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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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양태가 다양해지면서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으며 누리고 싶은 것도 점점 더 많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만 해도 먹고사는 삶의 모습들이 대동소이했기에 특별히 남들보다 더 가지고 싶었던 것도 별로 없고, 더 소유 하고 싶었던 것도 딱히 없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욕구를 자극하는 물질문명이 양산해낸 수많은 소유의 대상물들이 우리네 삶에 있어서 가지지 못했을 때 느끼는 그 허탈함과 동시에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은 미친듯한 갈망함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욕망과 갈급함이 어디 가시적인 재화에만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향해 느끼는 그 지고지순한 사랑의 감정은 위에서 열거한 눈에 보이는 재화의 소유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며 이것은 오히려 그러한 재화의 소유를 향한 욕망을 천박한 인간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전락시켜버리곤 한다.

이러한 순수한 사랑, 특별히 소유할 수 없는 영혼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낸 비극 한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파우스트>라는 대작으로 유명한 독일의 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지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18세기 중반 독일에서 태어난 괴테는 독일이 낳은 천재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 수많은 작품을 썼지만 이 책은 <파우스트>와 더불어 괴테의 명성을 세상에 알린 탁월한 저작 중 한 권이다.

책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변호사로서 작은 시골마을에 부임하여 그곳에서 '샤를로테'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된다. 순식간에 베르테르의 영혼을 휘감아버릴 정도의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자태의 '로테'를 본 이후 베르테르의 마음속에는 온통 로테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연모의 감정만이 가득 찼다. 그러나 비극적인 사실은 그를 단 한 번에 사랑이라는 용광로 속으로 몰아넣은 순수한 영혼 로테에게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

이후 너무나 신사적이고 품위 있는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에게 친구가 되어주지만 그러한 알베르트의 친절과 자신을 향한 우정이 베르테르에게는 더욱더 참기 힘든 고문과 같은 경험으로 돌아온다.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끓는 마음과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의 심리는 소설 속 자신의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챕터를 통해 저자인 괴테는 편지 형식을 빌려 사랑하는 여인 로테를 향한 그의 순수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대한 원망과 애절한 감정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로테의 연인이자 동시에 친구이며 자신에게 너무나도 친절한 알베르트에 대한 존경과 함께 그의 연인 로테를 그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연적을 향한 질투 어린 심리묘사가 세밀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는 한편의 서정시가 애틋함을 드러낸다.

참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 사랑을 차지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 속에서 고뇌하는 청춘의 그 순수한 열병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상상하기도 싫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놀랄만한 사실은 이 책의 내용 상당수가 저자인 괴테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의 나이 23세 되는 해 참석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샤를로테'(소설 속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다)를 보고 한눈에 반한 괴테는 사랑의 열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친구 '케스트너'의 연인이라는 사실에 크나큰 좌절을 맛보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또 다른 친구가 유부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낙담하여 권총 자살 한 사건을 자신의 개인적 아픔과 결합하여 본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탄생시켰다. 그렇기에 어쩌면 괴테는 소설 속 베르테르라는 인물의 내면 속에 자신의 그 이루어질 수 없었던 한(恨) 서린 응축된 감정을 투영시키고 녹여낼 수 있었으리라. 

 

 

당시 이 작품이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 발표되자 수많은 청춘들에게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더불어 이 소설의 네거티브한 영향력은 소설 속 베르테르의 최후를 동경하며 감정이입시킨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현상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이후 자신들이 동경하는 연예인들이나 스타들이 자살을 할 때 열혈팬들이 따라서 목숨을 끊는 현상을 가리켜 '베르테르 효과'라는 사회학적 용어가 탄생하게 된다. 더불어 불붙는 듯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타는 갈망, 현실과 관습이라는 냉혹한 괴리감 앞에서 좌절하는 한 청춘의 비극적인 스토리가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모티브로 탄생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진 의미를 단지 청춘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단장(斷腸)의 러브스토리에 한정시키고 싶지는 않다. 당시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라는 인간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인간성이 극도로 고양된 시기에 있었다. 중세 유럽을 누르고 있던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모든 요소에 대한 반발과 반동 작용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인간 이성의 무한 신뢰라는 계몽주의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탄생한 본서가 가지는 내재적 의미는 사랑마저도 차갑고 냉철한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조율될 수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인간 이성이 작동했다면 자살을 할 것이 아니라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한 사람의 평범한 독자로서 내가 느낀 바는 소설 속 베르테르의 비극적 선택은 인간 이성을 무한 신뢰하는 계몽주의 사조의 극대화라는 점이다. 중세 교회의 가르침 속에 있었던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살은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악 중의 죄악이었다. 그것은 베르테르의 자살과 그의 장례식 장면을 묘사하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여실히 드러난다. "일꾼들이 운구를 했다.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다." p232

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러한 종교적 관습의 테두리 속에서 자살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는 자살을 선택한다. 보이지 않는 신(神)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지을 수 있다는 계몽주의 사상의 극대화를 괴테는 자신의 소설 속에 차분하게 내면화시켰고 아름답게(?) 녹여냈다. 괴테라는 인물이 수많은 문학 작품을 남긴 문인임과 동시에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사랑했던 철학자였기에 가능했을 작품상의 귀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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