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미숙하게 사랑하고 헤어졌었다. 싸울 때 내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에 사과도 잘 하지 않았다. 말을 할수록 악에 받친 말만 튀어나왔다. 널 증오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침묵으로 마지막 화해의 가능성을 단호하게 뿌리쳤으므로 미숙한 건 마찬가지였다. 오랜 다툼과 권태에 지쳐 헤어질 땐 슬픔이나 후회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를 한 번 숙이면 되는데 미숙한 감정으로 스스로 그걸 거부해 이별하고 말았을 땐, 너무 아팠다. 돌이킬 수 있었으므로 그것은 후회와 같은 말이다. 다 지나간 일이다.

『체실 비치에서』는 한순간의 감정으로 이별한 남녀의 이야기다. 남녀는 혼전순결을 지키고 결혼한다. 남자는 여자와의 첫날밤만을 고대하고, 최고의 첫날밤을 위해 나름대로 준비과정까지 거친다 (직접 확인하시길ㅋ). 그러나 여자는 불감증이다. 생리적으로 키스와 섹스를 두려워한다. 둘 다 미숙했으므로 첫 정사는 실패로 돌아간다. 여자는 해변으로 뛰쳐나간다. 모멸감에 휩싸인 남자는 곧 여자를 쫓아나간다. 해변에서 만나 다시 이야기하지만 말할수록 쌓였던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분명 돌이킬 수 있는 순간이 있었으나, 한번 엇나간 말들은 주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첫날밤에 헤어진다.

심플한 이야기다. 간단한 서사를 위해 감정과 행위의 묘사에 집중한다. 농밀하다. 아예 한 챕터는 모조리 섹스의 묘사다. 그것도 고풍스럽게 정성 들인 문장들로. 그야말로 장인의 솜씨다 (ㅎㅎ). 『속죄』를 읽었을 땐 이런 스타일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역시 이로 인해 결말의 회한은 극대화되는 것 같다. 장단점이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살며 느낀다. 조금 철들었다 싶으면 이미 다 지나간 뒤다. 미숙했던 시절 나의 ‘체실 비치‘는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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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2-0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공감하는 말인데요, 곰곰 생각해보면, 알고 있는 것보다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지식이 아니라 마음씀씀이가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

쥬드 2016-12-03 15:47   좋아요 1 | URL
넵 동의합니다 ㅎㅎ 말씀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사람들은 다 가면을 쓰고 살아요. 선생님도 그렇잖아요? 말은 거짓을 만들고, 마음은 진실을 만드는 거예요.˝라고 2009년 3월 21일의 일기에 적혀있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정신과 실습 때 만난 환자가 했던 말이다. 어떤 맥락에서 저런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말을 곱씹을 때면 마음 한편이 뜨끔하긴 마찬가지다. 나도 가면을, 그것도 상황에 맞게 여러 개를 번갈아 쓰며 살기 때문이다.

『가면의 고백』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나‘의 성장담이다. 다섯 살 때 분뇨 수거하는 젊은 남성에게 동경을 느끼고, 열세 살 땐 젊은 순교자 남성의 반 나신 그림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보고 사정한다. 중학교 2학년 땐 거친 남성미를 풍기는 동급생 오미에게 사랑을 느낀다. 화자는 이런 동성애 경향을 철저히 숨기고 산다. 성년이 되었을 때 친구 여동생 소노코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지만, 키스한 후 여성에게선 성적인 느낌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노코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소설 속 ‘나‘는 내면과 가면 사이에서 방황한다. 소노코가 사랑이 담긴 편지를 보내왔을 때 그것을 보고 질투할 정도다. 자신은 느낄 수 없는 이성에 대한 진짜 사랑을 편지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뒤집어쓴 가면이 자신의 본질이 되길 갈망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가면의 고백‘이란 말은 형용 모순이다. 고백이란 가면을 벗는 일이다. 작가는 과연 그게 가능한지를 묻는다. 이 소설은 가면이 결코 내 본질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렇지만 끝까지 가면을 벗을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자의 좌절의 기록이다.

소설 속 ‘나‘의 고백은 어떤 독자를 상정하고 쓴 것이다. 이 글을 남긴 ‘나‘는 글을 완성한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미시마 유키오는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이다. 살에까지 파고든 가면, 살집이 달린 가면만이 고백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고백은 정말 진실한 고백일까. 내 약점, 치부를 모두 드러내는 고백을 하고 후련하다며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 고백은 최소한 남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으로 윤색된다. 내 치부를 다 보여주는 진실한 고백은 작가의 말대로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의 고백은 죽기 전 마지막 생의 기록이 아니었을까. 미시마 유키오는 45세에 할복자살했다. 할복자살 직전의 외침 ‘천황폐하 만세‘도, 그가 꿈꾼 불가능한 세상에 대한 마지막 고백이 아니었을는지. 삶에 안주한다는 건 내 가면-페르소나-과 스스로 적당히 타협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라고 고뇌에 찬 서평을 쓴 쥬드는 노트북을 덮고 현실에선 또 찌질거립니다.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는군요. 내일 돈까스에 양주 콜? 쥬드는 가면입니다. 전 대체로 고뇌와는 거리가 멉니다. 헤헿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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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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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 우리는 서울에서 모였다. 사실 모두 군산이란 지방 소도시 출신이었으나 스무 살의 봄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대부분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원하는 성적을 받아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입학했거나, 원하지 않는 성적을 받아 서울 소재의 재수 학원에 다녔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이유로든 스무 살의 통과 제의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지방 촌구석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소수파였지만.

난 서울에 적을 두지 않은 지방의 소수파였기에 잘 곳이 필요했고, 친구들이 많으니 잘 곳 하나쯤은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는 사는 곳이 누나 집이요, 누구는 서울이 아니라 퇴계원이요, 누구는 고시원이요. 가만, 그래도 고시원이면 같이 잘 수 있는 거 아니야? 너 고시원 와본 적 없지? 응. 그래 일단 같이 가서 네 눈으로 직접 봐. 그렇게 술 취한 채 찾아간 그곳은 방이라기보단 마치 하나의

관(棺) 같은 곳이었다.

그곳엔 사람 한 명을 눕혀놓고 나무를 잘라 만든 듯한, 그래서 옆으로 조금만 몸을 돌리면 굴러떨어질 것 같은 얇은 폭의 침대가 있었다. 나머지 협소한 공간은 그마저도 책과 짐으로 가득 차버려 내가 발을 들일 곳이라곤 없었다. 고시원을 조금 작은 원룸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그날 인간의 또 다른 주거 방식을 알게 됐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눕히기 어려워 보이는 그곳을 바라보는 내 표정도 아마 정몽준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친구는 일부러 스파르타식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N 학원에 등록했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고시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난 뭔가 부당한 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시험을 못봐서 재수 생활을 하기로서니, 이건 마치 죄수 생활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학원이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서 지내는 삶 그 자체가

스파르타 식이라고 생각했다. 스파르탄 친구는 왠지 득의만만한 표정이, 나는 온실 속 화초 같은 표정이 되었다. 우리는 그날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날 식혜를 마신 후 헤어졌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고시원같이 가장 좁고 낮은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에게 거액의 빚을 물려받게 된 사람,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사의 남색(男色)을 감당하는 인턴사원, 자신만의 산수로 살며 가냘픈 표정의 아버지를 둔 푸시맨, 일흔세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붙은 곳이 없어 오리배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 생, 그리고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는 학생. 삶은 이들을 경계로 내몬다. 자칫하단 인간 이하로 떨어질 것 같은 경계에서 이들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 화물이나, 뭐 그런 걸로 생각하란 말이야 (75)'란 주문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받은 수모를 다른 약자에게 행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267)'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사람 탓을 하지 않고 담담히 성장통을 겪는다. 상사에게 성기를 빨리고, 사람들을 열차 안으로 욱여넣으며 힘들어하고, 방 사이에 합판 벽을 두고 라디오 볼륨을 줄인다. 경계에 몰려 웅크린 채 삶을 살아내는 이들의 모습은 뭉근히 마음을 적신다. 정도가 다를 뿐이지 항거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도 대개 이런 모습이니까. 이들의 삶에 돌파구는 없어 보이지만 소설가는 기묘한 위로를 건넨다. 골칫거리를 집어넣을 냉장고, 등을 밀어주는 너구리, 멀뚱히 바라보는 큰 눈망울의 기린, 펠리컨으로 업그레이드된 오리배. 읽지 않고는 상상할 길이 없다.

그날 고시원을 내게 보여주던 친구와 집안 사정으로 친척 집에 살던 친구는 안타깝게도 백수(긍정적 언어론 취업 준비생)이므로 여전히 경계선의 삶을 살고 있다. 난 가끔 책으로도 위로를 받지만 이들에게 『카스테라』를 건네면, 이딴 거 너나 읽어라고 대답하겠지. 책은 원래 얄팍한 위로니까. 그렇다고 너구리나 기린으로 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돈 버는 나는 가끔 술 한 잔이나 사고 마는 것이다. 공짜 술 한 잔 삼킨 친구는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할까? 고마워, 과연 박쥬드야.

컴퓨터가 문제였는데 모니터를 놓으면 의자를 올릴 수 없고, 즉 누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공간이어서 금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다리를 펴지 않기로, 했다. 결심을 하고 보니 과연 새우잠이 건강에도 좋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듯도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하고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그 첫날 밤은 아직도 생생하다. 예수가 다시 태어나도 좋을 만큼 고요한 밤이었고, 너무나 검소하고 청빈해서 거룩한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은 나는 조용히 가방을 뒤졌고, 세번째 가방의 옆구리에서 워크맨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어폰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숨을 죽이며 주파수를 맞춘 다음, 들릴락 말락 최저의 볼륨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최저의 볼륨이었나 하면 - 가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고 그저 음악이 나오는구나 정도를 알 수 있는 <쟁쟁쟁쟁>의 연속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쟁쟁쟁쟁을 듣고 있으니 왈칵 눈물이 났다. 제목을 알 수 없는 그 쟁쟁쟁쟁은 그 정도의 명곡이었던 것이다.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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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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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 아닌 맞사랑은 대개 축복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그렇다. 짝사랑의 경우 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이 지옥이다. 사람들은 그 지옥에서 벗어나길 갈망하고, 사랑을 이룬 순간 모두의 축복을 받는다. 반면 금지된 사랑의 경우 사랑을 이룬 순간에도 그들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은 금기를 깬 그들에게 복수할 것이므로. 행여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현실은 이미 지옥이다. 이 경우 사랑이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고통은 커진다. 사랑을 포기하는 것만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소설에선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아서 이어질 수 없었던 이들이 나온다. 다이스케와 미치요다. 다이스케와 미치요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미치요는 다이스케의 친구 히라오카와 결혼한다. 히라오카와 미치요의 결혼생활은 히라오카의 방탕한 생활과 미치요의 병세로 점점 불행해진다. 미치요가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다이스케에게 금전적 도움을 청하고, 다이스케는 미치요 부부를 돕는다. 그러는 중에 다이스케는 자신이 미치요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제야 비로소, 천천히 깨닫는다.

 

다이스케는 서른 살인데 일을 하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받는다. 집에는 가사를 도와주는 서생과 아주머니도 있다. '감자를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히 여기게 된다면 인간은 끝장'이라고 생각하기에 일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취미 생활에만 몰두한다. 편하게 보이는 삶은 그에게 짖궂은 질문을 던진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해도 되는가? 백합향이 진동하는 방에서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미치요도 다이스케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만 이미 늦어버렸을 뿐.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순간 세상은 견딜 수 없는 지옥이 된다.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경제적 지원을 끊고 히라오카는 절교를 선언한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자연으로서의 사랑'이다. 그러나 '자연으로서의 사랑'을 좇는 순간 그동안 쉽게 누렸던 나머지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감자'를 스스로 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금지된 사랑에 대한 형벌이다.

 

아, 그럼 어쩌란 말이느냐. 다른 문답이었지만 왠지 통하는 대답인 듯한 데라오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누구에게 묻더라도 그다지 잘 알지는 못할 걸세" 그러나 분명, 은방울꽃을 담가 놓은 수반의 물을 마시고 난 후 "괜찮아요. 향기도 난걸요."라고 말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이스케도 독자도 이 순간 사랑에 대한 윤리는 잠시 미뤄놓고 꽃향기에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런 걸 소설이 지닌 마술적 힘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 후'가 되어버리고 나서 회한에 젖지 말고, 바로 지금 당신 곁의 그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는 게 최선일지어다.

비는 저녁 무렵에 그쳤고 밤이 되자 구름이 연이어 흐르고 있었다. 씻은 듯이 맑은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이스케는 달빛에 빛나는 뜰의 젖은 잎을 오랫동안 툇마루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마침내 게다를 신고 뜰로 내려섰다. 원래 넓지도 않은 뜰인 데다가 나무가 상당히 많아서 다이스케가 걸을 만한 공간은 별로 없었다. 다이스케는 그 한가운데에 서서 드넓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객실에서 낮에 사왔던 백합을 가지고 와서 자기 주위에 뿌렸다. 흐트러진 하얀 꽃잎이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보였다. 어떤 것은 나무 밑의 어둠 속에서 희멀겋게 보였다. 다이스케는 별생각 없이 그 사이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잘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방 안에는 꽃향기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었다. 2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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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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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엔 나를 도와주는 20대 초반의 부하 직원들이 있다. 난 그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곤 한다. 있다고 하면 어차피 그 나이 때 만나는 여자는 헤어질 수밖에 없으니 대충 만나라 말한다. 헤어지고 입사했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어차피 헤어지게 됐을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고. 여자친구가 있던 적이 없다고 하면 더 이상 농을 던질 수 없다. 같이 울어줘야 한다. (ㅎㅎ)

 

이 책은 왜 청춘은 사랑할 수밖에 없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김연수의 대답이다.

 

일단 이 책의 제목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Revisit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이렇다.

 

1.(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방문하다
2.다시 논의하다.

 

이 책은 김연수가 20대 중반에 쓴 7번 국도라는 소설을 2010년에 수정하여 다시 쓴 것이다. 그리고 책 안에서는 7번 국도를 오랜 시간 뒤 다시 찾아가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7번 국도 Revisited라는 제목은 두 가지 작품 내외적 함의를 지닌다.

 

책의 첫인상은 아주 산만했다. 짧은 호흡으로 시간 축이 뒤섞인 채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 산만해서 몇 장 읽다 말고를 반복하다 책상 위에 던져뒀다. 만날 김연수가 하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말이다. 몇 달 후 지독히 책 읽기 싫은 때가 찾아왔다. 다시 책을 읽고 싶은데 두꺼운 책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얇은 책부터 조금씩 읽어보기로 했다. 전락, 야만적인 앨리스 씨를 읽었지만 결코 쉽게 읽히지 않았다. 세 번째로 잡은 7번 국도 Revisited는 빠르게 읽혔다. 여름에는 그렇게 안 읽히던 이 책이 중반을 넘어가며 술술 읽혔다. 인물들의 속 사정을 알게 됐을 때 비로소 내가 그 청춘들에 공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나온다.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한다. 순서대로. 묘한 경쟁의식을 가진 두 남자지만 이 여름 아니면 갈 때가 없을 것이라며 7번 국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자는... 더 말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책을 읽어보자.

 

왜 청춘은 헤어지고 말 사랑에 몸을 던지는가? 작가는 고양이 킬러의 질문에 대한 고양이의 대답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복수하기 위해 사랑한 게 아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희망을 가지기 위해 사랑했다. 희망은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당신의 복수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당신의 운명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며, 당신이 다시 복수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다. 거기 의미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오직 맹목적일 것이다.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지만, 당신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려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으나, 우리가 복수할 대상은 이미 지상에서 사라졌다. 204p"

 

사랑은 맹목적이고 청춘은 완전하지 않으니까 이별할 수밖에 없다. 지나간 사랑들을 그저 치기 어렸을 때의 일들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 경험들이 우리의 인생을 구성하고 오롯이 떠받치는 것이므로 치기는 한순간일 뿐 우리는 계속 사랑해야 한다. 다시 찾아간 7번 국도에 청춘은 없다. 예전의 우리로도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부하 직원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헤어졌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 살다 보면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더라. 아니, 못 만나면 어떠냐. 아픔은 희석되기 마련이니 걱정 마라. 지금은 증오하지만 증오도 희석된다, 상대방도 그럴 것이고. 다른 여자 만나서 또 놀면 되지 뭐"

 

하지만 여자를 만나본 적 없는 부하 직원에겐 여전히 해줄 말이 없다는 건 함정이다.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둘러싼 기억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죽어간다. 우리는 그걸 ‘학살‘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의 날씨를 잊었고, 싫은 내색을 할 때면 찡그리던 콧등의 주름이 어떤 모양으로 잡혔는지를 잊었다.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던 이층 찻집의 이름을 잊었고, 가장 아끼던 스웨터의 무늬를 잊었다. 하물며 찻집 문을 열 때면 풍기던 커피와 곰팡이와 방향제와 먼지 등의 냄새가 서로 뒤섞인 그 냄새라거나 집 근처 어두운 골목길에서 꽉 껴안고 등을 만질 때 느껴지던 스웨터의 까끌까끌한 촉감 같은 건 이미 오래 전에 모두 잊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그 사람의 얼굴이며 목소리마저도 잊어버리고 나면, 나만의 것이 될 수 없었던 것들로 가득했던 스무 살 그 무렵의 세계로, 우리가 애당초 바라봤던, 우리가 애당초 말을 걸었던, 우리가 애당초 원했던 그 세계 속으로 완전한 망각이 찾아온다.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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