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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넌 고마운 사람
배지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평점 :
https://hestia0829.blog.me/221773243257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이란 제목에 이끌리듯이 읽게 된 책이다. 한 밤의 다정들이 모였다고 소개한 이곳은 저자가 과거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도착하는 사연들을 모으고 고르는 일을 하면서 끄적인 글인듯 하다. 아마도 같은 제목을 가진 김연우의 음율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가는 것은 머리의 기억이 아닌 가슴의 기억이기 때문일거다. 연인이나 친구,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바라보며 흐뭇 웃을 수 있는 따뜻한 책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책 속의 에세이 중에 '펭귄의 사랑'은 달달하면서 따뜻하기도 하다. 펭귄은 한자로 표현하면 인간새라는 뜻을 가진 인조라고 하는데 이 친구가 글쎄 사람만보면 그렇게나 반가워 파다닥.. 뒤뚱..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달려온다고 한다. 그리고 가까이 와서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사람을 보고 금세 실망스런 표정을 짖지만 그래도 아쉬워 주위를 맴돌곤 한다며 이 사소한 것조차 특별히 여긴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었다.
인간관계 속에서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아주 사소한 소재를 연결시켜 타인과 소통하고 그것을 계기로 공통의 관점을 함께 찾는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조금은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고집스럽지 않게 서로 조율해가며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이치가 바로 관계속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좀 더 잘 헤어질 수 있겠지'에서 설명한 유도 이야기인데, 상대를 메치는 방법보다 자신이 제대로 넘어지는 것을 배운다는 유도는 자신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이미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게 되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잘 헤어지는 것도 역시 중요한 게 맞다.
라디오 사연을 듣는 듯, 늦은 밤 이 책과의 만남은 추억을 소환한다. 과거 '별이 빛나는 밤에'의 애청자로 라디오 디제이가 들려주는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쨌든 오늘 나는 괜찮았네"하며 하루를 툴툴 털어버리는 그런 젊은 나를 추억하게 됐다. 추운 바람이 부는 요즘... 따뜻한 차와 어울리는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