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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2004년 봄 우리는 서울에서 모였다. 사실 모두 군산이란 지방 소도시 출신이었으나 스무 살의 봄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대부분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원하는 성적을 받아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입학했거나, 원하지 않는 성적을 받아 서울 소재의 재수 학원에 다녔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이유로든 스무 살의 통과 제의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지방 촌구석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소수파였지만.
난 서울에 적을 두지 않은 지방의 소수파였기에 잘 곳이 필요했고, 친구들이 많으니 잘 곳 하나쯤은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는 사는 곳이 누나 집이요, 누구는 서울이 아니라 퇴계원이요, 누구는 고시원이요. 가만, 그래도 고시원이면 같이 잘 수 있는 거 아니야? 너 고시원 와본 적 없지? 응. 그래 일단 같이 가서 네 눈으로 직접 봐. 그렇게 술 취한 채 찾아간 그곳은 방이라기보단 마치 하나의
관(棺) 같은 곳이었다.
그곳엔 사람 한 명을 눕혀놓고 나무를 잘라 만든 듯한, 그래서 옆으로 조금만 몸을 돌리면 굴러떨어질 것 같은 얇은 폭의 침대가 있었다. 나머지 협소한 공간은 그마저도 책과 짐으로 가득 차버려 내가 발을 들일 곳이라곤 없었다. 고시원을 조금 작은 원룸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그날 인간의 또 다른 주거 방식을 알게 됐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눕히기 어려워 보이는 그곳을 바라보는 내 표정도 아마 정몽준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친구는 일부러 스파르타식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N 학원에 등록했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고시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난 뭔가 부당한 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시험을 못봐서 재수 생활을 하기로서니, 이건 마치 죄수 생활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학원이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서 지내는 삶 그 자체가
스파르타 식이라고 생각했다. 스파르탄 친구는 왠지 득의만만한 표정이, 나는 온실 속 화초 같은 표정이 되었다. 우리는 그날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날 식혜를 마신 후 헤어졌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고시원같이 가장 좁고 낮은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에게 거액의 빚을 물려받게 된 사람,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사의 남색(男色)을 감당하는 인턴사원, 자신만의 산수로 살며 가냘픈 표정의 아버지를 둔 푸시맨, 일흔세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붙은 곳이 없어 오리배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 생, 그리고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는 학생. 삶은 이들을 경계로 내몬다. 자칫하단 인간 이하로 떨어질 것 같은 경계에서 이들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 화물이나, 뭐 그런 걸로 생각하란 말이야 (75)'란 주문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받은 수모를 다른 약자에게 행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267)'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사람 탓을 하지 않고 담담히 성장통을 겪는다. 상사에게 성기를 빨리고, 사람들을 열차 안으로 욱여넣으며 힘들어하고, 방 사이에 합판 벽을 두고 라디오 볼륨을 줄인다. 경계에 몰려 웅크린 채 삶을 살아내는 이들의 모습은 뭉근히 마음을 적신다. 정도가 다를 뿐이지 항거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도 대개 이런 모습이니까. 이들의 삶에 돌파구는 없어 보이지만 소설가는 기묘한 위로를 건넨다. 골칫거리를 집어넣을 냉장고, 등을 밀어주는 너구리, 멀뚱히 바라보는 큰 눈망울의 기린, 펠리컨으로 업그레이드된 오리배. 읽지 않고는 상상할 길이 없다.
그날 고시원을 내게 보여주던 친구와 집안 사정으로 친척 집에 살던 친구는 안타깝게도 백수(긍정적 언어론 취업 준비생)이므로 여전히 경계선의 삶을 살고 있다. 난 가끔 책으로도 위로를 받지만 이들에게 『카스테라』를 건네면, 이딴 거 너나 읽어라고 대답하겠지. 책은 원래 얄팍한 위로니까. 그렇다고 너구리나 기린으로 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돈 버는 나는 가끔 술 한 잔이나 사고 마는 것이다. 공짜 술 한 잔 삼킨 친구는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할까? 고마워, 과연 박쥬드야.
컴퓨터가 문제였는데 모니터를 놓으면 의자를 올릴 수 없고, 즉 누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공간이어서 금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다리를 펴지 않기로, 했다. 결심을 하고 보니 과연 새우잠이 건강에도 좋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듯도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하고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그 첫날 밤은 아직도 생생하다. 예수가 다시 태어나도 좋을 만큼 고요한 밤이었고, 너무나 검소하고 청빈해서 거룩한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은 나는 조용히 가방을 뒤졌고, 세번째 가방의 옆구리에서 워크맨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어폰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숨을 죽이며 주파수를 맞춘 다음, 들릴락 말락 최저의 볼륨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최저의 볼륨이었나 하면 - 가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고 그저 음악이 나오는구나 정도를 알 수 있는 <쟁쟁쟁쟁>의 연속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쟁쟁쟁쟁을 듣고 있으니 왈칵 눈물이 났다. 제목을 알 수 없는 그 쟁쟁쟁쟁은 그 정도의 명곡이었던 것이다.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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