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 그 개념의 역사
알리스터 맥그래스 엮음, 오현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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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타인을 비하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 중에 "저 사람 진짜 개념 없네!"라는 말이 있다. 개념이라는 어휘의 사전적 의미는 차치하고 이 뜻은 보통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상식이 없다"와 같은 숨은 의미를 내포한다. 이처럼 인간관계 안에서도 상식, 기본에 대한 강조는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상식, 기본은 인간 사회 모든 유무형의 학문과 기술, 지식 체계 속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전 둘째 아이가 젖을 떼고 첫 이유식을 하는 옛 동영상을 보며 즐거워한 적이 있다. 묽은 미음과 같은 이유식을 받아먹던 아기가 어느새 이제는 껌을 씹어대고 있으니 내게는 신기할 따름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지성적 성찰의 작업 또한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 묽은 이유식을 먹는 것 같이 자신의 지적 깜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기본적인 개념을 쌓아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 못하다면 아마 그는 지적 작업에 있어 계속 이유식만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지금껏 무엇을 믿는지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교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소위 기독교에 대해 진짜 '개념 없는'독자들에게 그 개념 탑재를 위한 안내서라고 볼 수 있다.

책의 편집주간을 맡은 영국의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석학이다. 그와 함께 5인의 탁월한 신학자들이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한 파트씩 나눠서 주제별로 기술했다. 저자들은 83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본서에서 계시론, 신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정수를 담아내는 방대한 지적 작업을 완성했다.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첫 장부터 기독교의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이한 마지막 보너스 챕터의 기독교 용어 사전까지 저자들의 애씀과 친절함이 곳곳에 묻어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위에서도 소개했지만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부재한 신자들을 포함해서 기독교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알고 싶어 하는 구도자들을 독자층으로 타깃했다. 그렇기에 책은 저자들이 부모의 심정으로 조직신학의 중요한 내용들을 매우 간결하고 쉽게 설명함으로써 마치 어린 아기에게 이유식을 떠먹여주는 느낌으로 가득하다.

기독교를 말할 때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바로 '믿음'이다. 신자들 중에는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자부하지만 본인이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깊은 숙고함 없이 기계적으로 교회당의 빈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믿음을 이야기하는 챕터에서 저자 '존 스택하우스' 교수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신교 개혁자들의 특징적 열정은 믿음이 절대 지적 관심과 분리되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것은 기독교는 믿음을 순전히 지적 확신이나 관념의 영역 안으로 국한시키지 않음을 강조한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지성이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생각 없이 믿음을 고백하고 동의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참 모습임을 지적한다. 무턱대고 믿으며 "밑~씁니다~"라는 쌍시옷 발음의 고백을 연호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던 내용이다.

또한 책이 가진 장점이자 특징은 각 챕터마다 Key Note라는 트랙이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하나의 주제를 마치면서 연관된 핵심적 토픽을 선정하여 독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있는데 이게 또 읽다 보면 은근 깨알 재미가 있다. 믿음에 관한 챕터를 마치면서 포스트 모더니티, 이슬람교에 대한 개념을 서술함으로써 기독교 믿음과의 연관성과 차이점에 답한다. 하나님에 관한 신론을 다루는 챕터에서는 하나님은 어떻게 자연을 통해 알려지실 수 있는가? 창조와 진화와 같은 내용들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꼽는 이 책의 백미는 신론과 기독론이다. 특별히 삼위일체 교리를 통한 삼위 하나님의 위격과 본질을 설명하는 2장은 그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다루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신자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설명을 그래도 가능하면 쉽게 이유식화하여 먹여주려고 노력한 저자의 애씀이 곳곳에 묻어난다. 또한 신학적 교리를 다루는 저작이지만 다양한 교파를 아우르려는 노력은 저자들이 자신의 신학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극도로 절제된 필치를 사용하고 있음에서 느껴진다. 최대한 사견을 배제하고 극히 중립적인 시각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만을 펼치고 생각과 선택은 독자에게 던져준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독자층의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을 수 있는 가능성은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다.

기독론을 통해서 신약 성경 복음서들이 증거하는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 또한 범인들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신(神)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죄악 가운데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죽은 지 3일 후 부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주왕복선이 은하계를 탐사하는 고도 과학문명이 발달한 이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기독교의 신앙과 믿음의 개념들은 그야말로 가장 미개하고 천박하며 무식함의 극치를 달리는 형편없는 지식 체계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이 동화와 같은 이야기들을 역사적 팩트로 믿고 살아가고 있으며 아마 죽을 때까지도 믿게 될 것이다.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른 입에 밥 한 숟가락 내 마음대로 떠넘기기 힘든 바닥을 치는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알기에 그렇다. 인생의 정점을 향해 상승곡선을 그리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신비가 책에서 말하는 인카네이션이며 그 사실을 신앙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존 스택하우스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격적 신뢰는 인지적 결정에 달려 있다. 사람은 자기 믿음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식이 축적되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 지식과 분리되지 않는 믿음, 그러나 지성만이 아니라 언제나 전인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신자의 온전한 믿음이다.

책을 덮으며 오랜만에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복기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믿는 신앙의 기본 개념을 정리해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작업인 것 같다. 무엇을 믿고 왜 믿으며 믿었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간결한 조언이 가득하기에 기독교의 핵심을 짧은 시간 안에 접하기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한다." 블레즈 파스칼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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