있고, 섹스할 수 있다. 다만 알고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느끼기란 어려워서 우린 영화에서나 흘낏 보고 짐작할 뿐이다. <은교>나 <죽어도 좋아!>같은 영화가 그렇다. 그러나 단지 그것을 본다고 진정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노년을 상상할 수 있어?" 책에서 70세 케페시는 묻는다.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에서 '노년은 대학살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노년 전문 작가의 소설이니 제목의 의미도 대략 짐작이 된다. 죽어가는 짐승. 인간은 인지를 못 하고 있을 뿐 어느 순간에나 죽어가고 있다. 작가가 동어 반복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잘 생각하면 같은 주제를 영리하게 변주하는 것에 가깝다.
소설엔 관능을 넘어서 충격적인 장면이 있다. 주인공은 38살 연하 애인 콘수엘라의 과거 연애사를 듣고 격렬한 질투를 느낀다. 그리고 콘수엘라의 전 남자 친구들이 했던 행위를 자신도 하고 만다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덜덜). 작가는 이토록 적나라한 기술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오로지 보기에 아름다운 것으로만 이루어지진 않았음을 말한다. 사랑은 때론 퇴폐적이고 또 그럼으로써 관능을 얻기도 한다.
뇌졸중으로 죽어가는 친구 조지는 죽기 직전 아내의 가슴 앞섬을 풀어 헤치려 한다. 콘수엘라는 유방암에 걸리고 나서야 삶의 유한성을 절절히 깨닫는다. '섹스는 죽음에 대한 복수(88)'인데 섹스조차 불가능한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법칙은 오직 하나뿐이다. 죽음. 그리고 그 순간까지 없어지지 않는 욕망. 참으로 짐승 같고 명징한 이야기다.
사랑에 관한 전통적 도덕률을 거부하던 케페시는 마지막 순간에 콘수엘라에게 되돌아가려 한다. 그는 짐승 같은 사랑에 빠진 걸까, 사랑에 빠진 짐승인 걸까? 케페시의 절반도 살아보지 않은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내겐 아직 먼 이야기라고 저편으로 밀어내는 게 고작이다.
그게 비위생적이라서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역겹기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사랑에 빠지는 거라서 반대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원하는 유일한 강박, 그게 `사랑`이에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완전해진다고 생각하지요? 영혼의 플라톤적 결합? 내 생각은 달라요. 나는 사람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완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랑이 사람을 부숴버린다고. 완전했다가 금이 가 깨지는 거지요. 그 아이는 선배의 완전성 안으로 들어온 이물질이에요. 선배는 일 년 반 동안 그걸 통합하려 애쓴 거고. 하지만 그걸 몰아내기 전에는 절대 완전해지지 못해요. 그걸 없애거나 아니면 자기 왜곡을 통해 통합하거나 둘 중 하납니다. 그게 선배가 한 짓이고 선배를 미치게 만든 거예요. 1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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