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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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년이 온다] 출간 이후 꾼 꿈에서 시작된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시작이 꿈이었던 것 처럼 현실과 꿈이 동시에 존재하고, 삶과 죽음이 혼재 되어 있으며 때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공간을 채우는 ‘눈‘과 검은 나무들이 이식 된 땅으로 다가옵니다.

표지에 보이는 흰벽은 처음엔 거대한 빙하로 보였고, 다시 보니 구름인가 싶었는데 작가님과 영상을 만드는 후배가 흰천의 양쪽 끝을 잡고 서서 허공인 듯한 공간을 뒤덮어 만든 벽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저 흰색의 천이 없었다면 빈 공간으로 생각했을 그곳에 잔인하고 힘겨운 기억들이 존재했었다는 걸 눈앞에 펼쳐보인 것이 아닐까 상상을 하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갑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이는 분명 경하입니다. 인선과는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입사한 잡지사에서 프리랜서 사직작가로 소개 받아 처음 만났습니다. 삼 년동안 매달 함께 출장을 다녔고 퇴사한 이후 이십 년을 알고 지낸 동갑내기 친구 인선이 보내 온 문자에는
경하야.
라고 단출하게 떠있을 뿐입니다. 인선의 성격을 아는 만큼 다급한 사연이 있음을 직감하며
응. 무슨 일이야?
라고 답을 보낸 뒤 기다립니다. 그리고 ...지금 와줄 수 있어?라는 문자가 왔을 때 경하의 기억속 장면들이 부상을 합니다. 서울에 살지 않는 인선, 팔 년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간 이후 사 년 만에 여읜 후 여전히 그 집에서 혼자 머물렀던 그녀였기에 자주 왕래하던 사이는 간격이 생겼고 서로 얼굴을 본 것은 지난 해 가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경하가 인선에게 꿈속에서 본 벌판의 검은 나무들과 내리던 눈을 비집고 바다물이 밀려들어왔다고 이야기를 꺼내며 통나무들을 심고 먹을 입혀 눈이 내리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보자는 말을 꺼냈을 때 인선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 버려진 땅이 있으니 그곳을 쓰면 되겠다고(47쪽) 했고 그 겨울에 하려던 작업은 여러 해를 거치며 흐릿해져가는 꿈처럼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인선은 통나무들을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홀로.

인선의 어머니가 들려 준 제주의 이야기, 온 마을이 친척이고 인척이던 시절이 무너져 겨우 살아남은 몇몇만이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냈는지, 열일곱 살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였던 시절의 어머니와 건너마을 외삼촌이 숨어지내다 수감 되고 이송 되고 세상에서 사라진 이야기, 인선의 아버지가 그해 열아홉 살의 나이에 여동생 셋, 남동생 하나를 지키려 했으나 지키지 못한 이야기가 시멘트에 막힌 긴 광구에 켜켜이 쌓여있다가 세상에 드러난 참혹했던 흔적들이 작별하지 못한 기억들과 만납니다.

손을 다쳐 입원한 인선의 나지막한 부탁으로 제주도 한라산 너머 중산간 마을 옛집에 홀로 남은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한 여정이 시작 되었습니다. 폭설로 결항 되기 전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산길에 막히기 전 마지막 버스를 타고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에게 찾아온 삶과 죽음의 그림자, 빛과 어둠, 눈송이들 사이사이를 차지하고 있는 공간들이 타들어가는 죽처럼 스며들어 비극과 아픔이 바다에 모두 삼켜지기 전에 글이 되고 문장이 되고 영상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날아오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문장 ‘심장처럼.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다 읽고도 작별할 수 없어 제목만 쓰다듬어 봅니다. 녹아 사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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