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새 양식 열린책들 세계문학 284
앙드레 지드 지음, 최애영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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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284

『 지상의 양식 · 새 양식 』

앙드레 지드 / 열린책들






나의 책이 너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너 자신에게

- 그 다음에는 너 자신보다

나머지 모든 것에 더 흥미를 갖도록 가르쳐 주기를.



예전에 어머니께서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떻게 세상에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으며 좋은 것만 입을 수 있냐고... 그저 더 낮은 사람들을 보며 이만큼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등 따스한 방바닥에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욕심이 과하며 모든 것이 해가 될 것이라며 그저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주 큰 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진데 그것도 욕심이라 말하면 사는게 너무 적막할 것 같다고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지상의 양식 · 새 양식>을 만난다면 위에 언급한 문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입을 수 있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이 이 책을 통해 흐트러지며 사라질 것이니까...





<지상의 양식 · 새 양식>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최대의 행복을 찾아 누리겠다는 여러가지 메세지를 남긴 비망록으로 독자에게 그야말로 주옥같은 긍정의 한 줄을 남겼다.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여 부정을 긍정으로 만들고 절망을 희망으로 되새겨 삶에 대한 자세를 새롭게 다짐하게 만드는데 무척이나 나른하고 황홀경에 빠질만한 글귀들을 그려낸다.

시인의 제자이며 예수의 제장 중 한명인 나타나엘에게 전하는 메세지로 세상으로부터의 유혹을 견제하기보다 자신의 경계에 맞게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방법들을 말해주는데 어쩌면 심신이 미약한 독자는 이 책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는 찰나의 생각도 하게 되었다는거...



어디를 가든, 너는 신을 만날 수밖에 없다 - 신.

메날크는 말하곤 했다.

《신은 바로 우리 앞에 있는 것》이라고.

나타나엘, 너는 지나가면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느 곳에서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덧없이 지나가 버리지 않는 것은 오직 신뿐임을 명심해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보다 그것을 벌하는 데서 더 많은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진로의 불확실성으로 우리의 삶 전체를 괴롭히고...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육체를 서슴없이 벌하며 자신에게 더 가혹하게 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상의 양식 · 새 양식>에선 세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지만 오직 신만큼은 자신의 앞에 머물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시선 속에 중요한 것들을 담아내며 욕망의 충족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욕망으로 많은 것들이 사랑으로 타오르고 우리의 영혼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면 우리는 영혼보다 더 열렬히 타오르는 삶을 살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느꼈던 기다림은 욕망에서 두려움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가뭄으로 땅이 갈라지고 지쳤을즈음 하늘에서 머금은 뇌우조차도 장엄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거... 그러니 그런 기다림이 너에게 욕망이 아닌 마중하는 일이었음 좋겠다며 포근한 메세지를 끄적인다.

배고픔에 취하는 것에 대한 행위 또한 쾌락을 줄 것이며 쾌락이란 말이 삶의 동의어였음 좋겠다는 우려스런 소망의 메세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를 현혹하기에 충분할 듯 하다. 매일의 밤이 지나면서 잠의 매력을 느낄것이며 햇볕이 내리쬐는 정원의 한가로운 휴식 또한 감미로운 인생의 증거일 것이라 말한다. 읽는내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비망록의 메세지는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이 책은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도 같은 책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앙드레 지드가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영원한 '탈주와 해방 참고서'라고 말했지만 책의 서문에서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도 얽매이기 싫어했던 자신이었기에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책을 던져버리라 경고의 말도 남겼다. 아마도 책 속에 드리워진 오아시스와도 같은 낙원의 양식이 이제는 나 자신을 향하도록 행하라는 메세지를 던진것이 아닐까...

긍정의 한 줄로 삶을 변화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생각의 변화가 행동을 만들고, 긍정적인 변모를 통해 궁극적 삶이 행복을 향한다는걸 의심치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상의 양식 · 새 양식>은 마치 인생길을 안내하는 믿음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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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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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 핀처 마틴 』

윌리엄 골딩 / 민음사








살려 줘! 살려 주세요!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끈을 잡기위한 사투를 벌인 적이 있는가? 독자인 나는 아마도 <핀처 마틴>이 구명대라는 생명줄을 잡고 목이 터져라 애원했던 삶의 간절함을 왠지 알 것 같다. 수술대 위에 벌거 벗겨져 누워 있는 것은 나, 안정실에서 다음 날이 넘어가도록 깨어나지 못한 나는 칠흑같은 어둠과 마주했던 것 같다. 정신없이 사경을 헤매고 손 끝에 닿은 물체를 놓지않으려 사력을 다해 눈을 떳는데, 그들에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서글픈 울음만이 귓가로 들려오기만 했다. 아픔에 몸서리 치던 것도 잠시, 이대로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 살겠다는 의지였을까? 할 수 있는만큼 온 몸을 비튼 끝에 얕은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의식의 경계에서 그것을 넘을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고하지만, 저자는 <핀처 마틴>을 통해 철학적 자기애와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자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처절한 절규를 그려낸다. 과연 대서양 어디즈음에 생명의 경계와 마주한 그는 살아내야하는 의지의 끝자락을 독자에게 어떠한 결말을 보여줄지 무척이나 궁금해 진다.







그들은 한동안 말을 멈추었다.

표류선 너머에서 태양은 불타오르는 선박처럼

가라앉았고, 내려갔고,

마치 연기와 같은 구름을 제외하고는

상기할 만한 것 하나 남기지 않았다.



영국 해군 대위 크리스토퍼 해들리 마틴... 자신을 지성인이라 믿었던 그는 함정의 키를 잡고 있는 인물로 당직 중에 대서양 한복판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음의 끝에서 눈을 떳을 때, 자신은 대서양 한가운데 구명대 하나만으로 몸을 의지하고 있었고 젖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소책자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에겐 그저 어둠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을 뿐이다.

"살려 줘! 살려 주세요."

"난 안 죽을 거야! 안 죽을 거라고!"

광기에 젖은 울부짖음은 조금씩 사그라지고 만다. 마틴이 지켜온 '지성'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리라 스스로 인식을 다지며 얕은 의식의 끈을 놓지않는다. 일광의 뜨거움과 목마름의 소용돌이에 갇힌 그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하늘의 조각마저 환영의 유혹으로 정처없이 떠돌게 만들었던 바다... 돌덩이에 부딪치는 순간 침묵했던 그를 찢어지는 고통으로 깨어나게 했을 때 암석에 의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암석 위에서 삿갓조개나 모아둔 물로 생명을 유지하며 또 한번의 삶의 투쟁을 벌이게 되는데... 

아~ 다시 생각해보니 서풍으로 불던 바람의 기수를 잘못돌린 탓...? 그대로 대서양 한복판에 가라앉았던 함정의 실체는 과연 무엇을 말하려 했던건지 이 모든 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죽음의 경계에 선 마틴의 환영이었는지, 그것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일 것이다.



바라야 하는 목표는 구조이며 스스로의 정신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지성적인 정신의지... 너새니얼과 나눈 죽음의 기술인 천국의 완전한 무(無) 또한 살아가는동안 견뎌내야 할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힘든 지금을 매번 견디며 살아내는 우리도 있으니, 삶이란 참으로 무상한 것... 그에 대한 가치도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니 인생 참 쓰다란 말이 맞는 말인듯 싶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핀처 마틴>은 인간 내면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불안과 공포를 죽음 앞에 몰아넣는다. 존재하는 인간이 지금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을 남긴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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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3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공경희 옮김, 정희진 분류와 해설 / 열린책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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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283

『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 열린책들





<나>는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를

편리하게 지칭하는 대명사일 뿐입니다.



이 문장은 아주 오랜시간 나에게 사색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현재의 <나>는 실존하지만 기억하는 과거의 <나>였던 누군가와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동시대가 아닌 저마다 존재했던 역사의 순간까지, <나>라는 존재를 실제하는 <나>로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란 결론을 내게되었지요. 

다시 만나는 <자기만의 방>을 현대시대에 맞춰 '마음의 방'으로 재해석 해보려 합니다. 시대는 변했고 이제는 마음이 판단하는 성적인 차별을 말이죠.


책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무엇보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는 것만 생각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페미니즘 문학의 작가로 <자기만의 방>이 교과서와도 같은 대표 문학에 자리매김하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 1900년대의 영국사회의 모습과 알게 모르게 스며져 있었던 책 속의 성차별적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강연한 사례를 바탕으로 본질적 의미의 차별을 주장한 비평서이자 독립된 여성으로서의 거듭나길 기원하는 부드러운 문체의 에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여러분이 여행을 하고

느긋하게 지낼 비용을 확보하면 좋겠습니다.

세계의 미래나 과거를 사유하고,

책을 보면서 꿈꾸고, 길모퉁이를 배회하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물 깊이 드리울 수 있는 돈을 갖기 바랍니다.



과거 남성의 절대 지위와도 같았던 명예와 권력...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성차별, 배움, 직위 등의 생물학적 차별보다는 본질화된 보수적 의미의 차별을 말하고 있습니다. 글에는 단순히 여행을 하고 책을 읽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수단으로 돈을 말하고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의아해 할 수도 있지요. 왜? 이정도는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란 그저 자신을 지적으로 꾸미고 조용히 내조를 해야했던 <나>라는 주체가 상실된 삶이었죠. 그에 저자는 여성의 주체성 확립과 기회의 평등을 주장했으니 무척이나 발칙한 사상을 가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나>로서의 삶으로 사고의 인식과 흐름에 따라 돈과 자신만의 방을 소유한다는 것은 가난에서 벗어나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거나 열등한 존재로서의 글쓰는 여성 등의 이유로 기회의 평등을 논할 수 있는 소재가 되는 것을 뜻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여성과 픽션'이란 주제로만 생각해도 돌려 말하는 법없이 단호하게 자신만의 방과 돈을 직시하게 해준거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겠지요...?



지금의 우리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자연스레 직업라는 사회에 속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요... 과거보다 여성들의 주체성은 차곡차곡 적립이 되는 듯 하지만 '마음의 방'은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존재하는 나로서의 가치를 부족하게 여기고 돈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삶 말이죠. 

페미니즘의 고전문학으로 나를 실존하게 만드는 <자기만의 방>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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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장난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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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3

『 미친 장난감 』

로베르토 아를트 / 휴머니스트







이건 너무 부당하다고요.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놈의 세상, 왜 이다지도 불공평하단 말입니까?



세상에 악한 사람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저 사는게 여의치않거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에 나쁘게 변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의 종착을 행복이라 말하지만 원치않았음에도 세상에 나왔고 뿌리부터 말라붙은 가난때문에... 그넘의 돈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게 되고 어리석게도 쉬운 방향이라며 범죄에 손을 뻗게 된다고 말이다. 금수저로 태어났어도 그들이 결코 행복의 종착역에 다다를 수 없듯이 가난하지만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이 교과서적인 이상적이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 내가 맞닿은 현실이라고...

<미친 장난감>은 주인공 실비오의 회상록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합리한 세상을 향해 처절한 목소리를 내는 인생수업과도 같은 소설이다. 마치 가난한 프로이센의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로베르토 아를트의 생애처럼... 저자 또한 가난과 비참한 삶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절망을 맛보았다고 하니까... 그럼에도 실비오의 변모를 기대하며 책의 페이지를 넘겨본다.





이봐, 친구.

모든 게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바꿔나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러지 못하고 낙오하는 이들도 있지......

우리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



주인공 실비오 아스티에르는 일찌감치 도적문학의 짜릿한 즐거움에 빠져있었다. 부유한 귀족들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는 의적의 행보를 보며 실비오는 도둑이라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걸 느꼈을까? 어차피 찌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형편이니 도둑질로 자신의 이득을 취한다고 해서 나쁠건 없다고 생각한걸까? 

하여튼 실비오는 위조꾼이란 별명을 가진 동지 엔리케 이르수베타를 만나 강도질이 가치있고 아름다운 행위라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빈집털이를 시작으로 경보장치가 없는 금고까지 털면서 영웅놀이를 즐겼는데 이들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져 똑똑한 놈들을 모아 비밀조직을 만들겠단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그렇게 누가봐도 뻔뻔스럽게 생긴 루시오가 합류하면서 '한밤의 신사들 클럽'을 만들었고 피도 눈물도 없는 도둑이 되기 위한 결의를 다지며 학교도서관을 털지만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바람에 비밀조직은 조용히 흩어져 버린다.

책에서 만난 로캉볼처럼 위대한 도둑이 되길 꿈꾸었던 실비오... 보들레처럼 천재적인 시인이 되길 꿈꿨던 실비오는 이제는 일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서점에서 일하지만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항공군사학교에서 자신의 의견을 어필했다가 쫓겨난 실비오는 삶의 고통과 불안 결국엔 삶의 의지를 잃고 만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앞으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비참하고 더러운 삶에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지만 자살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에 젖어드는데... 과연 주인공 실비오는 이렇게 무너지고 마는 것인가?




<미친 장난감>에서 그려진 실비오의 나이는 고작 열네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였다.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었고 돈이 있어야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었으며 돈이 있어야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기에 실비오에겐 애초부터 이 모든게 가능하지 않았다는거... 그저 지인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책 속에 등장하는 영웅적 인물처럼 살고 싶었던 실비오의 마지막 선택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평등한 기회를 받지 못한다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처절한 현실에 무릎을 꿇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희망을 마주하기 위해 애쓰라고 이제는 말하지 못할것 같다. 지금을 버티라고... 죽을 용기가 있다면 간절히 버텨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독자가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해서 주인공 실비오가 과연 죽음을 택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다면 <미친 장난감>의 페이지를 넘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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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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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1

『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 휴머니스트










간절한 사랑이었는데 그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로 몰랐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나였기에 사랑을 애타게 원했고 미소에 환호했으며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 뿐...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알지 못했고 이러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도 몰랐던 그들의 애틋함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만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사랑과 복수의 그릇된 욕망을 드리워낸 고전소설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풋풋한 감정이 물씬 풍겨와 설렘을 만들고 서툰 감정을 표현할 줄 몰라 삐그덕대는 감정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결국엔 헤어짐을 경험하게 되었어도... 그럼에도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 말 할 수 있는 첫사랑의 감정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폭풍과도 같은 거센 사랑을 마주할거라 기대를 했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는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은

내가 죽거나,

아니면 저이가 죽는 걸 보는 거야!



<폭풍의 언덕>은 염세주의적 성향을 가진 록우드의 시점으로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동떨어진 잉글랜드 북부의 황야지대 워더링 하이츠로 오게 되면서 막이 열린다. 그곳에 잠시 세들어 살게 된 그는 집주인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중에 갑작스레 거친 폭풍을 만나 그곳에서 하루 묶어가게 되는데...

다락의 음침한 방으로 안내받은 그는 벽에 가득 새겨진 캐서린 언쇼, 캐서린 히스클리프, 캐서린 린턴 등의 이름과 상형문자로 된 책을 한권 발견하고 호기심에 책장을 넘긴 록우드는 이 집에 깃들여진 이상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나뭇가지는 거침없이 흔들렸고 창문을 때리는 소리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나뭇가지를 꺾으려 손을 내밀었고 내민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아이의 작은 손, 들여보내달라는 애절한 울부짖음에 놀라 날이 밝자마자 그곳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워더링 하이츠에서 18년간 일한 딘 부인에게 그 사연을 듣게 되는데...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야.

히스클리프는 언제나, 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

내가 늘 나 자신에게 기쁨은 아닌 것처럼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서.

그러니 우리가 떨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게다가……




딘 부인이 록우드에게 들려주는 거친 황야의 워더링 하이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추수를 시작할 무렵의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는 리버풀에 가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다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약속된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않는 아버지를 기다렸던 힌들리와 캐시... 늦은 시간에 도착한 아버지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며 검은 머리의 아이를 소개한다. 어느 집 아이인지 아는 사람도 없고 길거리에서 굶주리고 있는 아이 히스클리프를...

불쌍한 히스클리프를 자신의 아들 힌들리보다 애정했던 아버지는 얼마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만다. 그때부터 힌들리의 거침없는 학대는 시작되었고 히스클리프는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거... 다행히 캐시와는 운명인듯 점점 가까워졌고 마음의 품은 사랑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데...

그러던중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캐시가 근처 대저택에 사는 린턴 가문의 에드가와 결혼을 다짐했다는거... 당시 둘의 관계를 눈치챈 딘 부인이 왜 에드가와 결혼하려는지 물었고, 캐시는 에드가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빠로부터 벗어나 돈과 명예를 얻어 히스클리프 또한 구해내겠다고... 자신이 곧 히스클리프라고... 문제는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들은 히스클리프는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몇년후... 조용히 사라졌던 돌아왔다!! 대물림되는 복수는 거침없는 사랑의 갈망을 드러냈고 그로인한 몰락은 모두를 벼랑끝으로 내몰게 된다. 나 자신마저도...





과연 히스클리프와 캐시가 결혼했어도 행복했을까? 

<폭풍의 언덕>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 바로 이것이다. 불행의 시작이 어린 소년의 등장부터가 아니라 부족했던 사랑의 결핍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마저 학대했던 힌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고 캐시는 히스클리프와의 사랑을 유지하기위해 에드가를 선택했다는거... 이 모두가 사랑의 결핍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책의 제목처럼 폭풍과도 같은 사랑은 막을 내렸다. 오히려 후련한 생각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닐것 같다는 느낌... <폭풍의 언덕>은 무자비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그려낸 고전문학으로 황야의 거친 무대를 그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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