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너리 - 평범함으로의 부르심, 21세기 리폼드 시리즈 16 21세기 리폼드 시리즈 16
마이클 호튼 지음, 조계광 옮김 / 지평서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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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TV를 통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입니다. 시청자들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스타가 되기 위해 경쟁을 펼치며 울고 웃는 모든 과정을 지켜봅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노래, 댄스, 요리 등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정신이 '탁월함'과 '드러냄'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의 이름을 세상 속에 드러내어 유명해짐으로써 얻게되는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 박수갈채를 갈망함과 동시에 무명과 평범함을 극도로 혐오하는 문화 현상의 반영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일반적인 사회에만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회 또한 이미 이러한 세상의 문화적 트렌드에 함몰된 지 오래죠. 시대가 변했기에 복음을 담는 도구도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다수 교회들의 소위 엔터테인먼트적 예배 속에서 보여지는 탁월함과 드러냄이라는 키워드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상념 속에 책을 읽는 내내 정말 닭살이 돋는 듯한 전율을 경험한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미국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마이클 호튼' 교수님의 저작 <오디너리 : 평범함으로의 부르심>이 그것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단순합니다. 혁신과 불만족, 평범과 만족! 세상은 차치하고 교회 또한 이제는 평범함을 지루함과 동일어로 여기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획기적이고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찾습니다. 매주 우리를 흔들어놓고 설레게 만들어 줄 새롭고 참신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정신이 신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전통적 예배 안에서 드려지는 설교와 성례는 이제 오랜 고대의 유물과 같이 여겨지곤 하죠.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의 진정한 핵심은 비범한 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 곧 일상에서 발견됨을 말합니다. 변화나 혁신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에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죠.

그러면서 저자는 그동안 신자들이 가진 세상에 의해 왜곡되었던 '탁월함'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합니다. "탁월함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추구하는 덕성이다. 완전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 (중략)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욕망, 곧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태도... (중략) 같은 죄인들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면서 살아간다." 저자가 정의하는 성경적 탁월함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이 여기저기서 한껏 부풀어 오른 내면의 공명심이 우리의 삶을 성경적 평범함에 만족하며 머무르도록 허락하지 않는 세대 속에서 참된 탁월함의 정의가 빛을 발합니다.

또한 책에서 발견한 중요한 내용 하나는 역사적 부흥 운동과 평범함의 관계였습니다. 언약 공동체의 평범한 삶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꾸준히 성장하기보다는 무엇인가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부흥을 갈망했던 운동들은 교회의 평범한 사역, 예를 들면 정기적인 전도, 세례와 성찬, 설교와 고백의 기도, 성도의 교제와 같은 것들을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했죠. 대신 타는듯한 열정과 환호 속에서 출발한 부흥 운동은 다양한 스타 목사와 사역자들을 양산해내게 되었고, 이들을 바라보는 대다수 복음주의 신자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으로서 왜곡된 탁월함과 드러냄을 미친 듯이 갈망토록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집니다.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 스포트 라이트를 갈망하는 신자들, 탁월함이라는 미명하에 무엇인가 획기적이고 참신한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교회는 실용주의가 낳은 기형적 부산물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 같은 영적 거인들은 하나님께서 전통적인 설교와 성례라는 지역 교회가 가진 '평범한 은혜의 수단'에 복을 베푸시는 것을 참된 부흥으로 이해했습니다. 더 이상의 새로운 사도와 계시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폭발적이고 열광적인 예배와 교회 내 넘쳐나는 프로그램이 우리를 참된 신자의 삶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오직 계시된 말씀인 성경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무명의 평범한 목회자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설교와 성례라는 평범한 은혜의 수단만이 우리를 성경적이고 바른 신자의 삶으로 이끌 수 있을 뿐이죠.

우리 시대와 문화는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마저도 어벤져스와 같은 영웅을 갈망하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발견하는 점은 참된 신자의 삶이 이와 같지 않다는 것이죠. 오늘도 이른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출근했습니까? 여전히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며 가족을 위해 빨래와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셨나요? 혹은 집안을 청소한 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간식을 챙겨주며 이웃집 혼자 사는 할머니의 필요를 돌보셨습니까? 당신이 만일 오늘도 세상이 말하는 탁월함, 획기적이지도 않고 흥분되지도 않으며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칭찬, 인정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일상이라는 삶의 부르심 속에서 말씀과 성례를 통해 주어지는 평범한 은혜의 수단들에 감사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내었다면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어벤져스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세상의 수많은 무명의 영웅들이 가진 삶의 가치를 존중하며 바른 신자의 성경적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30년간 톳밥과 먼지 속에서 대패와 망치를 손에 쥔 채 무명 목수의 일상을 살아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워가기 원하는 이 땅의 모든 평범한 신자들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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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의 찬송의 제사 - 신앙고백과 성례에 대한 묵상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를 위한 신학 2
헤르만 바빙크 지음, 박재은 옮김 / 다함(도서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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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간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이제는 제법 시간이 흘러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아득한 기억의 창고 속에서 소환해야만 하는 일이 서글프지만 생각해 보면 화려하고 값비싼 선물, 함께 먹는 맛있는 음식, 함께 찾아가는 멋진 장소도 아닌 것 같습니다. 돌이켜볼 때 사랑하는 연인간의 관계 속에서 빼놓을 수없이 중요한 모습은 바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한다는 진실된 '고백'이 아닐까요? 그런데 얼마 전 이 고백이 연인간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을 신앙하는 기독교 신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핵심임을 알려주는 책 한 권을 만났는데 화란 개혁주의 신학자요 목회자로서 너무나 저명한 '헤르만 바빙크'의 <찬송의 제사>가 그것입니다.

헤르만 바빙크를 떠올릴 때 개신교, 특별히 개혁주의 신학에 동의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비범한 인물이며 그가 펼친 신학 사상의 방대함과 깊이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의 신학 사상이 매우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철학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쉽사리 접근하는 것이 어렵고 이해에 있어서도 난해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읽었던 <믿음의 확신>을 보며 바빙크의 목양적 관점에서 쓰여진 따뜻한 온기를 이 책 <찬송의 제사>를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결코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손쉽게 책을 펼쳐들고 깊은 감사와 감격 속에서 바빙크가 말하는 '찬송의 제사'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빙크는 본서 속에 성례와 신앙고백에 대한 묵상을 담았습니다. 개신교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죠. 그것은 죄악 속에 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결코 변치 않고 변개치 않으시는 '은혜 언약'의 토대 위에서 신자가 자신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신자는 자신의 인생과 삶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삶의 질서를 오직 그분 안에서 재정렬 합니다. 특별히 본서는 그 신앙고백이 개신교 성례라는 특별한 은혜의 방편 안에서 이루어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책의 부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성례와 신앙고백에 대한 묵상, 세례, 입교, 유아세례, 초신자와 같은 믿음의 첫 발을 떼는 이들에게 있어서 기본임과 동시에 핵심을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7페이지의 다소 짧은 내용 속에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신앙고백의 근거와 기초, 본질, 내용 등을 균형 있게 담았습니다. 바빙크의 방대한 지적 능력으로 봤을 때 신앙고백과 그에 따른 교리를 이렇게 작은 책 속에 압축시켜 집필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저작이죠. 독자는 먼저 신앙고백을 이해하기 앞서 개신교 신앙고백의 근거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신앙고백의 근거가 바로 '은혜 언약'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영원한 죽음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기초한 일방통행적 개념의 언약 그 자체가 은혜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 감동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이 은혜 언약은 바로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양자가 되었다는 가시적 표지와 보증으로 드러나며 이것이 바로 신앙고백의 근거요 기초가 되는 것이죠.

책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빙크가 신자 된 어린 자녀들에게 또한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입니다. 책은 분명히 신자의 가정 안에 있는 어린 자녀들 또한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고백하는 과정 속에 있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신앙고백의 규칙을 이야기하는 챕터에서 바빙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반드시 가르침과 훈련을 동시에 포함해야 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신과 마음에 동시에 역사하도록 해야 하며, 지성과 행동 모두에 함께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가르침은 반드시 진리의 교리에 따라 주의 깊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진리에 대한 선명한 묘사 없이 감정과 정서만을 고양해서도 안되며 진리에 대한 묘사와 정확한 개념만을 이야기해서도 안된다는 것이죠. 정신과 의지와 앎과 행함, 정서와 감정의 깨우침이 균형을 잡고 함께 가야만 함을 강조하는 내용 속에서 <신앙 감정론>을 통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련한 향기가 느껴집니다. 즉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바른 신앙고백의 규칙은 정확한 진리의 교리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앎과 그것이 실제 삶의 지평 속에 풀어져야만 하는 과제를 모두 포함합니다.

서두에서 연인간의 진실된 고백이 중요함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거짓 없는 마음과 참된 사랑을 확증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요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신앙하는 믿음은 바르고 참된 신앙고백을 통해서 외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우리 입술의 고백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 받게 만드는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참된 것임을 확증해 줍니다.

세례와 입교 등 믿음의 첫 행보를 내딛는 이들에게 있어 본서의 내용은 실로 엑기스만을 뽑아냈다 보아도 과언이 아니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발견하는 사실은 바빙크가 가르치는 책의 내용이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새내기 신자들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들고 읽어야 할 필요성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처음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세례와 성찬으로 그분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고백을 확증했던 그때의 감격적인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가 남긴 짤막한 책 한 권의 마지막 뚜껑을 덮으며 나의 냉랭해진 마음의 심지에 다시금 불을 댕겨봅니다. 바빙크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일시적이고 단회적으로 그쳐서는 안됨을 역설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순결한 사랑과 그분이 사랑했던 이웃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은 매일의 삶 속에서 고백돼야만 하고 이어져야 합니다. 정확하고 바른 교리적 말씀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바른 신자의 전인을 통한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제사'가 되어 이 땅에서 우리의 마지막 호흡이 멈추고 우리의 영혼이 영원에 잇대는 그 순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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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습관 수업 - 의지가 약해도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습관 만들기
요시이 마사시 지음, 장은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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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차범근 이후 최고의 축구 선수로 평가받으며 월드클래스 호평을 듣는 영국 프로 축구 프리미어 리거 손흥민 선수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의 손흥민 선수가 있기까지는 숨은 조력자로서 그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있었다. 손웅정 씨는 손흥민 선수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공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는 이른바 볼 리프팅 훈련을 매일 2시간씩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6년간 습관화 시켰다. 또래 친구들이 드리블이며 슛과 같은 흥미로운 기술들을 배울 때 손흥민 선수는 지루함을 견디며 볼 컨트롤이라는 기본기를 몸에 완벽히 체득화 한 것이다. 현재 손흥민 선수가 무서운 이유는 어느 발로 슛을 때릴지 모르기에 상대팀의 수비수들과 골키퍼가 가장 난감해하는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선수이기에 그렇다는 점이다. 북 리뷰에 웬 축구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겠지만 다름 아닌 '습관'의 중요성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습관의 중요성과 습관의 위력은 이렇듯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드는데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일본인 습관형성 컨설턴트 '요시이 마사시' 또한 습관의 중요성을 알고 <하루 5분 습관 수업>이라는 책을 썼다. 다소 과장적일 수 있지만 그는 1장 처음부터 모든 것은 습관으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습관이 만들어 낸 결과물? 맞는 말일까? 저자는 능력의 차이는 없고 오직 습관의 차이만이 있음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은 흔히 공부머리라고 말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우수 유전자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공부를 잘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거창한 것보다는 작은 습관부터 만들어보라고 권면한다. 예를 들어 하루에 휴지 3개 줍기, 신발을 벗고 나서 가지런히 정리하기, 일기 쓰기, 지인들에게 엽서 쓰기, 내가 먼저 인사하기 등과 같은 사소한 습관을 가져보라고 격려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루에 휴지 3개 줍기, 신발 벗고 정리하기와 같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을 습관화시켜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 의아해할 수 있다. 사실 휴지 3개를 줍고, 신발을 정리하는 일들 자체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남들이 생각하는 사소한 습관을 통해서 형성되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고 하찮게만 여기는 일들이라도 그것을 습관화시키면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며 내면의 방향추 또한 질서정연하게 정렬된다. 바른 내면의 변화는 바른 습관 형성에서 시작되고 그것은 삶이라는 실제에 반영된다.

책은 습관의 영향력, 정체, 습관 형성의 포인트, 뇌의 힘, 테마별 습관 형성 법과 같은 실제적인 내용들이 가득하며 책 자체가 무겁지 않고 매우 라이트 하기에 시간만 되면 하루에도 완독할 수 있다. 습관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내용은 명확한 목적의 중요성이다. 저자는 명확한 목적은 습관을 지속하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됨을 강조한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세우는 국민 목표가 있다. 영어회화 공부, 운동과 다이어트, 독서, 자격증 공부가 그것이다. 그러나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목표를 오르지 못할 목표로 여기며 포기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습관을 들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는 바로 명확한 목적의 부재다. 목표 자체가 사람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동인이 될 수 없다. 명확한 목적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목표로 이끄는 힘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목적은 좋은 습관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또다시 좋은 습관은 목적을 달성하도록 목표를 체근한다. 즉 목적과 목표와 습관은 서로를 격려하고 견인하는 상호 동력이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 매우 영감 있게 읽었던 책 중에 역시 일본인 저자가 쓴 베스트셀러 <아침형 인간>이 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습관은 3주 즉, 21일을 꾸준히 습관 들여야지만 그것이 온전히 체화되어 나의 진짜 습관이 될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렇듯 좋은 습관 들이기는 시간적 꾸준함과 지속성, 끈기를 요구하는 다소 지난한 작업이다. 그러나 분명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고통과 대가 지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시간이 온다. 간혹 우리는 주변에서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지켜보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삶의 결이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그만이 가진 좋은 습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또한 지루한 습관의 시간을 거쳐 지금의 좋은 습관의 열매를 거둔 것이 아닐까?

책에서는 네거티브한 행동들을 끊기 위한 다소 생소하게 여겨지는 습관법도 소개한다. 예를 들어 다이어터들은 케이크를 보며 지방 덩어리라고 명명함으로써 우리의 뇌에 케익크를 해로운 음식으로 각인시키거나 게임을 하는 행위는 시간 낭비라고 명명함으로써 게임은 인생을 낭비하는 쓸데없는 일이라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나 또한 연초 국민 목표 중 하나로서 다이어트를 습관들이며 실천하고 있다. 주 3회 운동과 폭식, 간식 금지, 식사량 조절이라는 세부 목표를 세우고, 체중 앞 자릿수 바꾸기 계획에 돌입했고, 한 달이 지나는 시점에서 제법 효과를 보고 있다. 초딩 입맛이기에 평소 과자를 좋아하는데 책을 읽으며 발견한 습관법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게 된다. 과자를 보며 지방 덩어리라고 명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체중 앞 자릿수 바꾸기라는 다이어트의 단순한 목표만이 아니라 나의 건강이 가족의 건강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설정한다. 자신의 의지가 약하고 실천력이 결여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매우 단순한 습관을 위해 하루 5분만 투자해보라! 영어 단어를 하루에 2개만 외우는 것도 좋다! 윗몸 일으키기를 하루에 3개만 해도 좋다. 심지어 책을 그냥 1장만 읽어도 좋다! 시작이 중요하며 꾸준함이 좋은 습관을 만들고 좋은 습관이 독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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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 국내최초 초판 무삭제 완역본 데일 카네기 초판 완역본 시리즈
데일 카네기 지음, 임상훈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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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TV 광고 중에 선비 한 명이 등장해서 "100년도 못 살면서 1000년의 근심으로 살아가는 중생들아!"라고 외치며 껄껄 웃는 장면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당시 제품은 기억나지 않으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CF의 광고 문구는 퍽 인상 깊었다. 인생을 살아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고 100세 시대라고 외치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인간이 100세의 수명을 누리는 것이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데 우리는 광고 카피와 같이 100년도 못 살고 가는 인생 속에서 마치 1000년의 근심을 떠안고 살아가는 것만 같다. 매일 걱정과 근심이 집채 만한 파도와 같이 우리를 집어삼키려 몰려온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걱정과 근심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힌 채 이리저리 휩쓸리며 떠밀리듯 살아간다.

<인간관계론>이라는 자기계발 분야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고전을 집필한 '데일 카네기'의 또 다른 명작 <자기관리론>은 바로 이와 같이 걱정과 근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인에 대항하여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한 처방전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오직 하나! 바로 '걱정'이다. 책을 펼치면 걱정은 무엇이며 걱정이 삶에 미치는 영향과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 걱정 대신 평화와 행복을 부르는 삶의 자세, 걱정을 부르는 잘못된 습관 고치기 등과 같은 매우 실제적인 걱정 해결 솔루션이 가득하다. 매 챕터가 각계각층 유명 인사들과 평범한 소시민들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구성되었기에 매우 흥미롭고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다. 20세기 초중반의 시대적 배경을 가진 책이 들려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걱정과 그 해결법을 듣고 있노라면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100년 전 사람들이나 2021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내용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어차피 먹고사는 문제로 귀결되는 사업과 직장, 돈 문제 그리고 건강과 인간관계, 가정 문제 등과 같은 걱정이지 지구는 누가 지켜야 하는가와 같은 범세계적인 글로벌한 고민과 걱정은 아니다.

저자는 이렇듯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과 걱정의 문제를 파악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자기관리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책을 써 내려갔다.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핵심은 바로 "내일을 맞이하는 최선의 방법이 지성과 열정을 집중해 오늘 해야 할 일을 잘하는 데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걱정의 민낯을 직면하는 것이다. 회피는 능사가 아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1단계이고, 어쩔 수 없다면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2단계이다. 그리고 이미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은 최악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3단계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걱정과 고민하는 문제를 직시해본 적이 드물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번 삶의 문제와 근심이라는 부비트랩에 걸려 허우적대는 것이 아닐까?

또한 개인적으로 책에서 발견한 귀중한 인사이트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평화와 행복을 부르는 삶의 7가지 자세다. 우리는 삶의 평화와 행복이 깨질 때 걱정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재물과 같은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통해서도 수없이 다가온다. 특별히 깊이 와닿았던 점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 쓰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누군가에게 베푼 감사의 행위에 대해 보답을 기대하지 말고 그냥 순수하게 주는 기쁨을 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감사는 교양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자기 수행의 결실이다. 교양 없는 사람들에게는 감사를 기대할 수 없다." 즉 본성상 인간은 어차피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이기에 감사를 되돌려 받기 위해서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은 본인에게 또 다른 근심과 걱정을 가져다줄 뿐이다. 그러므로 감사를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단지 주는 것에 기쁨을 누릴 때 우리네 삶은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는 인간 내면을 관통하는 매우 깊은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1년이 넘게 코로나19 팬데믹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에 4~500여 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 속에서 이제는 그러한 통계들이 하나의 숫자로밖에 다가오지 않는 상황적 무감각과 불감증에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 부지불식간에 다가오는 코로나19가 주는 공포감으로 인해 고민과 걱정 속에 함몰되기도 한다. 저자는 말한다. 일어나지 않을 일들, 즉 내가 통제할 수도 없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 조바심치며 걱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비극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면서 걱정하는 일들의 99%가 정말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라고 한다. 중병에 걸리면, 회사에서 실직하면, 사업이 부도나면, 나의 결혼 관계가 끝나버리면 과 같은 일상적인 걱정부터 길을 가다가 벼락을 맞지는 않을까 와 같은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실현 불가의 고민까지 모든 근심과 걱정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 속의 고민과 걱정은 지금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쓸데없는 걱정이 대부분이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100년도 못 사는 인생이 우리다.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100년 아니 앞으로 길게 잡아 50년만 지나도 아마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될 모든 이들이 대부분 100년도 못되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한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우리가 살아갈 남은 인생을 살펴볼 때 지금 우리가 한가득 끌어안고 살아가는 고민들은 너무나 하찮게만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성화에 통장의 잔고를 살펴야 하고,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는 자녀의 고민을 끌어안아야 하며 부모님의 수술비와 입원비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듯 지금의 순간 속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의 걱정과 고민이 결코 녹록지 않기에 <자기관리론>과 같은 책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마치 경험 많고 노련한 상담사와의 일대일 고민 상담을 통해 받는 걱정과 근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면 단연코 이 책은 추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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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
알리스터 맥그래스 엮음, 오현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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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타인을 비하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 중에 "저 사람 진짜 개념 없네!"라는 말이 있다. 개념이라는 어휘의 사전적 의미는 차치하고 이 뜻은 보통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상식이 없다"와 같은 숨은 의미를 내포한다. 이처럼 인간관계 안에서도 상식, 기본에 대한 강조는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상식, 기본은 인간 사회 모든 유무형의 학문과 기술, 지식 체계 속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전 둘째 아이가 젖을 떼고 첫 이유식을 하는 옛 동영상을 보며 즐거워한 적이 있다. 묽은 미음과 같은 이유식을 받아먹던 아기가 어느새 이제는 껌을 씹어대고 있으니 내게는 신기할 따름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지성적 성찰의 작업 또한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 묽은 이유식을 먹는 것 같이 자신의 지적 깜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기본적인 개념을 쌓아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 못하다면 아마 그는 지적 작업에 있어 계속 이유식만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지금껏 무엇을 믿는지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교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소위 기독교에 대해 진짜 '개념 없는'독자들에게 그 개념 탑재를 위한 안내서라고 볼 수 있다.

책의 편집주간을 맡은 영국의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석학이다. 그와 함께 5인의 탁월한 신학자들이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한 파트씩 나눠서 주제별로 기술했다. 저자들은 83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본서에서 계시론, 신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정수를 담아내는 방대한 지적 작업을 완성했다.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첫 장부터 기독교의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이한 마지막 보너스 챕터의 기독교 용어 사전까지 저자들의 애씀과 친절함이 곳곳에 묻어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위에서도 소개했지만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부재한 신자들을 포함해서 기독교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알고 싶어 하는 구도자들을 독자층으로 타깃했다. 그렇기에 책은 저자들이 부모의 심정으로 조직신학의 중요한 내용들을 매우 간결하고 쉽게 설명함으로써 마치 어린 아기에게 이유식을 떠먹여주는 느낌으로 가득하다.

기독교를 말할 때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바로 '믿음'이다. 신자들 중에는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자부하지만 본인이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깊은 숙고함 없이 기계적으로 교회당의 빈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믿음을 이야기하는 챕터에서 저자 '존 스택하우스' 교수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신교 개혁자들의 특징적 열정은 믿음이 절대 지적 관심과 분리되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것은 기독교는 믿음을 순전히 지적 확신이나 관념의 영역 안으로 국한시키지 않음을 강조한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지성이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생각 없이 믿음을 고백하고 동의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참 모습임을 지적한다. 무턱대고 믿으며 "밑~씁니다~"라는 쌍시옷 발음의 고백을 연호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던 내용이다.

또한 책이 가진 장점이자 특징은 각 챕터마다 Key Note라는 트랙이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하나의 주제를 마치면서 연관된 핵심적 토픽을 선정하여 독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있는데 이게 또 읽다 보면 은근 깨알 재미가 있다. 믿음에 관한 챕터를 마치면서 포스트 모더니티, 이슬람교에 대한 개념을 서술함으로써 기독교 믿음과의 연관성과 차이점에 답한다. 하나님에 관한 신론을 다루는 챕터에서는 하나님은 어떻게 자연을 통해 알려지실 수 있는가? 창조와 진화와 같은 내용들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꼽는 이 책의 백미는 신론과 기독론이다. 특별히 삼위일체 교리를 통한 삼위 하나님의 위격과 본질을 설명하는 2장은 그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다루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신자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설명을 그래도 가능하면 쉽게 이유식화하여 먹여주려고 노력한 저자의 애씀이 곳곳에 묻어난다. 또한 신학적 교리를 다루는 저작이지만 다양한 교파를 아우르려는 노력은 저자들이 자신의 신학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극도로 절제된 필치를 사용하고 있음에서 느껴진다. 최대한 사견을 배제하고 극히 중립적인 시각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만을 펼치고 생각과 선택은 독자에게 던져준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독자층의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을 수 있는 가능성은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다.

기독론을 통해서 신약 성경 복음서들이 증거하는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 또한 범인들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신(神)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죄악 가운데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죽은 지 3일 후 부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주왕복선이 은하계를 탐사하는 고도 과학문명이 발달한 이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기독교의 신앙과 믿음의 개념들은 그야말로 가장 미개하고 천박하며 무식함의 극치를 달리는 형편없는 지식 체계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이 동화와 같은 이야기들을 역사적 팩트로 믿고 살아가고 있으며 아마 죽을 때까지도 믿게 될 것이다.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른 입에 밥 한 숟가락 내 마음대로 떠넘기기 힘든 바닥을 치는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알기에 그렇다. 인생의 정점을 향해 상승곡선을 그리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신비가 책에서 말하는 인카네이션이며 그 사실을 신앙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존 스택하우스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격적 신뢰는 인지적 결정에 달려 있다. 사람은 자기 믿음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식이 축적되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 지식과 분리되지 않는 믿음, 그러나 지성만이 아니라 언제나 전인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신자의 온전한 믿음이다.

책을 덮으며 오랜만에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복기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믿는 신앙의 기본 개념을 정리해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작업인 것 같다. 무엇을 믿고 왜 믿으며 믿었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간결한 조언이 가득하기에 기독교의 핵심을 짧은 시간 안에 접하기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한다." 블레즈 파스칼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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