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미생물 - 우리 몸을 살리는 마이크로바이옴과 발효의 비밀
캐서린 하먼 커리지 지음, 신유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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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의 권유로 한 점 집어 먹었다가 기겁을 했던 무서운(?) 추억의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삭힌 홍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삭힌 홍어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머릿속마저 혼미케 만드는 그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향과 풍미는 먹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나의 미각과 후각에 고통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러나 이 삭힌 홍어는 매우 귀한 음식 중 하나며 건강에 이로운 유익균이 많은 음식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삭힌 홍어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발효라는 독특한 조리법에 있다. <식탁 위의 미생물>이라는 독특한 책의 제목을 보며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발효라는 전통적인 조리법에 의해서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을 배양했다.

저자인 '캐서린 하먼 커리지'는 과학 전문기자로서 음식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설명한다. 미생물 군집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내에 서식하는 미생물 및 유전 정보 전체를 일컫는다. 책은 인간의 장에 서식하는 유익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그 유익균들을 공급하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가 매일 먹는 일상의 음식 속에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너무나 무관심하게 먹고 마셨던 우리의 음식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인간의 장까지 내려가서 서식하며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 끊임없이 좋은 식량을 공급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제품과 채소, 과일, 곡물, 콩류와 씨앗, 육류 등 모든 것이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서 인체 내 마이크로바이옴에 유용한 식량이 되어 줄 수 있다. 불과 20~30여 년 전만 해도 인간의 장내 유산균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풍부했고, 건강했다.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더 불결한 조리법과 조리환경 속에서 음식이 만들어졌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너무나 청결하고 깨끗한 환경과 시설을 갖추고 까다로운 레시피를 통해 음식을 만들지만 인간의 장 건강은 예전만치 못하다. 책장을 넘기며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조금 더럽고 불결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이 오히려 인간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위해서는 득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요리하는 사람의 손에 묻어있는 미생물이 음식 조리 과정 중에 들어가서 더 유익이 된다는 내용을 보며 음식 맛은 손맛이라는 옛 어른들의 경구가 뭔가 허투루 들을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한다.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요거트, 김치, 치즈, 오이피클, 낫토, 맥주, 코코아, 소시지 등 전 세계의 다양한 발효 음식들을 찾아 떠나는 음식 기행의 기록이 흥미롭다. 발효에 의한 음식의 재탄생을 보며 이러한 음식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보고서가 눈을 의심케 만든다. 건강한 미생물이 함유된 음식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들어보았는가? 장내 유익균이 인간의 대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우울증 발병 여부에 연관된다는 이 믿기지 않는 보고를 읽으며 다시금 매일 우리의 식탁에서 만나는 유익균 덩어리인 김치 한 조각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게 된다. 한편 좀 역겨운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대변이 약으로 쓰인다는 혐오스러운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심한 장 질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했더니 완치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는 보고는 장내 유익균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렇듯 다양한 발효음식에 관한 연구의 흥미로운 과학적 결과와 더불어 저자가 발효 음식을 찾아다니며 만난 음식들의 깨알 레시피를 책의 곳곳에 첨부해놓았다는 점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보너스이다.

코로나라는 몹쓸 바이러스는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유익한 박테리아와 미생물들은 인간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선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고마운 존재들로 전자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책을 덮으며 식탁에서 큰 의미 없이 단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허겁지겁 음식을 떠넘겼던 그간의 무심한 식습관이 떠오른다. 더불어 어린 시절 식탁에 매일같이 올라오던 각종 김치의 향연을 보며 어머니께 반찬투정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그 음식들이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 음식들이었는지를 깨달을수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질 수가 없다. 피자, 치킨, 햄버거와 같은 인스턴트 정크푸드의 홍수 속에서 오늘 저녁만큼은 구수한 된장찌개와 시큼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조각을 밥에 얹어 먹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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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위로부터 오는 능력 세계기독교고전 36
앨버트 심프슨 지음, 김원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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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 다소 긴 시간 동안 유독 성령 세례를 강조하는 은사주의 계열의 교회를 출석했기에 성령에 대해서는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대부분의 성령에 대한 생각과 이해는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친 오해에 기반한 것들이었음을 오랜 세월이 흘러 건강한 개혁주의 신학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성령을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현상과 느껴지는 감정적 요소에 한정 지으며 그러한 경험과 체험의 바탕위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렇듯 성령에 대한 몰이해는 각 세대마다 교회를 병들게 했고, 각종 이단들의 모판이 되었으며 참된 성령에 관한 가르침의 찬물을 끼얹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소위 복음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처럼 성령에 대한 비뚤어진 가르침이 넘쳐나는 세대도 없다.

이러한 성령에 대한 오해가 판을 치는 세대 속에서 19세기 장로교 목사로서 성령에 대한 깊이 있는 가르침을 책으로서 남긴 '앨버트 심프슨'의 본서는 성령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를 찾아보기에 좋은 책이다. 특별히 장로교 목사로서 성결교단의 4중복음에 영향을 끼친 그의 이력이 독특하다. 우선 책의 특징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속에 나타난 성령에 관한 인격과 사역의 의미를 잘 들추어냈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혹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 방법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우려를 가지고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성령에 관한 명확한 메시지를 추출해내는 데 있어서는 성경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치우치는 경향 없이 저자가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구약성경의 모형과 상징 그리고 예언 속에서 나타난 성령과 신약성경의 약속과 계시 속에 드러난 성령에 대한 바른 성경적 가르침들을 신비주의 계열의 위험성을 배제한 채 잘 기술하고 있다.

 

성령에 관한 주옥같은 가르침들이 알알이 꿰어져 매달려 있는 보물창고에 들어간 것과 같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나로 하여금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성령께서는 구별되고 헌신되며 성별된 마음에 임하신다.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영혼으로는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없다. (중략) 거룩함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을 수 없다. p77

기름 부음을 설명하는 제6장에서 발견한 문구다. 많은 신자들은 삶이 왜 이리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을까 고민한다. 남들은 활기차게 자신의 삶의 영역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데 반해 왜 나의 삶은 이리도 무력한 것일까에 대한 상심과 고민을 가진 신자들에게 이 책은 정확하게 정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기름 부음의 문제이고, 기름 부음은 거룩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정신과 영혼 안에는 결코 하나님의 성령이 베푸시는 능력과 기름 부음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은 바로 거룩함과 구별됨이다.

또 한 가지 성경은 성령을 소멸하는 불로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불의 기능 중 하나는 정결치 못한 것들을 태워버리는 역할이다. 사물의 본질까지 완전히 연소시켜버리는 불의 정화 기능은 물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불이 가진 정결케하는 기능과 능력은 강력하다. 그렇기에 저자 앨버트 심프슨은 성령을 이와 같이 불에 비유한다.

찌꺼기를 불사르고 순수한 금속으로 녹게 만드는 불꽃처럼 성령도 우리를 죄악된 옛 본성의 생활에서 분리시키고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본성과 생명을 새겨 넣으신다. p91

괴성을 지르고,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방안 이곳저곳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뛰어다닌다. 거룩한 웃음이라고 칭하며 미친 듯이 웃어대고, 벽을 두드리고 긁어대며 바닥에 기절하듯 쓰러진다. 치아가 금으로 바뀌고, 하늘에서 금가루가 쏟아진다고 아우성을 친다. 심심찮게 보이는 대표적 신비주의, 은사주의 단체에서의 성령 집회 모습이다.

이처럼 성령은 결코 비인격적이신 분이 아니시다. 성령에 관한 위와 같은 잘못된 견해들이 넘쳐나는 세대 속에서 본서를 통해 저자는 철저하게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집필의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구약과 신약성경 속에서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인격적이고 따뜻한 분이신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했다. 성령 하나님은 신자들의 영혼 안에 마음대로 침범해서 마치 폭군과 같이 사람들을 짐승처럼 다루지 않으신다. 성령은 한 신자의 인격 안에 거하시기 위해서 부드럽게 권고하시며 때로는 단호하게 결단을 촉구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당신의 사람들을 향한 지정의의 전인격적 변화를 강권하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균형 잡힌 건강한 이해는 눈에 보이는 현상과 느껴지는 감정으로서 오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신자에게는 날카로운 지성과 차가운 이성, 따뜻한 신앙 감정의 균형을 통해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올바로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은혜의 시대, 성령의 시대라 불리는 요즘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한 번쯤 생각하면서 읽어볼 만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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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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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우리가 배운 과목 중 지구과학이 있다. 지학이라고 줄여서 불렀는데 이 과목 수업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지구의 구조에 관한 내용이다. 우주와 해양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땅 아래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흥미로운 주제다. 땅을 파들어가면 땅속에는 용암이 들끓는 지옥이 있다는 심연에 관한 막연한 공포는 과학이 발달한 지금의 우리에게는 종교적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다. 핵이며 맨틀과 같은 지구 핵심부에 대한 지식들을 배우며 땅 아래에 관한 다수의 호기심은 상당 부분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의 발밑에 있는 공간에 대한 그 알 수 없는 태곳적 신비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상념 속에 아주 매력적인 책 한 권을 만났다. 붉은 기운이 충만한 북 커버가 인상적인 땅속 세상에 관한 보고서 <언더랜드>는 제목 그대로 땅 아래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저자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자연과 경관의 신비에 대한 관심 속에 직접 찾아가서 경험하고 느낀 그대로의 사실과 감정을 지면 위에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가는 자연 작가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땅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지학 수업시간에 배운 객관적 사실을 잠시 밀어놓고 책을 접한다면 땅속 세상에 대한 낯선 풍경이 흥미로움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p16

저자는 책을 통해서 지하라는 공간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사고를 제공한다. 책을 펼치고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키워드는 은신처, 생산지, 처리이다. 언더랜드는 인류에게 있어서 3가지의 키워드로 대변되는 공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은 몸을 땅 아래로 내려보내며 행복했던 기억들을 함께 묻는다. 다양한 광물과 천연자원을 땅 아래로부터 추출하여 지상의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 또한 언더랜드만이 줄 수 있는 혜택이다. 동시에 지상의 사람들이 쓰고 버린 각종 쓰레기와 핵폐기물과 같은 위험천만한 부산물 또한 지상의 사람들은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이렇듯 언더랜드는 망자와 그에 대한 기억들이 묻히는 곳이며 동시에 지상의 사람들에게 쓸 것을 공급하고 다시 그 소비된 쓸 것의 잔재와 죽음의 물질을 회수하는 종말의 기능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언더랜드는 산자와 죽은 자가 보이지 않는 유기적 관계로 엮어져 영원히 타자화할 수 없는 운명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 세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언더랜드의 숨겨진 의미를 밝힌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책의 내용이 우리가 중고교 시절 지학 시간에 배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독자는 잘 다듬어진 교양 과학 에세이 한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별히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 깊게 각인된다. 한 조림지에서 백자작나무 묘목을 솎아내자 함께 자라던 주변의 더글러스전나무 묘목들이 시들해지다가 죽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 생태학자들이 숲 바닥을 벗겨내고 땅 아래를 관찰한 결과 아무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곰팡이가 토양에 퍼뜨린 가늘고 옅은 균사의 난립이었다. 거미줄과 같이 연결된 엄청난 균사들은 나무뿌리에 접점을 갖고 나무 상호 간의 영양물질을 운반해 주는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이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곰팡이들은 광합성 산물의 일부를 빼돌려 자신들의 대사에 사용함으로써 마침내 곰팡이와 나무들 간의 거대한 공생관계를 형성해갔던 것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컴컴하고 어두운 지하 세계에 이러한 역동적인 생명의 활동이 있을 줄이야 지상의 사람들 중 그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이렇듯 언더랜드는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현대를 지나는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있어서 터부시되며 마냥 타자화하고만 싶은 제3의 공간이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금 언더랜드의 가치와 숨겨진 진의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좋은 것은 내어주고 모든 이들이 거부하는 부정적인 것들은 받아들이는 이 한없이 이타적인 공간이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 아래에 있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스토리의 핵심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단지 한편의 잘 쓰인 과학 탐험기라고 보기에는 책이 가진 가치가 아깝고 아쉽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초딩들의 Why? 책을 통해서도 적지 않게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 쌔고 쌨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책의 감흥은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인과 관계로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것들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통해 확인됨으로부터 온다. 언더랜드는 지상의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고, 지상의 존재들 또한 언더랜드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 수 없다. 지상의 사람들은 죽음과 기억을 언더랜드로 가져갔고, 그것을 통해 언더랜드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환전 받았다. 그리고 가지고 올라간 생명 에너지의 네거티브한 부산물들을 다시금 언더랜드로 가져가 반환했다. 돌고도는 순환과 인과관계를 통해 언더랜드와 지상의 존재들이 유무형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법칙이다. 더불어 언더랜드가 지상의 사람들에게 주는 겸손과 겸허함의 교훈을 놓칠 수 없다. 베일에 싸여 있던 절대적 무의 공간이었던 언더랜드가 지상에 값없이 베푸는 시혜는 너무나 크고 광대하다. 자연의 은혜를 망각한 채 끊임없는 개발을 통한 파괴가 미덕이 된 세상 속에서 암흑의 언더랜드가 보여주는 겸손과 겸허의 태도는 지상의 인간들이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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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도를 바꾼 돈의 세계사 - 화폐가 세상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서수지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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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었다. 계약 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와 같이 세입자들을 위한 새로운 부동산법이라고 한다.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찬반 의견이 뜨겁고 이권 당사자들은 서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곤 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특히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정말 '돈'이 가지는 위상과 의미는 남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러한 상념 속에 만난 책은 바로 이 돈에 관한 역사를 다룬 저작이다. 책을 받아들고 저자의 이름이 눈에 익었기에 찾아보니 오래전 읽었던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쓴 '미야자키 마사카츠' 교수였다. 이전 책을 제법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본서 또한 기대감을 가지고서 펼친다.

 

총 크게 6장으로 나뉘어서 초반부에는 돈의 탄생과 문명과의 관계를 통해 인류 문명의 태동과 함께 돈이 어떻게 생겨났고 발전해왔는지를 흥미롭게 기술한다. 이후 대항해 시대를 통해 유럽의 각국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그곳에서 파생되는 각종 자원과 물품들이 어떻게 각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롭다. 한 예로 네덜란드에서 튤립이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다. 튤립은 원래 오스만 제국에서 들여온 이국적인 품종의 꽃이다. 그런데 이 튤립의 알뿌리가 변종을 일으키면서 독특하고 화려한 무늬의 튤립이 양산되기 시작했고, 이것을 엄청난 돈벌이의 기회로 삼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튤립의 변종 품종들을 다량으로 수입했다. 이후 튤립의 엄청난 가격 폭등으로 말미암아 너도나도 튤립을 사들이려는 붐이 일어났다고 하니 일개 밭에서 자라는 꽃송이 하나도 돈이라는 가치로서 높이 평가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또한 우리가 먹는 수많은 음식 속에 빠지지 않고 첨가되는 설탕 또한 엄청난 금액의 경제적 부를 창출시킨 품목이었다는 사실과 그 설탕이 노예무역과 연관되었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브라질과 서인도 제도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행하는 유럽의 농장주들은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전염병으로 선주민의 수가 감소함으로써 노동력을 얻지 못하자 아프리카 노예들을 사들여서 늘어나는 설탕의 수요를 충당했고, 이로 인해 그들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되었다. 설탕이 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그로 인해 노예 무역이 더욱더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은 돈을 통해 인간의 존엄도 손쉽게 폐기될 수 있다는 돈의 어두운 면을 쉽게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나는 경제와 관련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경제 관련 이야기들은 내게는 머나먼 이국의 언어다. 경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경제관념이 이처럼 없다. 그래서 가끔 돈의 기준은 무엇일까? 유아적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들은 바로는 금의 보유량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금이라는 것도 일종의 광물이고 사람이 직접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그렇게 큰 가치가 있을까 하는 매우 무식한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금본위 체제와 국제통화로서의 금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배가 고프다고 당장 금괴를 씹어먹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살 수 있도록 매개체의 역할을 해주는 종잇조각으로서의 돈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금이며 그것은 반드시 희소성이라는 필수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것! 반드시 희소해서 구하기 어려워야 한다. 예를 들어 아무 데나 굴러다니며 쉽게 구할 수 있는 돌맹이를 가지고 가서 음식을 사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제정신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이제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 영향력있는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자신의 수하에 있는 간부급 공무원들 가운데 집이 2채 이상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거주할 집만 빼고 나머지 집들은 모두 매각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단다. 부동산이 투기의 온상이 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부동산뿐 아니라 돈 자체가 투기가 된 오랜 역사를 책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 볼 때 돈이 투자와 투기의 외줄타기를 해 온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더불어 인류 문명이 탄생한 이후 현물을 직접거래하는 시기를 지나서 무엇인가 손쉽게 가볍게 다양한 물건을 거래하기 위한 화폐의 탄생 그리고 그에 얽힌 여러 가지 다양한 비화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당장 지금이라도 생활필수품을 장만하고 밥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누구 하나 이 세계의 경제 구조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에 우리 지갑 속 돈이 지나온 역사를 읽어보는 것도 이번 여름 휴가철을 맞아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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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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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책 한 권이 있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읽어본 적은 없더라도 책 제목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그 책은 바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죽음에 대한 단상을 매우 절제된 언어 속에 녹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이 책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이 낳은 또 다른 소설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을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생을 즐기라고 말한다. 희망 가득한 삶으로의 초대와 메시지가 우리 주변에 지금처럼 널려있었던 적이 또 있었는가? 웰빙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잘 먹고 잘 사는 삶에 관한 식상한 단상들이 넘쳐나는 세대 속에서 죽음은 마치 터부시되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미치 앨봄은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역설이며 어폐지만 저자의 책을 펼쳐드는 순간만큼은 그것이 결코 역설적이지 않으며 마치 아침 햇살을 즐기듯 매우 자연스러운 것임을 느낀다.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어찌 진정한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의 책 전면을 관통하는 숨은 메시지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책에서만큼 죽음은 곧 삶이며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의 본질이다.

주인공 '애니'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여성이다. 8살 때 놀이공원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장애를 입고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다양한 성장 과정 속에서 상처와 시련을 경험한다. 그녀는 늘 자신의 삶이 실수의 연속이며 자기의 실수가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아프게 만들었다는 말할 수 없는 자책감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20대 초 한 번의 결혼 실패와 함께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깊은 상처와 상실감이 그녀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지만 이후 중학교 동창이면서 오랜 시간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남자 '파울로'를 만나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식 다음 날 열기구를 타러 갔다가 열기구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며 죽음의 문턱 가운데 가게 된다. 그녀가 눈을 뜨고 그곳이 천국임을 인지한 후 그녀는 차례로 다섯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일을 겪는다. 그녀는 자신이 죽기 전 세상 속에서 만난 의미 있는 다섯 명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용서해야 할 사람과 사랑해야 할 존재들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이루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웰빙적 의미의 삶만을 강조하다 보니 진짜 삶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놓쳐버리고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았고 이제서야 인생의 참의미를 알았기에 이제는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겨지는 순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발견하고서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책은 바로 이렇게 죽음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라는 실재를 더욱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소설에서만큼 죽음은 터부시될 만한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진정 어린 눈으로 관조하며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그 무엇 이상이다. 자신의 실수와 상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던 일들. 그로 인해 자신 또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자책감의 굴레와 속박 속에 갇혀있어야만 했던 애니의 모습이 보는 내내 마음 한켠을 아리게 만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모자란 인생의 시간 속에서 우리 주변의 진정 사랑하지만 결코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해 자기의 삶이 지닌 그 고귀한 가치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주인공 애니의 모습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는지?

상처받은 존재의 아픔은 상처받은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애니의 삶의 모습과 그녀가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들의 모습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용서는 또 다른 용서를 낳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은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과 연을 맺으며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저자 미치 앨봄은 눈앞에 작은 것을 좇기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애니는 자신의 삶에 대해 "다 괜찮아요!"라고 천국이 들려주는 위로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당당하게 살아내기 위하여 일어난다.

작은 책 한 권이 마음속에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책장을 덮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떠올랐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가장 소홀히 대했던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나와 언약으로 맺어진 이들과의 깊은 사랑을 독려하게 되는 작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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