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로 시작하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10년전 기억상실에 걸려 자신의 과거를 모르던 ‘기 롤랑‘이 ‘C.M. 위트 흥신소‘ 의 위트가 흥신소의 문을 닫고 니스로 떠나면서 이제 사라진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서며 시작 됩니다.흥신소라는 곳이 누군가의 정보를 찾고, 때로는 감시, 미행 하는 곳인데 롤랑은 왜 자기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았는지 의심으로 시작하여 작은 단서들을 파고들어 과거의 회상들과 만나는 시간까지 줄줄이 엮이는 도미노게임의 한 조각이 된 듯한 느낌의 소설이었습니다.페드로 맥케부아 또는 지미 페드로 스테론 으로 살았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가며 젊은 날의 자신을 흐린 사진 속에서 발견하는 모습을 통해 어떤 음모가 있으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지만 결국 배신 당하고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다 읽었음에도 해설을 그대로 이어 읽는 촌극을 벌였습니다. ㅋㅋ그만큼 복잡 한 듯 하면서 잔잔해서 밤늦은 파리의 뒷골목 스런 느낌이 저에게는 전부 입니다. 요런 잔잔한 글을 좋아하는 동네분들을 위해 추천합니다. 피철철은 없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철철 넘쳐납니다.동양인을 비하하는 세레모니에 등장하는 ‘찢어진 눈(째진 눈)‘이란 표현이 거슬리지만 이 시기(1965년)에 살던 파리의 사람들이라면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0년대 부산 영도구 대평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깡깡이>를 오늘 읽었습니다. 가난을 기억했기에 소설 속에 나오는 묘사들이 낯설지 않으면서도 바닷가 모습들이나 삶에 대해선 한없이 낯설었습니다. ‘아시바‘라는 생소한 단어에 네이* 사전까지 찾아보며, ‘깡깡이 아지매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바닷가 짭쪼름한 기억들을 소환하고 백일이 갓 지난 막내 동생을 업고 깡깡이 일을 하는 엄마를 찾아가 젖을 먹이고 돌아오는 정은이의 긴 그림자를 소설 사이사이에서 만납니다. 열한 살 장남 동식이, 여린 아홉살 정애, 귀여운 여섯 살 정희, 막내 동우, 그리고 맏딸의 굴레를 짊어진 정은이까지 5남매를 키우는 엄마....지금은 희망요양원에서 딸의 얼굴도 잊고 가끔은 맏딸에 대해 미안해 하는 정꽃분 할머니.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의 한장면을 회상하며 그런 시절을 견디고 이겨낸 부모님들이 자랑스러워 지는 한편 맏이에게 주어지는 천형처럼 희생을 강요 당하는게 당연했던 시절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국민학교, 육성회비, 다친 곳에 된장을 척 바르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사라졌지만 기억하는 이들에겐 한때는 아품이었고 극복한 이들에겐 웃고 넘길 추억입니다.따뜻한 글에 큰 선물을 받고 마지막 장을 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