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미생물 - 우리 몸을 살리는 마이크로바이옴과 발효의 비밀
캐서린 하먼 커리지 지음, 신유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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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의 권유로 한 점 집어 먹었다가 기겁을 했던 무서운(?) 추억의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삭힌 홍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삭힌 홍어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머릿속마저 혼미케 만드는 그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향과 풍미는 먹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나의 미각과 후각에 고통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러나 이 삭힌 홍어는 매우 귀한 음식 중 하나며 건강에 이로운 유익균이 많은 음식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삭힌 홍어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발효라는 독특한 조리법에 있다. <식탁 위의 미생물>이라는 독특한 책의 제목을 보며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발효라는 전통적인 조리법에 의해서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을 배양했다.

저자인 '캐서린 하먼 커리지'는 과학 전문기자로서 음식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설명한다. 미생물 군집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내에 서식하는 미생물 및 유전 정보 전체를 일컫는다. 책은 인간의 장에 서식하는 유익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그 유익균들을 공급하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가 매일 먹는 일상의 음식 속에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너무나 무관심하게 먹고 마셨던 우리의 음식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인간의 장까지 내려가서 서식하며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 끊임없이 좋은 식량을 공급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제품과 채소, 과일, 곡물, 콩류와 씨앗, 육류 등 모든 것이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서 인체 내 마이크로바이옴에 유용한 식량이 되어 줄 수 있다. 불과 20~30여 년 전만 해도 인간의 장내 유산균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풍부했고, 건강했다.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더 불결한 조리법과 조리환경 속에서 음식이 만들어졌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너무나 청결하고 깨끗한 환경과 시설을 갖추고 까다로운 레시피를 통해 음식을 만들지만 인간의 장 건강은 예전만치 못하다. 책장을 넘기며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조금 더럽고 불결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이 오히려 인간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위해서는 득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요리하는 사람의 손에 묻어있는 미생물이 음식 조리 과정 중에 들어가서 더 유익이 된다는 내용을 보며 음식 맛은 손맛이라는 옛 어른들의 경구가 뭔가 허투루 들을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한다.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요거트, 김치, 치즈, 오이피클, 낫토, 맥주, 코코아, 소시지 등 전 세계의 다양한 발효 음식들을 찾아 떠나는 음식 기행의 기록이 흥미롭다. 발효에 의한 음식의 재탄생을 보며 이러한 음식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보고서가 눈을 의심케 만든다. 건강한 미생물이 함유된 음식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들어보았는가? 장내 유익균이 인간의 대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우울증 발병 여부에 연관된다는 이 믿기지 않는 보고를 읽으며 다시금 매일 우리의 식탁에서 만나는 유익균 덩어리인 김치 한 조각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게 된다. 한편 좀 역겨운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대변이 약으로 쓰인다는 혐오스러운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심한 장 질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했더니 완치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는 보고는 장내 유익균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렇듯 다양한 발효음식에 관한 연구의 흥미로운 과학적 결과와 더불어 저자가 발효 음식을 찾아다니며 만난 음식들의 깨알 레시피를 책의 곳곳에 첨부해놓았다는 점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보너스이다.

코로나라는 몹쓸 바이러스는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유익한 박테리아와 미생물들은 인간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선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고마운 존재들로 전자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책을 덮으며 식탁에서 큰 의미 없이 단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허겁지겁 음식을 떠넘겼던 그간의 무심한 식습관이 떠오른다. 더불어 어린 시절 식탁에 매일같이 올라오던 각종 김치의 향연을 보며 어머니께 반찬투정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그 음식들이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 음식들이었는지를 깨달을수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질 수가 없다. 피자, 치킨, 햄버거와 같은 인스턴트 정크푸드의 홍수 속에서 오늘 저녁만큼은 구수한 된장찌개와 시큼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조각을 밥에 얹어 먹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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