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실용음악 화성학 - 입문자도 입시생도 독학하기 쉬운 음악이론 실용음악 화성학
이화균 지음 / 해피엠뮤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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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6년과 중고교 6년의 과정을 통해서 음악을 배웠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는 12년의 시간 동안 음악 수업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필수과목으로서 음악을 배웠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졸업 후에는 악보도 제대로 못 보는 까막눈이라는 희한한 사실이다. 이후 나는 유행가 악보집을 펼쳐놓고, 어쿠스틱 기타를 어설프게 독학한 후 드럼과 퍼커션이라는 타악기의 매력에 빠져 개인 레슨을 받을 정도로 한동안 심취했다. 드럼과 퍼커션은 타악기이기에 소위 말하는 콩나무 대가리를 볼 필요가 없다는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에 선택한 악기였다. 사실 다른 멜로디 악기들과는 달리 리듬악기는 설령 악보를 못 본다고 해도 아주 큰 문제가 되지는 않다.(물론 마림바나 비브라폰 같은 건반 타악기는 예외이다) 그러나 음악을 좀 더 깊이 있게 전문적으로 배우기로 마음먹게 되는 순간 사정은 달라진다. 기본적인 음악의 이론은 물론이거니와 대략적인 화성학의 내용들을 알고 연주하는 타악기 연주자들과 까막눈 타악기 연주자의 미묘한 차이는 음악의 분위기와 뉘앙스를 이해하고 곡을 해석하는 능력에 있어서 분명 구분되더라는 것이다.

학창 시절의 음악 수업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얼마 전 좀 더 자세하면서도 쉬운 실용음악 화성학에 대한 갈급함을 채워 줄 책 한 권이 손에 들어왔다. 입문자와 입시생 모두가 독학하기 쉬운 음악이론에 관한 교재로서 화성학 선생님을 찾아가서 적지 않은 레슨비를 지불하며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교재의 출간 소식이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책을 펼치고 보면 알 수 있듯이 내용이 매우 알차다. 음악의 3요소인 멜로디, 화성, 리듬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해 준다. 그리고 학창 시절 배운 오선, 음자리표와 각종 악상기호 등에 대한 내용을 보고 있자니 어렴풋이 음악 선생님께 배웠던 내용들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책의 장점은 각 단원에서 주요한 학습내용을 설명한 후 핵심정리를 통해 배운 개념을 요약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연습문제를 통해서 학습자가 내용을 얼마큼 잘 이해했는지를 셀프체크할 수 있도록 배치해놓았다. 그리고 학습자가 음악이론을 공부하며 궁금해할 수 있는 내용들을 <CHECK>항목을 따로 마련하여 친절하게 설명하고 풀이해놓은 점도 이 책이 가진 특징 중 하나다.

사실 서점에 가면 이미 실용음악 화성학 책들은 적지 않게 출간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다수의 실용음악 화성학 교재가 어느 정도 음악 이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필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아주 기초적인 내용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 깔고 들어가기에 완전 초보 입문자들에게는 적합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치고 내용을 훑어보면서 제일 피부에 와닿았던 점이 바로 저자가 그야말로 높은 음자리표와 낮은 음자리표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우 친절하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유아에게 이유식을 떠먹여주듯 쉬우면서도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나는 드럼과 퍼커션을 조금 배웠기에 기초적인 악전과 음표, 쉼표, 마디의 구성과 같은 내용들은 어렵지 않게 이해했는데 역시나 타악기를 배운 사람의 한계는 음정과 화음, 조성과 같은 내용이 시작되면서 진도가 쉽게 나아가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내게는 음계, 다이아토닉 코드, 텐션과 같이 조금 어려운 단원까지는 현재 상태로서 봐서는 사실 무리다.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틈날 때마다 조금씩 공부하고 익혀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독학으로 이해가 어려운 단원들까지도 마스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록으로 음향학에 대한 내용을 함께 실어줘서 소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내용들은 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말 그대로 부록이며 선물이다. 음악 이론을 공부하며 항상 느끼는 것이 음악이 마치 수학과 같다는 나만의 생각이다. 정해진 음악적 규칙과 법칙 사이에서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 마치 정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음악은 그 안에 나름의 생명력 있는 흐름을 갖고 있고 또한 기승전결의 문학적 구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수학보다는 더 다이내믹하고 매력적인 분야가 아닐까?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 기분 전환을 위해 틀어놓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답답하고 우울한 일상의 기분을 날려 줄 신나는 음악 한 곡을 아무렇게나 흥얼거린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하랴! 신나게 드럼 스틱을 휘두르며 북을 두드리고 나만의 리듬을 새긴다 한들 그것 또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학문이라기보다는 예술에 더 가깝다고 말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을 공부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우리 주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야 내가 연주하고 감상하는 음악이 한층 더 신나고, 정감있게 다가올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음악적 욕구를 만족시켜주기에 최상의 교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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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인생론 메이트북스 클래식 1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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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의 기세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면서 온 세계가 전염병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병상에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 또한 수없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그동안 온 인류가 쌓아놓은 찬란한 문명과 과학기술의 금자탑을 비웃기라 하듯 단 몇 개월 사이에 우리네 일상을 코로나 전과 후의 삶으로 갈라놓아버렸다. 너무나 당연시하게 여겼던 사람들과의 만남과 시간들이 마치 오래전 일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 일상성의 회복은 정녕 요원하기만 한 것일까? 이러한 단상 속에서 집어 든 책은 삶의 측면을 쓰다듬으며 놓치고 지나쳤던 인생의 의미를 보듬는 저작으로서 그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다.

숨 가쁘게 달려가며 나와 가족, 주변의 이웃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삶의 박차를 가했던 시간 속에서 요즘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혜택(?)은 기나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한 템포 호흡을 가다듬도록 만드는 여유인 것 같다. 인생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왜 살아가고 무엇 때문에 살아가며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가와 같은 인생의 궁극적 물음은 낯설기만 하다. 그렇기에 톨스토이의 인생론과 같은 책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와 같은 우리네 삶에 있어서 한 번쯤은 잠시 정차하여 숨을 고르도록 하기에 안성맞춤인 저작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아는가? 레프 톨스토이가 한때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목을 매달 것인가, 권총을 사용할 것인가와 같은 자살의 방법을 고민했던 사람이 바로 온 인류의 지적 토양에 한줄기 단비를 뿌린 위대한 성학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톨스토이 스스로가 임종 전 선택한 책은 위대한 저작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책이 아니라 바로 이 책 인생론이다.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끼며 임종 전 자신의 딸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는 책 인생론은 그가 앞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모든 인류에게 남긴 숙성된 삶의 열매와 같다. 총 140개의 매우 짧은 격언을 한 권으로 묶은 인생론이 함의하고 있는 삶의 지혜와 통찰은 매우 현실적이다. 위대한 문인이자 사상가가 온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치고는 학구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기에 난해하지도 않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수많은 정신적 스승들이 남긴 다양한 격언과 경구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들도 있고, 톨스토이 그만의 언어로 좀 더 미세하게 세공하여 정리한 교훈들도 있다. 또한 톨스토이 스스로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라는 교실 속에서 직접 체득한 인생의 다양한 경험과 격언을 아낌없이 설파하기도 한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재물에 달려 있지 않다.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현명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 집이라고 느낀다. 전 세계가 고귀한 영혼의 집인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은 기뻐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울도록 삶을 살아야 한다."

너무나 짧고 간결한 한두 문장의 격언이지만 천천히 곱씹을수록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마음과 영혼에 미치는 그 깊은 울림과 향기가 남다르다. 마치 우리면 우릴수록 진득하고 구수한 진액이 우러나오는 사골 곰탕의 그것과 같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물가에 이는 잔잔한 물결의 파동과 같이 그 심연을 잡아 흔드는 고요한 정동이 책을 읽는 이의 마음에 부드럽게 밀려들어온다. 바로 이러한 것이 여느 자기 계발서와 같은 캐주얼한 도서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위대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멘토 목사님께서 청년 시절 무신론자의 삶을 살아가던 중 본서를 통해 인생과 신앙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회심토록 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 책 중 한 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필독 도서 리스트에 올려놓았던 책을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금언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법한 인류 역사에 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성학들의 격언들이 마음 한편을 후벼판다. 본서를 통해 저자는 기나긴 항해로 비유되는 인생의 뱃길 가운데 만나는 높은 파도, 광풍과 같은 고난의 시간 속에서 깊은 깨달음과 힘을 얻고 달려갈 수 있도록 다함없는 교훈과 격려를 베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평의 서론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림으로 인해 뒤를 돌아보는 자기성찰과 옆의 이웃을 보듬는 타자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져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책이 가지는 장점과 혜택은 매우 크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성마저 잠식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 책은 단연코 읽어봐야 할 필독서 중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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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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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양태가 다양해지면서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으며 누리고 싶은 것도 점점 더 많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만 해도 먹고사는 삶의 모습들이 대동소이했기에 특별히 남들보다 더 가지고 싶었던 것도 별로 없고, 더 소유 하고 싶었던 것도 딱히 없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욕구를 자극하는 물질문명이 양산해낸 수많은 소유의 대상물들이 우리네 삶에 있어서 가지지 못했을 때 느끼는 그 허탈함과 동시에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은 미친듯한 갈망함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욕망과 갈급함이 어디 가시적인 재화에만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향해 느끼는 그 지고지순한 사랑의 감정은 위에서 열거한 눈에 보이는 재화의 소유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며 이것은 오히려 그러한 재화의 소유를 향한 욕망을 천박한 인간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전락시켜버리곤 한다.

이러한 순수한 사랑, 특별히 소유할 수 없는 영혼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낸 비극 한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파우스트>라는 대작으로 유명한 독일의 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지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18세기 중반 독일에서 태어난 괴테는 독일이 낳은 천재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 수많은 작품을 썼지만 이 책은 <파우스트>와 더불어 괴테의 명성을 세상에 알린 탁월한 저작 중 한 권이다.

책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변호사로서 작은 시골마을에 부임하여 그곳에서 '샤를로테'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된다. 순식간에 베르테르의 영혼을 휘감아버릴 정도의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자태의 '로테'를 본 이후 베르테르의 마음속에는 온통 로테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연모의 감정만이 가득 찼다. 그러나 비극적인 사실은 그를 단 한 번에 사랑이라는 용광로 속으로 몰아넣은 순수한 영혼 로테에게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

이후 너무나 신사적이고 품위 있는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에게 친구가 되어주지만 그러한 알베르트의 친절과 자신을 향한 우정이 베르테르에게는 더욱더 참기 힘든 고문과 같은 경험으로 돌아온다.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끓는 마음과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의 심리는 소설 속 자신의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챕터를 통해 저자인 괴테는 편지 형식을 빌려 사랑하는 여인 로테를 향한 그의 순수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대한 원망과 애절한 감정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로테의 연인이자 동시에 친구이며 자신에게 너무나도 친절한 알베르트에 대한 존경과 함께 그의 연인 로테를 그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연적을 향한 질투 어린 심리묘사가 세밀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는 한편의 서정시가 애틋함을 드러낸다.

참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 사랑을 차지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 속에서 고뇌하는 청춘의 그 순수한 열병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상상하기도 싫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놀랄만한 사실은 이 책의 내용 상당수가 저자인 괴테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의 나이 23세 되는 해 참석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샤를로테'(소설 속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다)를 보고 한눈에 반한 괴테는 사랑의 열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친구 '케스트너'의 연인이라는 사실에 크나큰 좌절을 맛보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또 다른 친구가 유부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낙담하여 권총 자살 한 사건을 자신의 개인적 아픔과 결합하여 본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탄생시켰다. 그렇기에 어쩌면 괴테는 소설 속 베르테르라는 인물의 내면 속에 자신의 그 이루어질 수 없었던 한(恨) 서린 응축된 감정을 투영시키고 녹여낼 수 있었으리라. 

 

 

당시 이 작품이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 발표되자 수많은 청춘들에게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더불어 이 소설의 네거티브한 영향력은 소설 속 베르테르의 최후를 동경하며 감정이입시킨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현상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이후 자신들이 동경하는 연예인들이나 스타들이 자살을 할 때 열혈팬들이 따라서 목숨을 끊는 현상을 가리켜 '베르테르 효과'라는 사회학적 용어가 탄생하게 된다. 더불어 불붙는 듯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타는 갈망, 현실과 관습이라는 냉혹한 괴리감 앞에서 좌절하는 한 청춘의 비극적인 스토리가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모티브로 탄생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진 의미를 단지 청춘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단장(斷腸)의 러브스토리에 한정시키고 싶지는 않다. 당시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라는 인간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인간성이 극도로 고양된 시기에 있었다. 중세 유럽을 누르고 있던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모든 요소에 대한 반발과 반동 작용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인간 이성의 무한 신뢰라는 계몽주의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탄생한 본서가 가지는 내재적 의미는 사랑마저도 차갑고 냉철한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조율될 수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인간 이성이 작동했다면 자살을 할 것이 아니라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한 사람의 평범한 독자로서 내가 느낀 바는 소설 속 베르테르의 비극적 선택은 인간 이성을 무한 신뢰하는 계몽주의 사조의 극대화라는 점이다. 중세 교회의 가르침 속에 있었던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살은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악 중의 죄악이었다. 그것은 베르테르의 자살과 그의 장례식 장면을 묘사하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여실히 드러난다. "일꾼들이 운구를 했다.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다." p232

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러한 종교적 관습의 테두리 속에서 자살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는 자살을 선택한다. 보이지 않는 신(神)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지을 수 있다는 계몽주의 사상의 극대화를 괴테는 자신의 소설 속에 차분하게 내면화시켰고 아름답게(?) 녹여냈다. 괴테라는 인물이 수많은 문학 작품을 남긴 문인임과 동시에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사랑했던 철학자였기에 가능했을 작품상의 귀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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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미생물 - 우리 몸을 살리는 마이크로바이옴과 발효의 비밀
캐서린 하먼 커리지 지음, 신유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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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의 권유로 한 점 집어 먹었다가 기겁을 했던 무서운(?) 추억의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삭힌 홍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삭힌 홍어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머릿속마저 혼미케 만드는 그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향과 풍미는 먹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나의 미각과 후각에 고통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러나 이 삭힌 홍어는 매우 귀한 음식 중 하나며 건강에 이로운 유익균이 많은 음식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삭힌 홍어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발효라는 독특한 조리법에 있다. <식탁 위의 미생물>이라는 독특한 책의 제목을 보며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발효라는 전통적인 조리법에 의해서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을 배양했다.

저자인 '캐서린 하먼 커리지'는 과학 전문기자로서 음식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설명한다. 미생물 군집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내에 서식하는 미생물 및 유전 정보 전체를 일컫는다. 책은 인간의 장에 서식하는 유익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그 유익균들을 공급하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가 매일 먹는 일상의 음식 속에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너무나 무관심하게 먹고 마셨던 우리의 음식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인간의 장까지 내려가서 서식하며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 끊임없이 좋은 식량을 공급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제품과 채소, 과일, 곡물, 콩류와 씨앗, 육류 등 모든 것이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서 인체 내 마이크로바이옴에 유용한 식량이 되어 줄 수 있다. 불과 20~30여 년 전만 해도 인간의 장내 유산균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풍부했고, 건강했다.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더 불결한 조리법과 조리환경 속에서 음식이 만들어졌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너무나 청결하고 깨끗한 환경과 시설을 갖추고 까다로운 레시피를 통해 음식을 만들지만 인간의 장 건강은 예전만치 못하다. 책장을 넘기며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조금 더럽고 불결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이 오히려 인간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위해서는 득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요리하는 사람의 손에 묻어있는 미생물이 음식 조리 과정 중에 들어가서 더 유익이 된다는 내용을 보며 음식 맛은 손맛이라는 옛 어른들의 경구가 뭔가 허투루 들을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한다.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요거트, 김치, 치즈, 오이피클, 낫토, 맥주, 코코아, 소시지 등 전 세계의 다양한 발효 음식들을 찾아 떠나는 음식 기행의 기록이 흥미롭다. 발효에 의한 음식의 재탄생을 보며 이러한 음식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보고서가 눈을 의심케 만든다. 건강한 미생물이 함유된 음식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들어보았는가? 장내 유익균이 인간의 대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우울증 발병 여부에 연관된다는 이 믿기지 않는 보고를 읽으며 다시금 매일 우리의 식탁에서 만나는 유익균 덩어리인 김치 한 조각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게 된다. 한편 좀 역겨운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대변이 약으로 쓰인다는 혐오스러운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심한 장 질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했더니 완치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는 보고는 장내 유익균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렇듯 다양한 발효음식에 관한 연구의 흥미로운 과학적 결과와 더불어 저자가 발효 음식을 찾아다니며 만난 음식들의 깨알 레시피를 책의 곳곳에 첨부해놓았다는 점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보너스이다.

코로나라는 몹쓸 바이러스는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유익한 박테리아와 미생물들은 인간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선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고마운 존재들로 전자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책을 덮으며 식탁에서 큰 의미 없이 단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허겁지겁 음식을 떠넘겼던 그간의 무심한 식습관이 떠오른다. 더불어 어린 시절 식탁에 매일같이 올라오던 각종 김치의 향연을 보며 어머니께 반찬투정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그 음식들이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 음식들이었는지를 깨달을수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질 수가 없다. 피자, 치킨, 햄버거와 같은 인스턴트 정크푸드의 홍수 속에서 오늘 저녁만큼은 구수한 된장찌개와 시큼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조각을 밥에 얹어 먹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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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위로부터 오는 능력 세계기독교고전 36
앨버트 심프슨 지음, 김원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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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 다소 긴 시간 동안 유독 성령 세례를 강조하는 은사주의 계열의 교회를 출석했기에 성령에 대해서는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대부분의 성령에 대한 생각과 이해는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친 오해에 기반한 것들이었음을 오랜 세월이 흘러 건강한 개혁주의 신학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성령을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현상과 느껴지는 감정적 요소에 한정 지으며 그러한 경험과 체험의 바탕위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렇듯 성령에 대한 몰이해는 각 세대마다 교회를 병들게 했고, 각종 이단들의 모판이 되었으며 참된 성령에 관한 가르침의 찬물을 끼얹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소위 복음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처럼 성령에 대한 비뚤어진 가르침이 넘쳐나는 세대도 없다.

이러한 성령에 대한 오해가 판을 치는 세대 속에서 19세기 장로교 목사로서 성령에 대한 깊이 있는 가르침을 책으로서 남긴 '앨버트 심프슨'의 본서는 성령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를 찾아보기에 좋은 책이다. 특별히 장로교 목사로서 성결교단의 4중복음에 영향을 끼친 그의 이력이 독특하다. 우선 책의 특징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속에 나타난 성령에 관한 인격과 사역의 의미를 잘 들추어냈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혹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 방법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우려를 가지고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성령에 관한 명확한 메시지를 추출해내는 데 있어서는 성경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치우치는 경향 없이 저자가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구약성경의 모형과 상징 그리고 예언 속에서 나타난 성령과 신약성경의 약속과 계시 속에 드러난 성령에 대한 바른 성경적 가르침들을 신비주의 계열의 위험성을 배제한 채 잘 기술하고 있다.

 

성령에 관한 주옥같은 가르침들이 알알이 꿰어져 매달려 있는 보물창고에 들어간 것과 같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나로 하여금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성령께서는 구별되고 헌신되며 성별된 마음에 임하신다.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영혼으로는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없다. (중략) 거룩함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을 수 없다. p77

기름 부음을 설명하는 제6장에서 발견한 문구다. 많은 신자들은 삶이 왜 이리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을까 고민한다. 남들은 활기차게 자신의 삶의 영역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데 반해 왜 나의 삶은 이리도 무력한 것일까에 대한 상심과 고민을 가진 신자들에게 이 책은 정확하게 정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기름 부음의 문제이고, 기름 부음은 거룩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정신과 영혼 안에는 결코 하나님의 성령이 베푸시는 능력과 기름 부음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은 바로 거룩함과 구별됨이다.

또 한 가지 성경은 성령을 소멸하는 불로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불의 기능 중 하나는 정결치 못한 것들을 태워버리는 역할이다. 사물의 본질까지 완전히 연소시켜버리는 불의 정화 기능은 물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불이 가진 정결케하는 기능과 능력은 강력하다. 그렇기에 저자 앨버트 심프슨은 성령을 이와 같이 불에 비유한다.

찌꺼기를 불사르고 순수한 금속으로 녹게 만드는 불꽃처럼 성령도 우리를 죄악된 옛 본성의 생활에서 분리시키고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본성과 생명을 새겨 넣으신다. p91

괴성을 지르고,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방안 이곳저곳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뛰어다닌다. 거룩한 웃음이라고 칭하며 미친 듯이 웃어대고, 벽을 두드리고 긁어대며 바닥에 기절하듯 쓰러진다. 치아가 금으로 바뀌고, 하늘에서 금가루가 쏟아진다고 아우성을 친다. 심심찮게 보이는 대표적 신비주의, 은사주의 단체에서의 성령 집회 모습이다.

이처럼 성령은 결코 비인격적이신 분이 아니시다. 성령에 관한 위와 같은 잘못된 견해들이 넘쳐나는 세대 속에서 본서를 통해 저자는 철저하게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집필의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구약과 신약성경 속에서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인격적이고 따뜻한 분이신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했다. 성령 하나님은 신자들의 영혼 안에 마음대로 침범해서 마치 폭군과 같이 사람들을 짐승처럼 다루지 않으신다. 성령은 한 신자의 인격 안에 거하시기 위해서 부드럽게 권고하시며 때로는 단호하게 결단을 촉구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당신의 사람들을 향한 지정의의 전인격적 변화를 강권하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균형 잡힌 건강한 이해는 눈에 보이는 현상과 느껴지는 감정으로서 오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신자에게는 날카로운 지성과 차가운 이성, 따뜻한 신앙 감정의 균형을 통해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올바로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은혜의 시대, 성령의 시대라 불리는 요즘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한 번쯤 생각하면서 읽어볼 만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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